주4일제가 기후 위기랑 관계가 있다고?
2022 대선 캐비닛, 기후 위기 공약 [숨은 약속 편]
앞선 글에서 대선 후보가 발표한 기후 공약을 비판적으로 살펴봤어요. 이번엔 숨어 있는 기후 공약을 점검해보려고 해요.
숨어 있는 기후 공약이란 뭘까요. 대선 후보 대부분이 기후 공약을 발표했는데요, 그 약속과 어딘가 부딪히는 구석이 있는 다른 분야의 공약이라고 보면 돼요. 말하자면 공약의 모순을 찾아보기로 한 거예요.
적지 않은 대선 후보가 수도권 바깥에서 개발 약속을 해요. 지역 발전을 위해 다리와 항만을 짓고, 신공항을 만들어주겠다고요. 수도권 안에서는 (특히 청년 세대를 향해서) 수없이 많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해요.
대선 후보들은 이런 약속을 지키면서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이 수많은 개발 공약은 기후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가들, 그리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한재각 연구기획의원과 토론해봤어요.
인물소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척을 멈추고, 기후 위기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어떤 개인보다도 대통령이 먼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기후 위기 대책에 있어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다고 본다. 그 권리를 시민과 나누는 사회를 꿈꾼다.
닷페이스 에디터. 진행을 맡았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파악하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위원.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는 기업에 정부가 지금보다 강경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공항은 기후 위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슬(사회자): 대선 후보들이 지역마다 찾아가서 약속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는 공항이 있어요.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신공항 사업이 여섯 개 있는데, 어떤 후보는 공항을 짓겠다고 하고, 어떤 후보는 공항 건설에 반대해요. 활용도가 낮은 지역 공항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도 있고요. 이렇게 공항을 많이 짓는다면, 기후 위기에 영향을 줄까요?
현재 부산 가덕도 신공항, 울릉 공항 개항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 밖에 대구 경북 통합 신공항, 전북 새만금 신공항, 인천 백령 공항, 제주 제2공항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서경: 아주 밀접해요. 비행기가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니까요. 비행기는 이동 수단 중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거든요. 공항이 많아지면 비행기도 많아지니까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되겠죠.
도로에서는 전기 자동차가 대안이 되겠지만, 비행기는 전기로 운행하는 수준까지는 아직 안 왔어요. 물론 전기로 한다고 해도 문제가 많겠지만요.
한재각: 기후 시민 의회를 하는 나라가 있어요. 말 그대로 시민이 모여서 기후 정책을 의논하는 자리인데, 거기서 논의되는 것이 법령이 되기도 해요. 프랑스 기후 시민 의회에서는 얼마 전 자국 내 단거리 항공 노선을 없애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지역 노선이 없어져도 대안이 있죠. 유럽엔 철도가 많으니까요.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KTX가 정말 잘돼 있잖아요. 그래도 부족하다면 철도를 늘리면 돼요. 철도는 단위 이동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은 교통수단이거든요. 자동차보다도 낮아요. 철도를 연결할 수 있는 작은 땅에서 비행기를 더 타도록 부추기는 건 반기후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김보림: 이재명 후보가 올해 가덕도 신공항 공사 현장에 방문한 영상을 봤어요. 그때도 난리였어요. 환경 단체만 욕을 잔뜩 먹었어요. 지역 주민도 아닌데 너네가 왜 반대 시위 하느냐고.
윤현정: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개발해주겠다, 성장을 보장하겠다, 이런 말로 지역에 신공항을 약속하지만, 지역에서도 공항 짓는 것에 반대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건설 소음에 시달려서 반대할 거라고만 생각하죠. 공항이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서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거예요.
김서경: 맞아요. 지역 활성화하려고 이런 걸 만들어주는 건데, 지역 주민도 아닌 '주제에' 환경 단체들이 와서 생난리를 치더라, 지역 주민은 죽으라는 거냐,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짜요.
깨끗한 환경은 좋지만, 그럼 지방은 원시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거냐고들 하죠. 그런 식의 논의에서 벗어나서 이런 큰 개발이 끼칠 다른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는데, 늘 이런 양자택일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너무 쉽죠. 공항 하나 지어준다고 약속하면 지역 경제도 살리고, 지역 불평등도 해소하는 대통령이 돼요.
아직까지 기후 위기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으니까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 머리 아픈 일들은 안 하죠. 신공항을 약속한다면, 그건 정말 쉬운 선택을 하는 거예요.
주택 공약과 기후 위기 공약의 충돌
한슬(사회자):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집을 많이 짓겠다고 약속했어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00만 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50만 호를 짓겠다고 해요. 다른 후보들의 공약도 비슷해요. 그런데 이렇게 집을 지으려면 산이나 숲을 밀어야 하지 않나요?
한재각: 늘 그래왔듯 필요한 만큼 짓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많이 짓죠. 수많은 녹지를 해치는 방식으로요. 그게 돈이 되니까. 집을 많이 짓는다는 건 기후 위기에 앞서 생태계 침해에 가까워요. 하지만 결국에는 기후 위기랑 연결돼요.
집을 잔뜩 지어놓고 거기 산다고 해도, 대부분 직장이 멀죠. 그러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출퇴근 인구가 많으면 이동 수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어마어마하게 늘죠.
파리에는 '15분 도시'라는 개념이 있어요. 15분 안에 갈 수 있는 반경 안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구축해서 이동량을 줄이는 거예요. 일터가 15분 거리에 있다면 차를 덜 타겠죠.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식으로요.
2020년 1월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재출마를 선언하면서 내놓은 공약이다. 파리 어디에 살든 직장, 시장, 병원, 학교, 공원 등 주요 시설에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내에 닿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하는 빠른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느린 도시를 만들면서 사람들 사이의 우애와 연대, 삶의 질의 향상을 추구한다.
그런데 서울 도심에 공공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 같은 게 있나요? 땅값이 비싼 곳에 저렴한 주택을 지어서 여러 가구한테 공급한다는 건데, 그건 자본주의 시장에서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회사까지 오가는 데 몇 시간을 써야 하는 거고요.
김서경: 이 문제에 대해 제가 말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게 되네요. 주택 분야를 탐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모르는 게 많거든요.
근데 제가 사는 동네가 재개발을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안 보이던 풍경이 보이더라고요. 아파트를 허무니까 그때서야 산이 보이는 거예요. 그걸 다시 안 보이게 하는 일이 다시 시작됐고요.
별로 사람도 없는 동넨데, 엄청난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온대요. 의문이 들더라고요. '여긴 도대체 누가 살지?' 개발은 많이 하는데, 그만큼 분배가 될까?
김보림: 제가 사는 동네도 재개발을 해요. 산사태가 많이 나는 곳이라서 한대요.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고 기뻤거든요. 우리 가족한테도 좋은 집이 생길 줄 알고. 그런데 그 생각이 1초 만에 깨졌어요. 그냥 우리 가족은 멀리 밀려나는 것뿐이니까요.
이것도 기후 위기랑 연결돼요. 기후 문제로 재난이 생기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집은 사실상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김서경: 그쵸. 지역에 살았던 사람 모두가 재개발이 되고 난 뒤에 그 집에 들어갈 만큼 넉넉하진 않잖아요. 그럼 빚을 내서 집을 살 수밖에 없고, 어떤 사람은 못 사고, 누군가는 집 두 채 이상을 갖고.
윤현정: 저는 요새 제가 살 집을 엄마랑 보러 다니고 있는데 늘 참담해요. 가격이 내려갈수록 집이라고 하기 어려운 곳이 너무 많아요.
집이라는 게 저한테는 이렇게 간절한데 어떤 사람들한테는 그 집이 수단인 거잖아요. 투자의 대상이라는 것.
주택 공약을 내는 결정권자들이 이 문제를 똑바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주택을 분배 문제로 보지 않고 단지 집이 수적으로 부족하다고만 여기니까 결국 기후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줘요. 게으르고 노력을 안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겠죠.
노동의 미래가 곧 기후의 미래야
한슬(사회자): 여태까지 대선 후보가 내놓은 공약 가운데 신공항과 주택 문제를 살펴봤어요. 그 밖에 기후 위기랑 밀접한 다른 공약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재각: 주목할 만한 공약을 얘기해본다면,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노동 시간 단축 공약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슬(사회자): 주4일제 공약 이야기죠? 그게 기후 위기랑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한재각: 주4일제 공약은 노동 공약으로 나온 거죠. 사실 노동 운동의 역사는 노동 시간 단축의 역사 같은 거잖아요. 비인간적인 노동 시간을 줄여가면서 인간다운 삶을 이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심 후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4일제 공약은 기후 정책이다"라는 얘길 했어요.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의 작업 환경을 조사해봤더니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현장이라고 분석됐어요. 영업일을 줄인다면 그만큼 온실가스가 덜 나오겠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11월 12일 직접 밝힌 말은 다음과 같다. "주4일제 도입을 통한 노동 시간 단축은 인류 생존의 위기인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탄소 배출 상위 그룹의 산업은 대부분 장시간 노동 사업장입니다. 바로 이곳의 노동 시간을 주4일제를 통해 줄였을 때 탄소 배출 감소 효과가 크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추가적인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어요. 출퇴근을 하루만 줄여도 교통량이 줄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기후 위기와 노동을 함께 생각했다는 점에서 멋진 정책이라고 생각했어요.
한슬(사회자): 노는 날에도 차는 다니는데, 온실가스 배출이 정말 줄 수 있을까요?
한재각: 일하는 날보다는 아침저녁에 사람들이 덜 움직이게 되겠죠. 영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는데, 주4일제를 도입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한 연구가 있어요.
2021년 5월 27일 영국 매체 '가디언'에서 발행한 글의 일부. "2025년까지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1억 2,700만 톤으로 줄어들 것이며, 이것은 20% 이상 감소한 수치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영국에서 전체 자가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것과 같은 수치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영국의 여러 환경 단체와 정치인이 주4일 근무제를 주장하고 있다. 녹색당 의원 캐롤라인 루카스는 말한다. "주4일제는 탄소 배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고, 지역 사회에 기여할 시간을 확보하며, 기후 비상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주4일제를 도입하면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으니까 대단히 매력적인 약속이죠. 온실가스를 줄인다고 삶이 불편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이 나아질 수 있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까지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이런 식의 접근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기후 위기 활동가들과 함께 숨은 정책을 살펴봤어요. 집과 공항부터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까지, 우리 삶에서 중요한 많은 것이 기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거예요. 다음 편에선 이 대담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대선 후보들의 기후 공약 점수를 매깁니다. 다가올 대선, 우리의 선택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준비했어요.
만든 사람들
- 민정리
- 한슬진행
- 선욱촬영
- 모모촬영
- 스튜디오하프보틀디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