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쿠팡에서 퇴근한 아들이 눈을 뜨지 않았다

추석 이후, 쿠팡에서 퇴근한 아들이 눈을 뜨지 않았다

고 장덕준 씨의 부모님이 1년 째 계속 싸우는 이유

2021년 09월 28일
에디터 한슬

에디터의 말:

추석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일요일이었다. 2020년 10월 12일,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이하 쿠팡) 소속 일용직 야간노동자로 일하던 장덕준씨는 새벽 6시에 집으로 퇴근해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못했다. 급성 심근경색증. 쓰러진 장덕준씨를 발견한 부모님이 즉시 119를 불렀지만, 병원에서 사망했다.

어머니 박미숙씨는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친구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토요일, 죽기 하루 전 날, 장덕준씨는 친한 친구들을 만나 밥을 사주고 선물을 건넸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물류센터에서 일했을 때는 하루만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비난했대요. 그런데 본인이 해보니까 너무 힘들다고, 이해가 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번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다고.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고, 좋아하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다면서. 어머니, 덕준이는요. 소중한 걸 알고 간 것 같아요."

장덕준씨는 쿠팡 노동자 중에서 유일하게 업무상 질병 사망이 인정된 사람이다. 아들이 죽은 지 1년, 아버지 장광씨와 어머니 박미숙씨는 지금도 쿠팡에게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9월 3일에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생업을 접고, 병원을 다니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이유,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인물소개

박미숙 프로필 이미지
박미숙
장덕준씨 어머니.
장광 프로필 이미지
장광
장덕준씨 아버지.

장덕준씨는 어떻게 해서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박미숙: 우리 아들은 2019년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면접도 보고, 그런 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마냥 놀 수 없고 용돈은 벌어야겠다고 시작한 일이 쿠팡이었어요.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는 야간 작업을 했죠. 2019년 6월 26일부터 2020년 10월 12일까지 1년 4개월 동안 일용직으로 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박미숙: 처음에만 해도 “이거 완전 ‘꿀알바’다.” 그렇게 표현했어요. 그런데 일하면 일할수록 힘들어 했죠.

아들이 업무상 질병 사망을 인정 받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는 박미숙씨.
아들이 업무상 질병 사망을 인정 받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는 박미숙씨.

첫 5개월 동안 '피커'라는 일을 했는데요. 쿠팡 물류센터에는 온갖 물건이 마트 매대처럼 진열이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뭔가 주문하면, '피커'가 대신 쇼핑하듯이 주문서의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아서 포장하는 분들에게 가도록 모아 둬요. '집품'이라고 부르는 작업이에요.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완전히 속도전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시간당 생산량(UPH)을 100개를 못 채웠는데, 갈수록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요. 100개, 150개… 절대적으로 100개 이상 하면 잘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제 한 것보다 더 많이 해야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구조였다고요. 점점 많이 해내야 하는 거죠.

11월 30일까지 '피커' 일을 하다가, 그 이후부터 사망 직전까지는 '워터 스파이더'라는 일을 하게 됐어요. 아들 말로는 원래 일하던 사람이 허리를 다쳐서 빈 자리를 채우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워터 스파이더'는 출고 보조 업무라고 해서 다른 파트의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지원하는 일이에요. '피커'가 주문서대로 상품을 모을 수 있도록 각 상품을 자리에 배치하고요. 상품을 모으는 바구니도 정리하고. 포장이 끝나면 빈 바구니를 모아서 다시 가져다 놓고. 박스, 비닐, 테이프, 끈, 이런 것도 채워 놓고. 포장이 끝난 택배 물품을 배송할 수 있게 운반하기도 했고요.

쿠팡이 당일 배송을 하잖아요. 오늘 저녁에 주문한 물건이 내일 새벽에 와야 하니까, 출고 마감 시간이라는 게 있죠. 그럼 그 시간까지 물건을 내려 보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들이 첫 마감 시간과 마지막 마감 시간은 전쟁이라고 했어요. 속도를 맞추느라 잠시도 여유가 없고 긴장을 풀 수가 없다고요.

과로사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박미숙: 사망 판정을 받고 나서도 계속 서로에 대한 자책만 하고 있었어요. 가족들이 다 집에 있었는데 왜 좀 더 빨리 확인하지 못했을까. 그 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어서 과로사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죠.

장례식장에 동료들이 와서 한마디씩 하는데 좀 이상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애가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 앉아서 통증을 호소했다든지, 체한 것 같다, 메스껍다고 말했대요. 그래서 병원에 가 보라고 했는데 조금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걸 듣고 주변 사람들이 과로사의 전형적인 증상인 것 같은데 한 번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지 조심스럽게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많이 고민한 끝에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하게 됐어요.

저희가 지금 제일 아쉬운 게 뭐냐 하면, 우리 아들이 그때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고, 체한 것 같다고 했을 때 119에 신고를 했으면 어땠을까. 전형적인 심장마비 증상이잖아요. 만약 그 때 조치를 받았다면, 애가 지금 살아있을 수도 있겠죠.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저희는 사실 설마, 설마 했어요.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까. 얼만큼 일해야 과로사가 되는 건지. 진짜 남의 일이었지, 내 주위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못했죠.

산재로 인한 사망을 인정 받기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박미숙: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사망을 증명하려면 업무량, 시간, 강도를 봐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알아야 하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 저희가 아들에게 평소 들었던 내용과 쿠팡이 주장한 내용이 달랐어요.

아들은 정해진 근무시간은 오후 7시부터 오전 4시까지지만,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할 때가 많다고 했어요. 다른 파트가 일할 수 있게 준비하고, 다른 파트 일이 끝나면 그걸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고요.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도 일용직이니까, 정기적인 휴일이 있는 게 아니고, 일하러 오라고 하면 가는 거죠. 처음에는 스스로 주 5일을 지키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사망 전에는 거의 주 6일 출근했어요.

그렇지만 쿠팡에서는 아들의 사망 전 3개월 간 평균 근무시간이 44시간이라고 했어요. 단기직 직원도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요. (관련 보도자료)

업무 강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달랐어요. 쿠팡에서는 아들이 “비닐, 테이프, 빈 종이박스를 운반했다.”고 했는데요. 평소에 아들은 무거운 짐을 여러 번 운반한다고 했거든요. 실제로 무릎 부상을 당한 적도 있고요.

이렇게 논란이 있는데 쿠팡 측에서 준 자료는 근로계약서와 12주 분의 근무기록지가 전부였어요. 이것만으로 아들이 말했던 걸 증명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 애는 이제 말할 수 없는데.

그래서 자료를 더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죠. 언론 인터뷰도 하고, 아들의 동료들한테도 연락하고, 국회의원들도 찾아가고, 근로복지공단이며 질병판정위원회며. 이것 좀 조사해 달라고. 생업도 다 포기하고 뛰어 다녔어요. 너무 힘들었죠.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회사와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산재가 인정된 사유는 무엇이었나요?

박미숙: 저희가 정보 공개 요청을 해서, 쿠팡이 CCTV 3일분을 제출했는데요. 그게 결정적이었어요. 우리 애가 6시 40분에 일하고 있는 장면이 찍혔더라고요. 오전 4시 이후에도 뒷정리를 하는 모습이 있었고요. “봐라, 우리가 말한 게 맞지 않냐.” 쿠팡이 주장했던 것처럼 정확히 후전 7시부터 오전 4시까지만 일한 건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됐어요.

아들이 일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앱으로 기록한 자료가 있는데, 그게 CCTV상의 근무시간과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노동시간을 조사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아들은 죽기 전 3개월 간 일주일에 평균 58시간 38분 일했다고 해요. 죽기 일주일 전에는 1주일 간 62시간 10분 일했고요.

노동 강도 부분도. 쿠팡에서는 빈 박스나 비닐봉지를 채우는 지원 업무라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CCTV를 보면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게 나오는 거죠. 3.95kg~5.5kg짜리를 하루에 80~100회 옮겼고, 수동 지게차(자키)를 이용해서 20kg~30kg짜리를 하루에 20~40회 옮겼다고. 그러니까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가 맞다고요.

아들이 1년 4개월간 일하면서 몸무게가 15kg 빠졌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기엔 이게 살이 빠지는 게 아니고, 근육이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허벅지나 이런 데가 다 말랑해지고. 원래 체격이 좋은 편이었는데.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되는 '횡문근융해증'이 의심된다는 의학적 소견을 받았어요. 쉽게 말하면 근육이 녹아내린다는 거죠. 근육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2020년 7월 대구, 칠곡의 하루 최고 기온이 30ºC 이상인 날이 35일. 그 중 열대야가 13일. 대구칠곡물류센터에는 전체적인 냉방 설비가 없고, 이동식 에어컨과 서큘레이터가 있었는데, 우리 애가 동료들과 카톡한 내용을 보면 더웠던 걸로 보인다고. 마스크도 끼고 일했고요.

더운 와중에, 오랜 시간,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을 야간 근무로 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고.

사실 저희는 아들이랑 가족여행 간 날에도 회사로부터 계속 근무하러 나와 달라는 전화를 받는 걸 봤어요. 그런데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부분은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할 수 없는, 유족들의 주장이라고만 결론이 났어요.

쿠팡에서는 일용직이니까 일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거라고, 자신들이 강요한 건 아니라고 하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일용직이 언제든지 일하고 싶다고 일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일을 시켜줘야 할 수 있잖아요.

그럼 언제 일을 못하게 될 지 모르니까, 일단 일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하면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거죠. 특히 하루이틀 아르바이트로 가는 게 아니라, 이 일을 못하면 밥을 못 먹는 경우에는 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 구조적인 부분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애도 그런 말을 했어요. 어차피 10~11월 되면 상대적으로 비수기라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7~8월에 열심히 나가야 그 때 일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아무래도 성실하게 나오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테니까, 그런 걸 '자발적으로' 신경 쓸 수밖에 없잖아요.

왜 1년 4개월 동안 쭉 일용직으로 일했을까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인가요?

박미숙: 쿠팡 물류센터에는 일용직이 있고 3개월, 9개월, 12개월짜리 계약직, 그리고 무기계약직이 있어요.

아들은 어차피 무기계약직이 아니라면,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 계속 연장할 수 있을지 아닐지 불안한 건 일용직이랑 똑같다고 말했어요. 하루 일하고 다음날 못 나가나, 3개월 일하고 못 나가나.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용직을 하겠다고요. 오히려 단기계약직이 되면 연장이 안 될까봐 더 눈치보게 될 것 같다고요.

쿠팡에서는 장덕준씨가 사망한 후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에게 매달 상시직 전환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장광: 아들이 죽기 이틀 전에 맥주집에서 한 잔 하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일시적인 아르바이트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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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열심히 했으니까, 2년만 버텨 보고, 무기계약직이 되어 보겠다.” 일용직으로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거든요. 시키는대로 다 하고, 끝까지 가 보고, 무기계약직이 된 다음에 쿠팡을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결정하겠다고 했었어요. 나름대로 오기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불만이 있어도 참고 끝까지 싸워보고 싶었던 게 아닌지.

그런 얘기를 하고 나서 이틀 만에. 아들도 설마 그럴 줄은 몰랐겠죠.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그 정도도 못 버티겠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고, 2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자기 한계를 모르잖아요. 쿠팡에서 일하면서 그 이상을 가 버린 거죠.

박미숙: 우리 아들이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 20대 청년이에요. 육군 병장 만기 제대했고, 영화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정말 평범한 친구가 어떤 회사에서 1년 4개월을 일했는데 견디지 못하고 심장이 멎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봐 달라는 거예요.

장광씨와 박미숙씨는 아들의 업무상 질병 사망 인정 후에도 쿠팡의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개조한 트럭을 타고 전국을 순회했다.
장광씨와 박미숙씨는 아들의 업무상 질병 사망 인정 후에도 쿠팡의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개조한 트럭을 타고 전국을 순회했다.

지금도 꾸준히 쿠팡에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계시잖아요.

박미숙: 크게 두 가지를 요구했는데요. 첫번째는 연속 야간 근무를 제한해 달라고 했어요. 저희도 야간 근무가 이렇게 위험한 것인 줄 아들 일을 통해서 알았어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도 제2급 발암물질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쿠팡에 연속 야간 노동 일수를 3일로 줄이자고 제시했어요. 우리 젊은이들, 가족들의 생명을 단축하는 거니까. 정 안되면 교대제라도 하자. 그것도 위험하다고 하지만, 더 위험한 게 연속 야간 노동이니까.

두 번째는 가장 중요한 건데요. 물류센터 노동을 하신 분들의 건강 조사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쿠팡이라는 회사가 10년 정도 됐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야간 근무자를 비롯한 근무자들의 건강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그런 자료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용역을 맡겨서 건강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자. 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 구체적으로 바꾸어 나가면 되니까요.

쿠팡에서 연속 야간 근무를 3일로 제한하는 건 어렵다고 해서, 먼저 건강 조사 용역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7월 15일에 마지막으로 논의를 주고 받은 이후로 연락이 없어요.

장덕준씨는 2021년 2월 4일 업무상 질병에 의한 사망을 인정받았다. 2월 22일,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이사가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물류센터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제출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안이었다.

①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모든 근로자 연속근로일수 제한
② 특수건강진단 대상에 야간 일용근로자 포함 등 실효성 강화
③ 근로자 개인별 시간당 생산량(UPH) 폐지
④ 외부 전문기관 근로환경 진단 등 근로여건 개선

네 가지 방안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① 쿠팡은 일용직 연속근무일수를 5일로 제한했다.
② 쿠팡은 "야간근로자를 위한 특수건강진단 대상을 현행 법정 기준보다도 대폭 확대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③ 현장에서 실시간 상황판으로 시간당 생산량(UPH)를 체크하던 제도 역시 사라졌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에 따르면, 관리자들끼리는 생산량을 기반으로 성과를 체크하고 있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쿠팡은 이에 대한 닷페이스의 사실 확인 요청에 “UPH는 사라졌다”고 답했다.
④ 노동조합에 따르면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근로환경 진단은 시행되지 않았다.

고 장덕준씨 사망 이후, 과로사 방지를 위해 어떤 대책을 시행했는지 쿠팡에 물었다. 답변은 이렇다. “쿠팡은 근로자들의 안전과 건강관리를 최우선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배송기사와 물류센터 직원들의 건강 개선을 위해 업계 최초로 유급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쿠팡케어 프로그램을 시행 중입니다. 고 장덕준씨 유가족과의 협의에 중재자로 나선 민주노총 대책위가 요구한 특수건강검진 시행, 작업장 조도 증진 등 상당수는 이미 시행 중입니다.”

7월 15일 이후 박미숙씨, 장광씨와 협의가 끊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밝혔다. "쿠팡은 그간 유족 지원 등을 위해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요구해왔지만, 민주노총 대책위가 협상자로 나서서 야간근로 제한 등 여러 요구사항에 대한 수용을 우선적으로 요구해옴에 따라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하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박미숙씨는 쿠팡에서 따로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 저한테 전화하면 되잖아요. 제 번호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저희들은 민주노총 대책위랑 상의를 해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협의를 위임한 거예요. 그런데 기자들한테 '우리들은 해결하고 싶은데 대책위가 중간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어서 협의가 안 되고 있다'라고 하면 어이가 없는 거죠."

사실 저도 아들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쿠팡을 되게 좋아했어요. 스마트한 회사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말하는 혁신을 믿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사망하고 난 다음에 쿠팡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혁신이 아니라 구멍가게가 아닌가. 사람을 부속으로 취급하고, 피와 살을 갈아 넣어서 돈을 버는 회사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싶은 덕준이 또래의 젊은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러면 왜 이런 사람들을 키워서 정규직이든 무기계약직이든 어떤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려고 하지 않고 일용직, 계약직으로만 쓰는지. 소모품처럼 흘러가는 거잖아요. 5년 뒤, 10년 뒤 이 젊은이들의 건강에 대해 누가 책임질 거냐고요.

더 위험한 건 쿠팡이 로켓배송, 당일배송을 하면서 물류업계가 전반적으로 다 그렇게 가고 있잖아요. 이게 기준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 애가 마지막에 항상 저울의 비유를 들었거든요. 저울의 한 쪽에 무엇인가 올라가면 다른 한 쪽이 내려가듯이, 내가 어느 순간 편안함을 느끼면 다른 한 쪽에는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항상 그 얘기를 했어요. 내가 편안하면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고마운 줄 모른다고…

인터뷰를 하는 장광씨와 박미숙씨.
인터뷰를 하는 장광씨와 박미숙씨.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미숙: 저는 사실은 만약 아들이 덕준이 한 명이었으면, 어쩌면 이렇게까지 안 했을 거 같아요. 그냥 정이 다 떨어져요. 쿠팡이라는 회사도 싫고, 우리나라도 싫고, 다 싫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계속 요구하고, 기자회견 하고, 인터뷰하고, 국회에 가서 부탁하고, 이럴 수밖에 없냐면, 저희는 아직 남은 아이가 둘이 있어요. 얘네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덕준이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더 끔찍할 것 같아요. 소모품처럼. 덕준이가 그걸 안다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불합리한 환경을 왜 동생들에게 남겨주냐고, 왜 두 번이나 똑같은 실수를 하냐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가는 거예요. 이런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가족들이 없기를 바라니까요.

장광: 저는 모든 가족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저녁에 “다녀왔습니다.”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마음 놓고 일터에 보내고, 마음 놓고 가서 재미있게 일하고, 일한 만큼 돈을 받고, 그렇게 일하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그런 바람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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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동료를 떠나보낸 35년 차 소방관, 병원에 젊은 간호사만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전현직 간호사들. 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 없던 규정을 바꾼 승무원, 사람보다 콜라가 더 대우 받는 현실을 말하는 배달 라이더들.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요양 보호사까지.

우리는 단순한 사건 보도가 아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가 듣지 못한 수많은 일터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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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 취재, 작성
  • 은선 |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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