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작은 불빛을 켜서, 서로의 안전한 등대가 될 수 있다면

각자 작은 불빛을 켜서, 서로의 안전한 등대가 될 수 있다면

1998년부터 2021년까지, 군대 내 성소수자 생존기 3편

2021년 10월 08일
에디터 한슬

2008년, 제람은 군대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폭력과 가혹행위를 맞닥뜨렸다.

군대를 나온 뒤, 제람은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았고,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다. ❮You come in, I come out❯이라는 전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시각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이 전시는 제람이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제람의 전시가 안전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한 5명이 더 입을 열었다. 제람은 제주 도립미술관에서 2021년 10월 11일부터 ❮You come in, We come out - Letters from asylum(당신이 들어오면 우리가 나섭니다 - 망명지에서 온 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6명의 증언을 전시할 예정이다. 제람의 전시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1998년부터 2021년까지의 역사가 되었다.

제람과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이 인터뷰에는 성소수자가 군대에서 맞닥뜨린 편견과 혐오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험을 글로 마주하는 자체가 심리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전시에는 제람 님의 경험 뿐 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경험도 추가되었는데요. 어떤 계기로 다른 분들의 증언도 포함하게 되었나요?

저를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들은 그런 얘기를 해요. "영국 가기 전과 후, 네가 너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성적 지향을 비롯해, 저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오롯이 나로서 존중받고, 나를 드러낼 수 있고, 그런 모습으로 관계할 수 있는 자유를 경험한 이후에, 저는 제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답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You come in, We come out - Letters from asylum(당신이 들어오면 우리가 나섭니다 - 망명지에서 온 편지들)> 작업을 하는 제람.
<You come in, We come out - Letters from asylum(당신이 들어오면 우리가 나섭니다 - 망명지에서 온 편지들)> 작업을 하는 제람.

그렇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더 꺼낼 수 있는 경험을 마련할 수 있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단 동성애자 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문제는 이게 사회적으로 계속 반복된다는 거예요. 제가 2008년에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1998년에 하신 분을 알게 됐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에 안도하면서도, 1998년과 2008년의 증언 내용이 큰 변화가 없다는 데서 좀 더 좌절하기도 했고요. 2016년, 2017년에 군 생활한 분 중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분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시대는 변하지만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인식, 태도, 대응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록하고,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저를 포함한 총 4명의 증언을 담았는데요. 그때는 군이라는 조직이 자행한 국가 폭력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존재가 상하고, 깨지고, 고통받았던 경험들, 또 어떻게 스스로 다시 회복해 갔는지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당사자이자, 여전히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그 날을 살아가고 있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총 6개의 이야기가 됐어요.

2017년 군이 대대적으로 성소수자 색출을 벌여 20명 이상의 동성애자 군인들을 기소하고 처벌한 사건. 군형법 92조의 6항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군 부대 밖에서든, 군인이 되기 전이든, 상대가 군인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개인의 성생활을 파헤쳐 '범죄 증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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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시작해서, 2008년 저의 이야기를 경유해서, 2018년, 그리고 2021년까지 연결되는, 이 이야기 타래의 지점마다 누군가의 서사로 채워져 있는 것, 이 자체가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점, 점 이렇게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뭔가 엮어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의 역사가 아니라, 이제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역사로 방향을 틀어야 된다는 것들을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지만, 더 이상 작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함께 했기 때문에. 이 소중한 작업을 이어 오게 된 거죠.

1998년도에 겪으셨던 분은 '동성애자는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 끝까지 군대에 있었고 전역까지 한 분이셨어요.

보다 최근에 군생활을 경험했던 분들은 2008년의 제람보다는 대처가 좀 더 지혜로웠더라고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나아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보다 자기 주장도 하고, 문제라고 인식하는 시기도 더 빨랐고. 그래서 법과 제도적인 변화가 늦어질 때는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공감대, 이런 것을 문화적으로라도 형성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올해 추가하게 된 두 분은 직업군인이시고, 현재도 군 복무 중이세요. 이분들은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군인으로서 정년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가진 의무와 책임들을 다 해나가려는 성실한 군인이었는데. 어느 날 들이닥쳐가지고 "너 동성애자지?"하면서 강압적으로 수사에 협조시키는 경험을 했는데.

두 분 다 충실하게 군대라는 계급 사회 안에서 살아오던 사람이다 보니까 자기를 드러내고 주장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을 잘 지키지 못했던 거죠.

두 분 다 끝까지 군 복무를 하겠다고 하세요. 그 안에서 이제까지는 그런 왜곡된 구조들이 있는 걸 알지만, 나한테 별 일 없어서 외면하고 있었는데. 내가 당하고 보니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군대에서 그런 어려움들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잘 돕고 또 지지하고 보호하고 싶다고. 또 하나의 안전한 공간이 그들로 인해서 생겨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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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중에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건,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엄연한 사생활이잖아요. 그런데 동성애자 군인이 나눴던 그 성관계 횟수에 따라서 형량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는 좀 다부지게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하면 형량이 낮고. 압력에 시달려가지고 말한 사람은 숫자가 높아서 더 무거운 형량을 받는 등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도 일어났고.

또 포렌식으로 핸드폰 대화 내용들을 다 검토할 거 아니에요.

"너 이 사람을 만났네. 이 사람도 동성애자지?" "네."
"그 사람이랑 커피 마셨네." "네."
"그러면 잤겠네." "아니요. 커피 마셨는데요."
"아니 어떻게 동성애자가 만나서 커피만 마셔, 잤겠지."

한 분은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처음에는 그냥 좀 순종적인 마음으로, '내가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으니까 죄를 지은 거고, 그러면 벌 받는 게 당연하구나.'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군 검사의 질문을 받다 보니 이 법이 진짜 이상한 거죠. '아, 어쩌면 법이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겠구나.' 하는 자각이 생겨난 거죠.

전시에 와서 그런 서사도 지켜보실 수 있어요. 납작하게 피해자, 생존자로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6가지 증언이 다 다른 이야기거든요. 각자의 서사를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잘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추가 증언을 들으면서 그 생각이 들었어요. '군인권센터가 일을 진짜 잘한다.' 굉장히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듬고, 헌신적으로 이분들을 지켰구나 하는 것들을 너무 느꼈어요. 광고하려는 게 아니고, 진짜 칭찬 받아야 되는 곳인 것 같아요.

'아, 한 사회에서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는 노력들이 굉장히 어렵구나. 너무너무 헌신이 필요한 거구나.'

그랬기 때문에 저 또한 이분들과 안전하게 만나서 증언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역할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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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거예요. 수백 번 얘기할 때마다 아프고. 얘기하면 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서 열심히 막 인터뷰도 하고 홍보에도 열을 올리는데, 그게 할수록 아픈 거예요. 자꾸 들춰내야 되니까.

그래서 어제도 한 선배 예술가 선생님이 오셔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좀 접어두면 어떻겠어요? 이 펼쳐진 편지를 좀 포개두면 어떻겠어요?"라는 그런 따뜻한 제안도 주셨는데. 저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장을 마련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의미 때문에 다들 이야기하는 데 동참하신 거예요.

고통들은 계속되고 있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군형법 92조의6은이미 사문화되지 않았냐?" 뭐 이런 얘기들도 있지만, 그것으로 고통받고 있고 오늘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다가 사문화됐다는 말은 할 수 없죠.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3차례 합헌 판결을 내렸다(2002년, 2011년, 2016년). 현재도 이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다. 이 조항에 대해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정리(링크)를 참고.

중요한 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요. 젊은 시절의 중요한 시간을 보내요.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화 과정을 겪어요. 그리고 그때 경험한 사회 감각을 토대로 남은 삶들을 살아가요. 근데 군대에서 동성애자, 여성 등등 사회적인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폭력이 가해져요. 정당하게 가해져요. 법으로 동성애자를 처벌해도 된다고 규정돼 있다는 거는 그 존재를 불법으로 만드는 거거든요.

그런 감각을 기억하고, 살아가면서 실천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군형법 92조 6항은 너무너무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도 제정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이나 군형법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요. "차별금지법 안 돼." "군형법 냅둬." 거추장스러운 일이니까 하지 말라고 그러는 건데요.

누군가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해요. 누군가의 삶과 존재가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 감각에 대해서 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내 주위에는 성소수자 없는데. 나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이런 분이 계시다면 그건 진짜 심각하게 생각해 보셔야지 돼요. '나 별로 안전한 사람 아니었나봐.' 그렇게 한번 돌아보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고.

어느 날 문득 내 소중한 사람들, 혹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했다면. 꼭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했다면. 너무 잘 사셨어요. 안전한 공간이신가봐요.

우리 모두가 관계로서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넓혀나가고, '나 여기 있어. 나는 안전한 공간이야.'라고 깜빡이는 등대처럼. 많은 곳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되게 어둡고 힘든 세상인 것 같지만, 각자 작은 불빛을 켜서, 서로를 등대로 식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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