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존재는 농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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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극인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2021년 09월 17일
에디터 한슬

에디터의 말

스님들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팔과 다리를 앞뒤로 펴고, 다시 일어나서 몇 걸음 걷고, 다시 엎드립니다. 오체투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은 8월 30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부터 국회까지 30km 거리를 이렇게 걸었습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을 통과시키라는 요구였습니다.

사진을 보는데 가슴이 아팠어요. 차별하지 말자는 당연한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온몸을 땅에 낮추는 사람들. 빌어야 하는 일이 아닌데. 왜 ‘차별하게 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목소리보다 작게 들리는 걸까.

9월 2일, 오체투지 네 번째 날. 구자혜 연출가는 스님들 옆에서 피켓을 들고 서서 함께 걸었어요.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해요.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났다”고요.

구자혜 연출가는 2021년 5월 13일 백상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어떤 사람의 존재는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을 감히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중에라는 합리화로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는 정권이 부끄러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해 발언하고 행동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마다하지 않았어요.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던 한 연극인이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누군가는 깊이 절망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졌으면 한다"는 구자혜 연출가를 만나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에 함께 하셨어요.

제가 오체투지를 한 건 아니고요.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공동대표에게 제안을 받았습니다. 스님들께서 오체투지를 하실 때 옆에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했는데요. 같이 힘을 내기 위해 나간 자리였는데,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차별하지 말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 하나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찬반의 문제가 아닌데.

우울했어요. ‘왜 여기까지 왔지.’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 온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계속 스쳐 지나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힘을 내는 자리였죠. 함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활동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제가 하루 피켓 들고 있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고요.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 이런 거죠. 되게 납작한 말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진심입니다. 지금 제가 너무 단순한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연극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올해를 기점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주장하고, 싸우고, 연대해 온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많이 빚진 것 같아요. 저도 자신을 드러내면서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저를 호명했을 때, 연극인을 떠나서 동시대 시민으로서 함께 싸우고 연대하고 싶어요. ‘왜 항상 그런 것들에 대해 소극적이었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진행한 <평등의 에코-100> 캠페인에도 참여했고, 9월 2일에는 오체투지로 국회에 가는 길 옆에서 1인시위를 함께 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사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하루에 최소 세 번 정도는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정말 매 순간. 매 순간. 혐오와 차별 때문에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될 때. 내가 살고 싶어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적인 경험을 얘기한다면, 최근에 밤에 파트너와 산책을 하다가 혐오발언과 위협을 들었어요. 그럴 때 사실 화가 나기보다 두려움이 크잖아요.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할까봐. 무시하고 가라고 하지만, 무시했다고 또 공격할지도 모르고. 돌아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뒤에 다가와서 공격할지 모르니 돌아보고 싶기도 하고. ‘저들에게' 우리는 ‘정상’으로 보이는 커플이 아니었겠죠. 그러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겠죠.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구자혜 연출가.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구자혜 연출가.

저는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처벌당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밤 12시 반에 저에게 물리적 위협과 혐오발언을 한 사람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차별금지법(평등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혐오 폭력에 맞닥뜨리거나, 트랜스젠더가 어딘가에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혹은 직장에서 불평등을 겪었을 때, 넘어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세상이 이렇지.’ 그런 순간이 쌓여서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 허들을 넘어야 하는 사람들.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있어야 그냥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죠. 벌금을 내든, 감옥에 가든, 사업장을 중지시키든, 10시간 정도 교육을 받게 하든… 이런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혐오가 법적인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혐의를 지울 수가 없어요. 그런 의도는 없었다면서 그렇게 하잖아요. 입국신고서에도 ‘남성(male)’과 ‘여성(female)’, 두 칸밖에 없고요.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차별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 또는 법원이 차별행위를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차별 피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 법안에 따라서는 피해자에게 보복행위를 했을 때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차별하지 말라는 너무나 당연한 걸 법으로까지 만들어야 하는 국가인 거죠.

한국 사회가 굉장히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발전했다. 선진국이다. 의식이 고양되고 있다. 차별금지법까지 논의하고 있다.”

너무 못되게 얘기했죠.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직까지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어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상상이 잘 안 가요. 사실 바로 파라다이스가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시민으로서 제정 자체가 당연히 기쁘겠지만. 동시에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사라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생각날 것 같고. 너무 부정적이죠.

그런데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한테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됐을 때의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 그런 존재들이 세상에 되게 많다는 거. 그 정도로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저는 정책가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고 시민일 뿐이지만, 상상이 안 돼요. ‘차별이 없는 세상’이라는 게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도 현실적으로 상상이 가지 않네요. 이런 상황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구자혜 연출가.
구자혜 연출가.

실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존재 자체가 정말 힘이 돼요.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면 어떻게 변할 것 같다기보다, 그걸 만들기 위해 같이 힘쓰고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저한테 차별금지법(평등법)은 그런 것 같아요.

백상연극상을 수상하던 순간으로 돌아가 볼까요. “나중에라는 합리화로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는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한 마지막 문장은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염두에 둔 말로 들렸는데요. 작정하고 준비한 말 같았어요.

맞아요. 저한테는 백상연극상 작품상을 받는 것보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TV에 나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공적인 발화를 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의 인권을 “나중에"로 미루는 정부에 대해서는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계속 화가 나 있었죠. 아직도 얘기하면 화가 나네요.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던진 이야기였나요?

차별을 방관하는 정권, 묵인하는 시민들, 그리고 혐오세력을 타겟으로 한 말이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트랜스젠더 친구들, 퀴어 친구들이 힘을 얻었다고 고맙다고 연락을 많이 해 주더라고요. 제일 좋았던 순간은 60대 트랜스젠더 친구가 저를 안아주면서 울었을 때. 누군가한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날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팀이 작품상도 타고 연기상도 탔는데, 다같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배지를 달았거든요. 성소수자부모모임 카톡방에 그게 올라왔대요. “지금 백상예술대상 하는데, 쟤네 띵동 배지 달고 있다!” 그 조그만 배지를 발견해 주신 거죠.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그 수상소감을 말할 때 두렵지 않았나요?

이 질문을 되게 많이 받았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부를 비판하는 것, 그리고 혐오세력에게 공격받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세계를 향한 선포라기보다, 뚜렷한 한 사람을 향한 말이었거든요. 이 세계에서 사라진 많은 존재들, 그중에서도 소중한 친구였던 존재를 앞에 두고 말한 거죠. 그래서 두려움이나 떨림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대중매체를 활용하자는 정확한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힘 있다, 멋있다, 용기 있다, 그렇게 말해주셨는데요. 사실 저는 되게 평범한 얘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수상소감치고 너무 무난한데?’ 이렇게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옳은 말이잖아요.

너무 뻔한 말이고 당연한 말인데. 그런 말을 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고, 오히려 그게 용기 있다는 말을 듣는 게 되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일 무서웠던 건, TV에 나왔다는 이유로 제가 외모나 그런 걸로 대상화 되고, 상처받을까봐. 저는 필요한 말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간 건데.

너무 재미있는 건, 제가 수상소감에서 트랜스젠더 프라이드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구자혜는 트랜스젠더인가?”라는 질문도 받았어요. 거기다 같은 팀 남자 배우가 동료로서 손을 잡았는데요. 너무 유성애∙이성애 중심 사회다보니까 남녀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을 잡으면 당연히 사귄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진짜 웃기죠.

그 전에도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다른 사람의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저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는 무시하고 못 본 척하지?’ 싶을 정도로. 가십으로만 활용하는 거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구자혜 연출가.
구자혜 연출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제 수상소감이 그렇게까지 회자되지는 않았어요. 대중매체를 활용해서 이렇게까지 발언을 했는데도. 상 받으러 나와서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면,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최소한 이 정도는 적극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어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 혹은 방관하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자극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거기까지는 안 넘어갔어요. 내가 하는 연극 장르가 소위 대중 예술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관심이 없는 건지. 누가 대상을 탔는데 누가 박수를 안 쳤고, 이런 기사가 조회수가 더 많고.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을까. 또 한국 사회에 깊은 ‘빡침’과 실망을 느꼈습니다.

혹시 다음에도 만약에 뭔가 있으면, 더 과감하게 갈 생각입니다. 제가 너무 매너 있었던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변 친구들 중에 ‘정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혐오세력은 아닌, 하지만 딱히 관심은 없는, 긍정적으로 방관하는 다정한 사람들. 솔직히 많죠.

제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인터뷰를 하고, 뭔가 나서서 했을 때 “와, 자혜야, 너무 멋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왜 멋있지?”라고 생각하고, 그 내용을 보고,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청원에 참여하고, 가족이 관심을 갖게 하고, 이렇게 변한 사람이 세 명 정도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 것 같아요.

항상 액티비스트와 아티스트 사이에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연출로서의 프로필에도 항상 ‘동시대의 사회적 참사, 소수자, 비주류의 이슈를 컨템포러리하게 다루고 있다.’고 나오고요. 그런데 그 사이에서 조금 넘어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퀴어 페미니스트임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때로는 어떤 당사자성을 드러내면서, 제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지점과 연극이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농담이(아니)야>가 추구했던 트랜스젠더 프라이드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라는 작품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는데요. 트랜스젠더 프라이드를 원리로 구성했던 연극이에요. 그런데 ‘트랜스젠더 프라이드'라는 게 “자, 트랜스젠더는 프라이드가 있어. 힘이 있어. 행복해!” 이것만이 아니잖아요. 그가 겪는 고통은 실체이니까요.

그 존재가 가진 고통, 생각, 힘, 꿈, 희망, 행복, 모든 것들을,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무대에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것. 그것이 <우리는 농담이(아니)야>가 추구한 트랜스젠더 프라이드입니다.

연극은 어쨌든 거짓말이고 환영이잖아요. 그 환영 안에서 당사자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항상 수위와 경계를 고민하는데요.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무용하다고 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에 앉아있는 누군가 중에 당연히 소수자가 있고. 내 친구가 있고. 자신의 존재가 가시화되는 걸 보면서 힘을 받을 수 있잖아요. 연극이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될 수도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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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한슬 | 취재, 작성
  • 조아현 |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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