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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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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결혼 안 한 엄마들

독신자 입양이 가능해진 첫 해, 온 가족이 '입양팀'이 되었다

[결혼 안 한 엄마들] "결혼과 출산처럼, 입양도 욕망으로 해요"

가족다양성
입양
입양가족

입양은 선행일까?

세 살 민이에게 갑작스럽게 병이 찾아왔다. 결국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민이 엄마 정은주씨가 16년 전에 겪은 일이다.

은주씨는 아이를 잃은 뒤 이혼을 하고, 20년간 교사로 일했던 경력도 스스로 접었다. 하루하루 숨을 못 쉬겠다고 느낄 만큼 깊은 슬픔에 매몰된 시기, 봉사 활동을 하러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보육 시설을 찾았다. 민이를 닮은 아이가 어쩐지 거기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은주씨는 거기서 당시 한 살이던 해민을 만났고, 몇 달 뒤 입양했다.

"제 어머니가 많이 걱정했죠.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아니야'라고 말을 못 하셨대요. 제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운 걸 아니까. 그러다 제가 입양을 앞두고 아기 용품 고르는 걸 보고 체념했대요. 민이가 떠난 뒤 처음으로 제가 웃는 모습을 보고는 '내 딸을 살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돌아보면 은주씨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가족을 떠나보냈으니까 충분히 애도를 하고, 새로운 아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은주씨는 "무조건" 아이를 갖고만 싶었다. 수많은 아기를 만나고 돌보자 비로소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다.

정은주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단발머리를 하고, 흰색 셔츠와 안경을 착용했다.

2007년이었다. 입양법 일부가 개정되어 독신자 입양이 가능해진 첫 해였다. 은주씨는 자격을 갖췄지만 막 바뀐 법이 당장 자신에게 적용될지 알 수 없었다. 법은 양친(입양 부모)의 조건에 대해서만 규정할 뿐 실제 허가는 입양 기관이 한다. 여태 독신자 입양을 진행해본 적 없는 기관 소속 수녀들을 설득하기 위해 은주씨 근처에 사는 동생 부부까지 '입양팀'이 되었다.

"기관에선 보수적으로 생각했어요. 법이 바뀌긴 했지만, 부부라면 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한 사람이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데 혼자라면 그럴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요. 그때 동생 부부가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직접 서류를 쓰겠다고, 이렇게 가족 모두가 책임을 갖는 일이라고요. 그렇게 해서 몇 달만에 허락을 받았어요."

그 허락에는 은주씨가 몇 달간 시설에서 아기 돌봄 봉사 활동을 했다는 것도 작용했다. 하지만 은주씨는 해민의 입양을 두고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기심" 때문이었다.

우리는 결혼도 출산도 욕망으로 해요. 그 마음은 자연스럽잖아요? 입양도 똑같아요. 좋은 일을 한다는 이타심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싶은 이기심에 바탕을 두는 게 당연해요.

난임 부모가 입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가 임신을 못 해서 '차선책'으로 입양을 택한다는 공고한 인식이 은주씨는 많이 걱정스럽다. 만약 "엄마가 아기를 낳지 못해서 너를 입양했어"라고 말한다면, "임신할 수 있었다면 너를 입양하지 않았어"라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난임이 아닌데도" 입양을 결정한 부모가 칭송의 대상이 되는 일도 경계한다. 은주씨는 입양을 선행으로 볼 게 아니라 아이 앞에서 나는 너를 원해서 입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모 자식 간 진심을 공유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엄마가 나 입양했으니까 잘해줘야지

욕망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이가 생겼다면 돌봐야 한다. 한부모라면 여기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마련이지만, 은주씨는 돌아볼 만한 고통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오래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입양을 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아이의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도 돌봄에 손을 보탰다. 교직 연금 덕분에 큰 경제적 문제도 겪지 않았다.

다른 가정과 차이가 있다면 주양육자인 은주씨가 상대적으로 "늙은 엄마"라는 사실이다. 그는 40대 중반에 해민을 입양했다. 해민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친구 하나가 해민에게 엄마 나이를 묻더니 말했단다. "너네 엄마 할머니였네?"

그러나 은주씨는 자신이 "늙은 엄마"이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은퇴로 얻은 여유로운 일과 속에서 아이와 더 많이 교감했고, 그 덕분에 보다 민주적인 가정을 만들 수 있었다. 입양을 둘러싼 그들 가족의 인식만 봐도 그렇다. 해민은 성장하면서 민이가 누구인지를 차차 알게 됐다. 사진 속의 세 살박이 민이를, 해민은 '민이 누나'라고 부른다. 느닷없이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엄마가 나 입양했으니까 나한테 더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지난해 은주씨는 자신의 입양 경험을 바탕으로 책 <그렇게 가족이 된다>(2021)를 펴냈다. 책을 계기로 인터뷰를 하고, 새로운 글을 쓸 기회도 생겼다. 해민은 은주씨가 이렇게 '입양 스피커'가 된 건 자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나 입양했으니까 책도 쓰고 원고료도 벌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더 잘해야 돼."

해민에게 입양은 때때로 불만스러운 일이다. 이를테면 내가 은주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지금 같은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해민에게 엄마는 "입양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다. 어디선가 입양 얘기가 나왔을 때 해민이 엄마를 부르면 한 번에 응답하는 일이 없다. 해민은 엄마가 좀 그만 나섰으면 좋겠다.

이런 농담이 오가기 전까지 은주씨는 실수를 많이 했다고 인정한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닐 때쯤 자신의 탄생 과정을 배운다. 그 무렵 해민이 물었다. "나, 엄마 배 속에서 나왔지?" 그때 은주씨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니라고 답했다. 해민은 화를 내면서 사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나도 엄마 배 속에서 나왔어!"

은주씨가 속한 입양가족 모임에서는 '사실'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진솔하게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에 집착하기 전에 아이의 마음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다른 엄마'가 있다고 말하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구분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은주씨는 아이의 의문에 다시 답할 방법을 찾았다.

모든 아기는 배 속에서 나와. 너도 그렇게 나왔어. 그런데 너를 낳은 분이 너를 키울 준비가 안 됐어. 너를 키워줄 사람이 필요해서 우리가 만나게 된 거야.

은주씨는 이렇게 '너를 낳은 사람'과 '너를 키운 엄마'를 구분해 설명하려 애썼다. 해민의 삶에 엄마 말고도 할머니・할아버지・이모・이모부가 함께한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생모 혼자서 아이를 키우긴 힘들다는 것도 일깨웠다. 해민이 입학했을 때는 일일교사를 자청해 해민의 학급에서 입양 교육을 했다.

해민이 중학생이 됐을 땐 둘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해민이는 생모가 궁금하지 않아?" "엄마가 먼저 만나봐. 괜찮은 사람이면 소개해줘." 해민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은주씨는 아이와 입양 사실에 대해 말할 때 비장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편견이 많은 사회에선 한 발 비켜서서 비틀어 생각할 때 해법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저 애는 입양아야'라고 누군가 말하기 전에 은주씨는 '우리는 입양가족'이라고 말해버린다. 입양아라는 말로 너와 나의 입장을 구분하기 전에, 본래부터 너와 내가 입양과 무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는 분리되기 어려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은주씨에게 입양은 아이의 정체성이 아닌 가족의 정체성이다.

정은주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단발머리를 하고, 흰색 셔츠와 안경을 착용했다.

다만 요새 고민하는 것 하나는 '반려동물 입양'이라는 표현이다. 사람부터 동물까지 가족의 개념은 넓으니까 그 자체로 문제 없는 말이라고 은주씨는 느끼지만, 어떤 아이들은 입양 사실을 알고 개념을 검색했다가 개와 고양이부터 본다. 아직 신중하지 않은 또래들은 그걸로 친구를 놀리기도 한다. 그는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방법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개와 사람의 입양을 각각 다르게 표현해야 할까요? 동물에게 분양이란 말이 따로 있긴 하지만, 동물도 가족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언어 표현을 문제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요. 저도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부모로서 이런 걸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니 입양엔 어느 정도 용기와 공부가 필요해요."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20년 일한 은주씨는 "한 번도 튕겨나간 적 없이" 부모의 기대에 맞춰서 살아왔다. 그 결과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지만 청춘은 사라지고 정신은 병들었다고 말한다. 특히나 민이를 잃었을 때는 꽤 긴 시간 심리상담을 받았다.

열여섯 살 해민은 은주씨의 10대 시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이른바 '모범생 코스'를 밟고 교직을 경험한 은주씨는 공교육이 삶의 질을 저해한다고 생각해 해민이 여덟 살이 됐을 때 대안학교에 보냈다. 친구는 물론 학부모들과 해민의 입양 사실을 공유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라고 봤다.

현재 중학생인 해민은 바쁘게 산다. 지금 해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와 아르바이트다.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는 것은 일찍 알았고, 요리를 하거나 혼자 여행을 가는 등 알아서 몸을 움직이는 일에 능한 편이다. 요새는 특성화고를 탐색하고 있다. 분야는 결정됐다. 해민은 최근 한 미용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할머니와 엄마 머리는 해민이 도맡아서 잘라준다.

해민의 학교생활에는 또래 말고도 부모들이 있었다. 그가 다닌 대안학교에선 부모가 학교에 자주 찾아와 아이의 친구들과 놀아주고 운동도 같이 했다. 은주씨는 그 다정한 아빠들을 자신의 아이까지 품어주고 안아주는 고마운 존재라고만 여겨왔지, 아이의 생각은 몰랐다. 언젠가 해민이 이렇게 묻기 전까지는. "엄마, 어디 가서 아빠 구해오면 안 돼?"

그런데 최근 해민에게 아빠가 생겼다. 은주씨의 전남편이다. 이혼한 그들은 서로의 생일을 챙기거나 민이의 기일에 만나 함께 추모하는 사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이 자리에 해민이 동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서로를 아빠와 아들이라고 부르는 부자관계가 되었다.

"사회적인 아빠의 자리를 해민이가 갈구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이상적인 부자관계를 많이 봤으니까. 물론 그 사람(전남편)도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정이라는 게 그런 건가봐요.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몇 번 만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한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은주씨는 여성 혼자서 남자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면 은주씨는 여자아이를 순종적인 존재로, 남자아이를 각별히 주의가 필요한 대상으로 구분하는 세상의 시선이 잘못됐다고 답해줄 수 있다. 이런 편견 때문인지 실제로 입양을 준비하는 부모 대다수가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은주씨는 한부모라서 양육이 더 유리했다고 생각한다. 혼자라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전남편이라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아이가 미용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같이 살았다면 많이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해민이 아빠를 찾을 때 은주씨는 마음이 복잡하다. "입양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저는 항상 덤덤했어요. 근데 아빠 얘기만 나오면 해민이한테 미안해져요. 정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고… 저도 결국 사회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죠."

정은주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단발머리를 하고, 흰색 셔츠와 안경을 착용했다.

나는 질문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한다. 답을 얻으려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을 안고 돌아온다.

나는 이 어른들의 복잡한 고민 앞에서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엄마와 함께 충만한 안정을 경험하면서 살아온 아이가 '좋은 아빠'가 아닌 '그냥 아빠'를 원한다고 말할 때, 어른 사회는 과연 현명한 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진짜 필요한 건 그 순간 아이를 달래는 감동적인 한 마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전형에서 벗어난 더 많은 가족을 봐야만 한다.

다만 해민의 주변을 떠올리면서 안도할 수는 있었다. 해민에게 원하던 아빠가 생겨서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아이의 곁에 더 많은 어른이 있는 게 좋겠다. 그건 어른에게도 괜찮은 일이다. 아이가 어른을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어른도 아이를 가까이에 둘 때 더 나아가는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고 '결혼 안 한 엄마들' 시리즈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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