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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까지 생각했어, 아이한테 엄마 성을 주려고
에디터 민
에디터
·
2021-12-16

이혼까지 생각했어, 아이한테 엄마 성을 주려고

아빠 성이 꼭 기본값이어야 하는 거야?

성본변경
엄마성쓰기
민법
헌법소원

에디터의 말

아이에게 엄마 성을 준 사람들은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너도 너네 아빠 성 쓰잖아?" "아이가 겪을 차별은 어떡할 거야?" "그럼 그냥 아이한테 선택하라고 하던가."

결혼 이래 늘 이런 질문을 들어왔던 사람들을 만났다. 엄마 성을 쓰기 위해 법과 싸운 사람들이다. 김지예 정민구 부부는 막 태어난 아이의 성을 바꾸기 위해 가정 법원에 갔다. 이설아 장동현 부부는 법으로 굳은 부성우선주의에 도전하려 헌법 재판소로 향했다.

한쪽은 싸움에서 이겼다. 다른 한쪽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기든 지든 이야기는 남는다. 우리에게 성과 이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이는 혼자 태어나는 게 아닌데, 엄마 성을 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어야 할까? 이설아 장동현 부부, 김지예 정민구 부부를 만나 서로 겪은 일과 바라는 미래를 들어봤다.

인물소개

이설아 장동현 부부
이설아 장동현 부부

이설아 장동현 부부는 아이가 엄마 성을 쓰려면 절차가 복잡한데,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3월 헌법 재판소에 다녀왔다. 민법에 근거를 둔 부성우선주의 원칙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김지예 정민구 부부
김지예 정민구 부부

김지예 정민구 부부는 막 태어난 아이의 성을 엄마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 이혼까지 고려하다가 2021년 10월 서울가정법원에 다녀왔다. 한 달 뒤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의문이 많다.

"헌법 소원이 곧 결혼식이었다" 이설아 장동현 부부의 이야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성혼을 하고, 혼인 신고를 한다면 통과해야 할 퀘스트가 몇 개 있다. 그중 한 문지기가 묻는다. "자녀의 성 ・ 본을 모(母)의 성 ・ 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나중에 태어날 아이한테 엄마 성을 주겠느냐는 질문이다.

2020년 기준 가임기 여성이 낳는 아이의 수가 0.84명(서울은 0.64명)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 계획이 있든 없든 혼인 신고를 하는 사람 모두가 여기 답해야 한다. 신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인데, '아니요'라고 답하면 빨리 끝난다. 미래의 아이가 아빠 성을 쓴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라고 답하면, 즉 아이에게 엄마 성을 주겠다고 하면 추가로 할 일이 생긴다. 실제 사례를 보자.

2021년 기준 한국의 구청 및 시청에서 제공하는 혼인 신고서 양식(양식 제10호). 어느 지역에서나 이와 유사한 문서를 사용한다. ④번 '성 ・ 본 협의' 항목이 이렇게 묻는다. "자녀의 성 ・ 본을 모(母)의 성 ・ 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2021년 기준 한국의 구청 및 시청에서 제공하는 혼인 신고서 양식(양식 제10호). 어느 지역에서나 이와 유사한 문서를 사용한다. ④번 '성 ・ 본 협의' 항목이 이렇게 묻는다. "자녀의 성 ・ 본을 모(母)의 성 ・ 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지난해 12월 결혼한 이설아 장동현 부부는 이 질문이 불쾌했다. 엄마 성과 아빠 성 사이에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도 아니고 '엄마 성을 따를 경우에만 체크하라'라고 지시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 계획도 없었고 아이 성을 무엇으로 하기로 합의도 안 한 상태인데도, 신고서는 아빠 성을 강요하고 있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엄마의 성을 주겠다고 체크했더니 담당 공무원이 이럴 경우 추가로 협의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하라는 대로 협의서를 쓰긴 했지만, 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불쾌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 성을 쓰려면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하는 거야?'

시민 단체에서 일하는 이설아, 역시 직업적으로 제도와 싸우는 일을 해왔던 장동현은 이 불만을 공론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헌법 재판소로 갔다. 2021년 3월 18일, 이설아 장동현 부부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 781조 제1항, 부성우선주의 원칙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2021년 12월 현재 이 사건은 '본안 심리' 중이다. 쉽게 말하자면 법원이 심사 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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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이설아 장동현 부부의 헌법 소원 기자 회견 현장. 헌법재판소 앞에서 "부성우선주의원칙 폐지하라! 헌법소원심판청구 기자회견"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배치해두고, 이설아가 기자 회견문을 읽고 있다. 부부의 비대면 결혼식을 담은 영상 '시민결합선언식'의 캡처 화면.
이설아 장동현 부부. 결혼이 곧 헌법 재판소로 향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설아 장동현 부부. 결혼이 곧 헌법 재판소로 향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이 법정 다툼이 이설아 장동현 부부에게는 곧 결혼식이었다. 결혼 비용을 '소송 이벤트'에 다 쓴 것이다. 천만 원쯤이 들었는데, 비용 대부분은 변호사 수임료다. 동영상 제작비도 좀 썼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화보 촬영을 비롯해 위헌 소송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던 순간을 담아 '영상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의 이름은 '시민결합선언식'이다.

장동현은 이 특별한 결혼식을 통해 제도의 모순을 짚고 싶었다. "엄마 성과 아빠 성을 동등하게 놓고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엄마 성을 쓰겠느냐고 묻고, 그러겠다고 하면 협의서를 작성하래요. 이상하지 않아요? 선택할 자유를 제도가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혼하려고 했어요" 김지예 정민구 부부의 이야기

김지예 정민구 부부는 8년 전부터 혼인 신고서의 그 양식을 알고 있었다. 엄마 성을 쓰겠다고 체크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그런데 그날 김지예가 바빠서 관할 구청에 못 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알았다. 혼자 신고하러 갔던 배우자 정민구(김지예 표현으로 "원래 뭘 잘 흘리는 사람")가 해당 항목에 체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김지예는 '이 사람, 하던 거 또 했네' 생각했지만 정민구는 그게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담당 공무원이 "아빠 성 쓰실 거죠?" 하고 물은 것도 기억한다. 근데 '아니요'라는 말이 안 나왔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동의를 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자녀 계획이 명확하게 서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부모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가진 걸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흘러서 배우자랑 토론하면서 치욕스러웠어요. 나는 늘 '한남'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와 다르지 않았던 거예요."

때를 놓치면 할 일이 많아진다. 해당 항목에 동의한다는 혼인 신고서를 쓰고 협의서까지 제출했다면 이후에 태어날 아이가 엄마 성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이 출생을 앞두고 기존의 결정을 뒤엎기로 마음먹었다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①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 신고를 한다
② 헌법 소원을 한다
③ 가정 법원에 찾아가 아이의 성본 변경을 신청한다

그러나 ① 이혼도 쉽지 않았고 ② 헌법 소원도 쉽지 않았다. 둘 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려면 이혼 당사자에게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면 한 달이 걸린다. 아이가 있다면 법원에서 혹은 온라인으로 하는 교육을 3개월 이수해야 한다.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아동 인권이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는 뜻이지만, 그걸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아이의 출생 신고가 더 급했다.

이혼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정민구 표현에 따르면 "엄청난 육아"를 해야 하는 일이다. 원해서 하는 일도 아닌데 교육까지 받으면서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아이는 언젠가 아플 수 있고, 출생 신고를 안 한 상태라면 병원을 드나드는 게 어려울 수 있다. 헌법 소원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인 의미가 크지만 결정이 더딘 일이다.

결국 김지예 정민구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③ 아이의 성본 변경 신청이다. 말 그대로 아이의 성과 본을 변경하겠다고 법원에 주장하는 일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기 위해 민변에 문의했다가, 가족팀 변호사단과 상의한 뒤 이를 '공익 소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어서 열 명의 변호사가 붙었다.

자녀의 성본 변경이 허가된 판례를 보면 아이의 복리를 위한 결정일 때, 즉 성 때문에 아이가 놀림을 받거나 편견의 피해자인 경우가 대다수다. 함께한 변호사단은 그와 다르게 "성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엄마 성을 쓰기로 한 것이 아이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는 요지로 올해 10월 서울가정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례적인 사유였지만, 한 달 만에 결과가 나왔다. 성본 변경이 허가되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김정원'이다.

김지예 정민구 부부. 아이의 성본 변경을 법원에 신청해 허가를 받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예 정민구 부부. 아이의 성본 변경을 법원에 신청해 허가를 받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바라는 새 성을 얻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둘째와 셋째가 생긴다면 그 아이들의 이름은 (다시 법원으로 가지 않는 한) '정○○'가 된다. 김지예는 형제자매의 성이 다른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라는 것은 안다. "제도가 우리 가족을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스웨덴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아빠 성을 쓰고, 동생(베타 에른만)은 엄마 성을 써요. 자매의 성이 다른 게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서 사는 거예요."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놀림을 받는 게 걱정스러워서 아이의 성을 법원이 바꿔주는 게 아니라,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너도 아빠 성 쓰잖아?" "아이한테 물어봤어?"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서 아빠 성을 쓰면, 그건 그냥 '성본을 따른다'고 표현된다. 아빠가 김해 김 씨라면 아이도 김해 김 씨가 되는 것으로, 혼인 신고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엄마 성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용어와 절차가 생긴다. 이를 '성본 변경'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성과 본을 바꾸는 일이다. 혼인 신고 시점이라면 관할 구청에서 할 수 있지만(이설아 장동현 부부처럼),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면 법원에 가야 한다(김지예 정민구 부부처럼).

닷페이스는 지난해 성본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부성 대신 모성 쓰기를 선택한 부부도 만났고, 성인이 성을 바꾸려는 과정도 알아봤다. 그 절차가 쉽지는 않았다. 주변의 우려(사실은 편견)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고, 법과 부딪히는 일이다. 아빠 성을 따르는 게 민법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아이의 성본 변경이 통과되는 사례 대다수는 부모가 이혼하거나 재혼했을 때다. 그러니까 아이에게서 아빠가 멀어졌거나 바뀌었을 때다. 가족 관계가 변하지 않았을 때도 성본 변경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그건 쉽지 않은 싸움이 된다. 아이를 만든 존재는 아빠만이 아닌데, 엄마 성을 쓰는 것은 성본을 따르는 게 아니라 성본을 바꾸는 일이며 법과 부딪히는 일이다. 게다가 아이가 살아갈 세상까지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이설아 장동현 부부. 둘이서 서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이설아 장동현 부부. 둘이서 서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김지예 정민구 김정원 가족. 가족 모두가 손을 모았다.
김지예 정민구 김정원 가족. 가족 모두가 손을 모았다.

김지예는 아이의 성을 바꾼 뒤 아동학과를 나온 친구한테 모진 말을 들었다. "너, 그렇게 하는 건 아이 학대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애써 참았다.

'네가 그런 아이들을 차별하면서 살아왔구나. 엄마 성을 쓰는 사람들이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겠다.'

그렇다면 엄마 성을 쓰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시선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이설아는 이제는 사라진 차별 이야기를 한다. 한때는 아이 이름을 봄 ・ 여름 ・ 가을 ・ 겨울 같은 한글로 지은 젊은 부부에게 "애들 커서 제 이름 한자로 못 써서 차별받는다"고 비난하는 기성세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자 이름을 쓰는 사람과 한글 이름을 쓰는 사람이 비슷한 비율로 함께 사는 세상이 됐다.

"저 또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어차피 옛날 관념으로 차별하는 사람들은 다 죽고 없어져요.(웃음) 사회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선택을 하면 차별받을 거라고 단정하는 거죠. 하지만 엄마 성을 쓰기로 한 아이들은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요."

김지예도 세대 변화를 느낀다. 얼마 전 결혼한 그의 여동생이 그랬다. "김 씨는 흔해서 싫다"면서 아이가 태어나면 배우자의 성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사소한 이유로 아이의 성에 대해 논의하는 동생 부부를 보면서 김지예는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일지도 몰라.'

그러나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 성을 쓰려면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을 처리하면서 의문은 계속 늘어난다. 정민구는 생각한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성이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성장하게 될 아이에게 그는 바란다. '자기 성의 이유를 어디서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장동현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성씨가 없으면 가족이 정말 파괴되는가?' 그가 보기에 성씨의 유용함이란 종가의 땅을 물려받았거나 그 유산으로 투기 이득을 본 사람들한테만 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는 아이와 아빠의 관계에서 성보다 중요한 건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 성을 쓴다고 해서 아빠와 아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 생각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준 자신의 성과 이름에 만족할까? 하지만 김지예 정민구 부부의 아이 김정원은 아직 말을 못 하고, 이설아 장동현에겐 아이가 없다. 당장 들을 수 없는 아이의 목소리 대신, 아이의 이름을 둘러싼 자유와 보호자의 책임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기로 했다. 어른은 아이 이름에 얼마만큼 개입하는 것이 좋을까?

김지예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고, 부모가 만들어주는 이름 또한 아이와의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관계는 변한다는 걸 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부모가 애써 만들어준 많은 것을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법이 반대하고 막아야 할 게 과연 성일까? 부모가 아이에게 종교적인 이름을 지어주는 건?' 아이의 종교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그런 건 참 쉽게 받아들이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고민하기 전부터 아이의 이름이 정해질 때도 있다. 한국에는 돌림자 문화가 있다. 정민구는 이름에 항렬을 반영하는 이 전통이 "남자 집안 중심 문화"라는 점을 지적하고는 이런 가부장적 집안 문화가 과연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물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학연 ・ 지연 ・ 혈연을 꼽는데, 이런 문화가 사라진다면 혈연 문제만큼은 좀 해결되지 않을까요?"

이설아는 모든 이들에게 이름은 필요하지만, 아이에게 이름이란 부모가 "임시적으로" 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겐 아명이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 호를 받았던 것처럼,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우리 시대의 아이 이름 또한 가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선택의 길이 열려 있는 게 나쁠 건 없지 않나요?"

한편 장동현은 그동안 게임과 인터넷으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게다가 스타트업에서 오래 일했다. 그가 경험한 사회는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본명을 모른다고 해서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제 본명을 부른다면 저랑 친한 사람이 아니에요." 배우자와의 관계도 이름보다는 '야'와 '너'가 더 편하다. "제 이름 세 글자가 제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족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면!

만든 사람들

  • 민
    취재, 작성
  • 조아현
    조아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