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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
2022-01-06
왜 저렇게까지 해?

‘하던 대로' 하면 안 바뀌니까, 페인트를 끼얹었다

[왜 저렇게까지 해?]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이은호 활동가

기후위기
직접행동
화력발전소
두산중공업
기후불복종재판

에디터의 말

탄소 중립 선언을 촉구하며, 환경부 장관 앞에서 180cm 공룡 옷을 입고 '멸종 퍼포먼스' 하기.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는 대기업 간판에 녹색 스프레이 칠하기.

2020년 1월 결성된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엄숙하지도, 점잖지도 않고, 선을 지키지도 않는다. 돌발적이고, 소란스럽고, 공격적이다.

이런 감상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행동치고는 재미있어 보인다.

'공격 대상'의 반응은 엄숙했다. 간판에 녹색 스프레이를 맞은 두산중공업은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고, 재물손괴와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1840만 원을 내라고 고소했다.

서슬 퍼런 고소에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외쳤다. "오히려 좋아!"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활짝 웃고 있다. 한 사람은 녹색 스프레이를 손에 들고 있다.

덕분에(?) 이들은 법정에서도 기후위기의 주범들과 싸우고 있다. 스스로 이 싸움을 '기후불복종 재판'이라고 부르며.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스위스에서는 12명이 '크레디트 스위스'라는 금융 그룹이 화석 연료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며, 항의의 뜻으로 지점에 들어가 '테니스 경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데러를 후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벌금 처분을 받았다가 정식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소를 당한 피의자이자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활동가인 강은빈, 이은호를 만났다. 왜 이렇게까지 한 걸까? 기후불복종 재판을 둘러싼 이들의 전략과 마음을 물어보았다.

인물소개

이은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취미는 기후 악당들을 더 효과적으로 괴롭히는 길 찾기. '개인의 실천'만 강조하는 기후위기 대책이 싫다.

강은빈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겸 공동 대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직접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후 운동을 통해 혼자선 못 해도 함께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단: 국내에선 탄소 제로, 해외에선 석탄발전소 수출? 이게 말이 돼?

"여긴 사유지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직접행동을 벌였던 대기업 중 한 곳의 경비 노동자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사유지를 점거하기, 허락되지 않은 퍼포먼스 벌이기, 사유 재산에 녹색 스프레이 뿌리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무엇이 이들을 자극했을까?

직접행동(direct action)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제도에 반하여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단호한 행동을 말한다. 폭력 형태로, 비폭력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은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한 인도 독립 운동이다.

Q. 왜 '재물손괴'라는 방법을 택했나요?

강은빈: 기후위기 관련 정책을 비판하는 용어 중에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이라는 게 있어요. 한마디로 '하던 대로'라는 거예요. 기후위기 문제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쭉 하면 해결이 안 된다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잖아요.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는걸. 지금까지처럼 화석 연료에 기댄 문명을 누리면 그걸 막을 수 없다는걸.

그러니까 이 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려면 '하던 대로'는 안 되는 거예요. '대통령이 해결해주겠지' 하고 기다릴 수 없어요.

날것의 목소리와 충격을 주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용히 피켓을 들거나, 얌전하게 의견만 내는 게 아니고요.

안경을 끼고 양복을 입은 남성 뒤로 파랑, 빨강, 초록색 공룡 옷을 입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인간도 언젠가 화석연료', '우리처럼 멸종할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조명래 당시 환경부 장관 앞에서 '멸종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

예를 들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경찰 조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는 것도 '하던 대로'가 아닌,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이죠.

이은호: 약간 '관종' 같은 거예요. 기존에 하던 대로는 정치가 바뀌지 않고, 관성이 바뀌지 않잖아요. 속된 말로 '어그로'를 끌자는 의도가 있어요.

Q. 구체적으로는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기 위한 행동이었어요. 베트남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인가요?

강은빈: 2020년 하반기에 한국 국회와 정부는 '그린 뉴딜'이다 뭐다 하면서 탈석탄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한국전력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하는 사업을 검토하더라고요.

말이 안 되잖아요. 국내에서는 탄소 중립을 얘기하면서 해외에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다니.

저희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정부에서는 '일단은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까지는 사업을 진행하자'고 결론지었어요.

"하기로 한 건 하겠다." 완전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이죠. 앞으로 25년간 돌아갈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거고요.

이은호: 웃기죠. 베트남 하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Q. 정부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부분을 참을 수 없었던 거군요.

강은빈: 그렇죠.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가 진짜 기후위기에 잘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대통령도 탈탄소 얘기하고, 심지어 대기업들도 탈석탄 얘기하고.

그런데 딱 거기까지인 거죠. 실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순간에는 소위 '경제 논리'에 밀려버리는 거예요. 정말 기만적이죠. 집요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 거 같아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강은빈, 이은호 두 사람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책상에 초록색 스프레이가 놓여 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강은빈, 이은호.

이은호: 게다가 붕앙2는 경제적으로도 좋은 사업이 아니에요.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사업성을 검토한 보고서에서도 적자가 날 거라고 예측되어 있어요. 환경이냐, 경제냐, 양자택일조차 아닌 거죠. 오직 기업이 이 사업을 수주했다는 성과를 위해서 진행하는 거라면, 너무 바로 앞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실이 공개한 KDI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 개발사업 예비타당성 보고서. 이 사업에 들어가는 지출 비용과 향후 수입을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마이너스 7900만 달러라고 분석했다.

베트남 현지에 미치는 영향도 잘 따져봐야 돼요. 이미 지어진 붕앙1 석탄화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어요. 우물물이 오염되어 먹지 못하고, 오랜 시간 오염 물질에 노출되어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사망하기도 했죠. 생태계 파괴로 인한 살해, '에코사이드(Ecocide)'라고 할 수 있어요.

Q.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반대 운동을 펼쳤나요?

이은호: 우선 붕앙-2 사업에 참여한 다섯 기업을 지목했어요. 한국전력, 수출입은행,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하나은행.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에 비유해서 '탄소오적'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이 중 하나은행은 중간에 빠져서 '탄소사적'이 됐어요.

건물 앞에 마스크를 낀 사람이 '탄소오적 저지 선언문'이라고 쓰여진 대자보를 들고 서 있다.
'탄소오적' 앞에서 저지 선언을 하는 청년기후긴급행동. 탄소오적 '적지' 순례 장면은 이 영상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강은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요.

먼저 다섯 기업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어요. 왜 경제적 리스크와 환경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건지 응답하라고요. 2주간 답변서를 주지 않으면, 직접적인 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죠.

메일만 보내놓고 마냥 기다린 것도 아니에요. 각 기업의 CSR 관련 부서에 전화하고 컨택해서 메일은 확인했는지, 답변을 줄 수 있는지 계속 물어봤어요. 결국 모두 거절당했죠.

국회 쪽에도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이 몇 명 있어서 열심히 자료를 제공했어요. 국정감사에서도 이야기가 나왔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진행한다는 거예요.

Q. 직접행동 이전에 '간접 행동'도 하신 거네요.

이은호: 되게 치밀하게 했어요. 질의서도 형식적으로 쓰지 않았어요.

기업별로 ESG 경영 전략을 다 확인해서 맞춤형으로 썼어요. 예를 들어 베트남 정부의 전력 수급 계획을 근거로, 재생에너지 쪽으로 투자를 하면 경영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든가…

강은빈: 사업적 리스크에 대해서 설명하고, 기업의 앞날을 걱정해주면서…

이은호: 물론 당장 피켓 들고 시위해야 할 때는 그것도 했고요. 진짜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봐요.

행동: 당연히 경찰이 올 줄 알고 있었죠

아무리 절차를 지켜도 무시당할 뿐. 결국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예정대로 직접행동에 나섰다. '재물손괴'가 발생한 그날 그 순간의 기억을 들어봤다.

Q. 그 모든 수단이 무시당했을 때, 어떤 직접행동을 하기로 했나요?

이은호: 석탄화력발전소의 설계, 조달, 시공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두산중공업을 골랐습니다.

강은빈: 마침 딱 두산그룹이 신사옥을 지었어요. 대대적으로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들이 총집합하는 거죠. '여길 가야겠다.' 상징적인 게 있잖아요. 뭐랄까, 집들이처럼.

사옥 앞에 두산 로고를 간판처럼 만든 조형물이 있어요. 거기에 녹색 스프레이를 칠하되, 수성 페인트를 골라서 그게 결국 지워지게 만드는, '그린 워싱'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어요.

Q. 일부러 수성 페인트를 고르신 거예요?

강은빈: 네, 세척 도구도 가져갔어요. 막 지우고 있는데 경찰차가 왔죠.

Q. 어차피 지울 거였네요?

강은빈: 저희는 목소리를 낼 때 누구에게도 쫄지 않아요. 대통령 후보를 만나든, 장관을 만나든.

그런데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결국 하청으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과 경비 노동자들이 수습하게 되잖아요.

그것만큼은 정당화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기습적으로 두산그룹 사옥에 스프레이를 뿌린 날, 어떻게 기억하나요?

강은빈: 엄청나게 추운 날이었어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아침 11시부터 근처 카페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했죠.

가장 극단적으로 경비가 삼엄해서 접근조차 못 하는 상황부터, 우연히 경비가 없어서 우리가 준비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상황까지.

다행히 교대 타임이었는지 그 장소가 딱 비어 있더라고요.

'DOOSAN'이라는 알파벳 모양 간판에 녹색 페인트가 얼룩덜룩 칠해져 있다. 그 위에 두 사람이 올라서서 'Shame on Doosan, 최후의 석탄발전소, 내가 짓는닷! -두산중공업'이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두산중공업 앞 직접행동.

재빨리 스프레이를 칠했죠. 너무 추운 날이라서 페인트가 얼어서 안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잘 나오더라고요?

조형물 위에 올라가서 준비한 현수막을 딱 펼치고, 석탄화력발전소 짓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경비 노동자분들이 오셨죠.

안녕하세요. 저희가 준비한 것 조금만 마치고 내려갈게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씀드렸어요. 그분들도 막 끌어내리지는 못하시더라고요. 준비한 퍼포먼스를 다 하고 나서 열심히 청소하고 있을 때 경찰차가 왔어요.

이은호: 너무 추운 날이라 스프레이가 바로 얼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강은빈: 은호 님은 경찰차 올 때까지 계속 지우셨어요.

Q. 경찰이 올 걸 미리 예측하셨나요?

강은빈: 당연하죠. 애초에 각오를 한 활동가들이 직접 스프레이를 뿌리기로 했어요.

이은호: 경찰 조사 이후 법원에서 약식명령으로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어요.

저희는 여기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신청했어요. 이 사건을 단순한 벌금 사건이 아닌 기후위기 불복종 재판으로 확장하고 싶었어요.

Q.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군요. 어떤 죄목이죠?

강은빈: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 위반과 재물손괴죄예요.

Q. 한편 두산중공업은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요.

강은빈: 맞아요. 1840만 원을 요구했어요.

Q. 어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나요?

이은호: 조형물에서 스프레이를 지우면서 스크래치가 나고, 교체를 하느라 운반하고… 덧붙여 회사의 이미지가 훼손됐고 임직원들의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요. 실제로 소송 문서에 그렇게 써 있어요.

그렇구나… 큰 충격을 받으셨구나. 그런데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생기면 쏟아져 나올 온실가스의 충격은 어떡하죠? 인근 주민들이 겪을 오염은요?

로고에 녹색 스프레이 좀 뿌렸다고 그렇게 충격을 받으시면, 이런 충격은 어떻게 갚으시려고 그러는지.

책상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녹색 스프레이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던 '그 스프레이'를 보여주는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이은호.

강은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법이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엄청 보장해줘요.

대기업이 자신의 소유인 땅이나 건물에 일어난 피해를 주장할 때는 얼마든지 변호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법이 명확하죠.

반면 기후 위기는 어떤가요. 우리에게 국경을 넘어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가 있을까요?

그 책임을 묻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법이 없어요. 구체적인 생태계가 실제로 영향을 받더라도요. 빙하의 권리, 강의 권리를 지키는 법은 없는 거죠.

Q. 아무리 불복종 운동 차원의 재판이라고 해도, 심적으로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강은빈: 저 혼자 감당하는 건 아니니까요. 동료들도 있고, 도와주시는 변호사님들도 있고요.

또 재판을 거치면서 주변 사람들과 기후위기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기회가 됐어요.

그냥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걸 반대하고 있어요. 서명해주세요" 하는 거랑, "제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걸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가 벌금형으로 법정에 가게 됐어요. 판사님에게 탄원서를 써야 하는데 서명해주세요" 하는 거랑, 지인들 입장에서는 완전 다르잖아요.

어느 날 친구한테 갑자기 카톡이 왔어요. 제가 보내 준 탄원서를 주변에 공유했는데, 어떤 분이 질문을 했대요.

왜 굳이 그런 방식으로 해야 돼? 좀 더 전문적이고 절차를 지키는 방법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런다고 들어줄 것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 해?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저한테 묻는 거예요.

Q. 뭐라고 대답했나요?

강은빈: 저희가 국회를 통해서 입법 운동도 하고, 기업에 질의서도 보내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던 것을 알려주라고 했어요.

또 이런 운동을 어떤 방법으로 하면 더 좋겠는지 아이디어나 제안 사항이 있으면 듣고 싶다고,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고요.

Q. 사실 베트남에 짓는 석탄화력발전소라서 공감이나 관심을 얻기 힘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강은빈: 그런 분들도 있죠. "우리 동네에 짓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 "베트남 사람들이 반대 운동을 해야지, 왜 너네가 하냐."

하지만 기후 위기 앞에서 지구는 모두의 터전이잖아요. 우리나라, 우리 기업의 책임에 대해선 우리가 얘기해야죠.

베트남에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있어요. 현지 환경 운동가들과 얘기해보니 베트남은 정치적 환경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정부가 하기로 한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가거나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해요.

마음: 무너질 수 있는 용기

다시 그 질문을 떠올려 본다. "여긴 사유지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결국 소송이 돌아왔다.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지는 않을까? 어떤 마음으로 기후위기와 싸우고 있을까?

Q. 직접 쓴 탄원서에 '우리는 절망 대신 저항을 택했다'라는 문구를 담았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강은빈: 저항… 저는 비판과 저항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비판은 한발 떨어져서 하는 거잖아요. 거기서 멈추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변화를 만들고 싶은 거지, 화풀이를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요.

기후위기라는 정말 큰 싸움에 뛰어든 뒤로 계속 부딪히고 소진되는 게 있어요. 저희가 싸우는 대상이 그냥 아무나가 아니고, 설립된 지 125년이 넘은 재벌 그룹이니까요.

게다가 심지어 그런 대기업이 우리 말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한다 하더라도, 기후위기가 곧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순간순간 많은 좌절, 실패, 절망, 조롱… 모든 걸 다 겪어요.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말하고 있다.

좋은 뜻에서 시작했는데 속상하고 상처 받고, 그렇게 끝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모든 걸 다 뚫고 갈 수 있는 생명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잖아요. 우리가 '나, 기후위기에 이만큼 진심이야'라고 증명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걸 경력으로 살려서 어디 취업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정말 더 나은 지구인데.

비판과 분노에서 끝나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자. 그런 게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이라고 무조건 힘들거나 눈물겹지만은 않아요. 저항은 그 자체로 활동가에게는 해방감을 줘요. 용기를 낸 거잖아요. 혼자서는 못 할 일들을 동료들과 같이 해내고, 그 안에서 연결감과 살아 있음을 느끼고.

Q. 분노에서 기인한 활동은 아닌 거네요. 그럼 이 활동의 근원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요?

이은호: '기후 우울(Climate grief)'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무기력해지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 세대가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잖아요. 지금 태어나는 아기들이 우리 나이가 됐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정치인들은 너희들이 살아갈 미래의 경제를 위해서 계속 석탄을 태우기로 했단다. 우린 그들을 열심히 비판했어." 이렇게만 말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도리를 매고 체크 셔츠를 입고 안경을 낀 사람이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실천은 열심히 했어." 이렇게만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물론 나의 일상부터 바꾸는 거 중요하죠. 그런데 거기에만 집중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짜 변해야 할 사람들, 바뀌어야 할 의사 결정은 따로 있잖아요. 기업이나 정부를 움직여야죠.

예를 들어 "자전거 타고 다닙시다"라고 말만 할 게 아니죠. 진짜 자전거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될 거 아니에요. 차도의 면적을 줄이면서 안전한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적자를 감수하고 공공 자전거 사업에 오랫동안 투자할 수 있는지?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시민의 힘을 보여주고, 권력자를 압박하거나 설득할 수 있을까요? 개인의 실천만 전파하는 걸로는 정말 부족해요.

강은빈: 저는 이 활동을 하는 근원에 '무너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게 무너지냐면요. 일단 자아 개념이 좀 무너져요.

기후위기는 너무 구조적인 문제라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어요.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나만 실천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기업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이 지구에 사는 모두가 엮여 있는 문제인데.

그런 부분에서 내 자신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나를 존재하게 한 문화나 사회가 무너지는 감각.

그래서 '나는 옳다'고 윤리적으로 무장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해자의 정체성을 갖는 거죠.

기후위기는 내가 아무리 인생을 걸어도, 심지어 자살을 해서 존재를 지워도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는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쟤는 왜 기후위기 운동한다면서 서울 같은 큰 도시에 살고 휘발유 차를 타고 다녀?" 이런 잣대로는 뭐가 안 바뀌는 거예요.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존재하니까요.

그럼 우리가 지금 해야 되는 건 뭘까요. 우리가 딛고 있는 모순적인 폭력의 구조를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서도,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거요. 내 안의 모순을 내치지 않고, 감당하려는 용기.

두 사람이 익살스러운 벽화 앞에 서 있다. 왼쪽 사람이 오른손에 스프레이를 들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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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한슬
    한슬
    취재, 작성
  • 조아현
    조아현
    사진

2/0
왜 저렇게까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