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되면 너랑 이렇게 같이 살래

할머니가 되면 너랑 이렇게 같이 살래

여주시 노인 생활공동체 '노루목 향기'

2021년 06월 17일
에디터 우리

에디터의 말

"저는 비혼을 지향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젊어서나 좋지, 늘그막에 어쩌려고." 반박하려는 마음이 잠시 차올랐다가 멈춥니다.

정말, 결혼하지 않고도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 늙고, 아파서 주저앉아 엉엉 우는 때가 많지 않을까? 나이 들어서도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에 여전히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당신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해 보셨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 줄 이 가족을 소개할게요. 경기도 여주시 금산면 주록리 노루목길에는 70살 동갑내기 세 여성 이경옥씨, 이혜옥씨, 심재식씨가 남편이나 자식 없이 함께 살고 있어요.

'노루목'은 예전에 노루와 고라니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을 활동 '지화자 두드림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7년 지기예요. 이경옥씨의 집이 갑자기 팔리고, 이혜옥씨는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심재식씨와 함께 집을 짓게 되면서 '어쩌다' 한 가족이 됐습니다. 노인 생활공동체 '노루목 향기'를 찾아 함께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물소개

재식 프로필 이미지
재식
결혼 경험 없음, 친언니가 둘 있다.
경옥 프로필 이미지
경옥
결혼 경험 있음, 자식과 손주가 있다.
혜옥 프로필 이미지
혜옥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반려동물 초롱이가 이경옥 씨 품에서 심재식 씨 품으로 옮겨 가고 있다.

노루목 향기 가족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나요?

재식: 그냥 이름 불러요. "혜옥아", "경옥아", 뭐 "초롱아" 이런 식으로.

경옥: 초롱이도 가족에 들어가?

재식: 응, 얘 부를 땐 "초롱아." 초롱이가 처음 강아지로 왔을 때 눈이 너무 초롱초롱한 거예요. 얘 말고 앞에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걔는 먼저 갔어요(죽었어요). 초롱이 기른 지는 한 11년 됐어요. 혼자 있다가 보니까 말동무가 되고, 친구가 되고, 의지도 되고 그렇드라구요. (웃음)

혜옥: 여기 키우는 강아지는 다 유기견이에요. 이름이 따순이, 복순이. 고양이도 있어요, 야미.

재식: 인제 부르면 올 거야. "야미야~." 저 뒤에 아마 세 마리가 있을 거야. 사료 한 포대를 사 놓으면 고양이들이 보름만에 다 먹어요.

노루목 향기에서 돌보는 고양이 '야미'

처음에 같이 살 때 어땠나요?

재식: 서로 친구였을 때에는 굉장히 나를 많이 알아주고, 내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줄 알았어요.

근데 한 지붕에 들어오니까 백에서 아흔아홉 가지가 달라요.

하나에서 열 가지가 아니라, 백 가지가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참다 참다 못하고 친언니들하고 의논을 했어요. '못 살겠다. 아닌가 봐, 여지껏 편하게 살다가 이게 아닌가 봐.'

그런데 어떻게 계속 같이 살게 됐나요?

재식: 큰언니가 나보고 '이년아, 너 밥 굶어.' 이 얘길 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무슨 밥을 굶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

그런데 가만히 나를 보니까, 혼자 있으면 진짜 찬밥에다 물 말아서 김치하고 먹으면 끝날 거 같애요. 그렇지만 둘이 있으면 아무래도 얘 때문에라도 나도 뭔가 집안일이라도 한 가지 해야 하고, 얘도 나 때문에라도 먹을 걸 사 가지고 들어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부터 그 아흔아홉 가지 다른 게 안 보이더라고요. 사람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순간이 한 번 오더라고요. '아, 이렇게 같이 사는 게 소중한 거고, 이게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인가 보다'라고.

그때부터 서로 다른 점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나는 그런데 또 다른 식구들은 아닐 수도 있지. 또 속마음은 모르니까.

경옥: 여기 들어오고 보니까 서로 꼬박꼬박 아침 챙겨 먹게 되고, 아프면 서로 걱정도 해주고, 약도 갖다주고 그런 게 참 좋더라고요. 혼자 있을 때는 끙끙 앓아도 나만 앓고 마는 거지, 다른 사람은 모르잖아요.

근데 친구들이 걱정해주고 하니깐 꼭,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나한테도 이렇게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어. 꼭 엄마 같으다.' 이렇게 맘이 들고, 편안해지고. 그래서 '까짓거 집 따로 얻을 필요 없이 같이 살자!' 해서 셋이 같이 살게 됐어요.

식사 당번은 어떻게 맡나요?

재식: 아침은 꼭 제가 해요. 담당 아닌 담당이 돼버렸어. 경옥은 늦게 일어나니까 아침을 못 해 먹어요, 머리하고 나가기도 바쁘니까. 나랑 혜옥은 그보다는 한가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제 내가 다 해. 혜옥이는 바깥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할 수 없고.

혜옥: 집안일도 너 꺼, 내 꺼 정하는 게 전혀 없었어요. 그냥 알아서 각자 하는 대로, 지저분하면 청소기 돌리고 그랬지. 아침만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는 먹자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간다 그러면 같이 가고.

동네 분들이랑 같이 자주 식사해요. 우리가 착해서 그렇지 뭐(웃음). 그래서 먹는 거는 맨날 잔칫상이야.

그 이후에는 부딪히는 일은 없었나요?

혜옥: 서로 아무리 좋아도 갈등은 없을 수가 없거든요. 어디 가니까, '갈등은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해소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결국 각자 자기 주관대로 산다는 거 같아. 서로 취미나 관점도 다르다 보니까 서로 간섭을 안 해. 내가 그 분야를 잘 모르니까. 그걸 가지고 '넌 왜 그렇게 해, 저렇게 해'하고 내 안으로 들이려고 하면, 거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될 거 같아요.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이미 초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웃음).

저 친구가 나와 다르다는 거를 무심히 보면 되거든요. 그걸 무심히 보면 다툼이 안 일어나.

재식: 그건 우리가 아마 잘하는 거 같애. 으른이잖아, 우리가! 으른이니깐.

아까 보니 아들, 손주 분들도 와 있더라고요. 같은 가족인데 노루목 향기와는 다른 점이 있을까요?

경옥: 자식들은 다 커서 자기네들 가정을 꾸리다 보니 나를 찾아오는 것도 힘들고, 어렵고. 내가 엄마라고 해도 자기네들 살기 바쁘니까 신경을 덜 쓰잖아요.

우리는 셋이 같이 한 가정을 이뤄서 식구로 살고 있으니까. 서로 도와주고, 아프면 챙겨주고 하는 게 자식들보다 더 가깝고, 더 맘의 의지가 되고. 아들들은 장가보내고 나면 뭐 해외 동포래매요(웃음).

재식:

어렸을 때 가족은 굉장히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왕인 줄 알았고, 엄마가 뭐 하라고 하면 그냥 그거 하고.

친언니들도 나랑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 보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 식구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노루목향기 가족사진
노루목향기 가족사진

언니들도 본인들 가족이 있으니까 나보다는 그 가족들이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됐고, 떨어져 사는 생활이 됐고.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언니들이 반대를 많이 했어요. 내가 결혼한 것도 아니라서. 시골에는 남자 없으면 못 사는 게 있으니까. 이제 언니들이 '그 친구들이 고맙다'라고 해요.

새 식구를 모집했던 적도 있었다고요.

혜옥: 우리가 여기서 두 명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섯 명 정도면 집안일 분담이 더 되고, 공동 자금으로 생활하다 보니까. 근데 그 모집이 쉽지는 않습디다.

재식: (같이 살려고 했던 분 중에) 한 분은, 이 집 앞에 택시가 와서 섰는데 박스 박스 내리는 거예요. 당장 오실 것도 아닌데 간장에서부터 미역, 또 무슨 무슨 생활용품…. 그 때 그 분이 쥐포도 줬었는데,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쥐포를 처음 먹어 봤네.

그 분한테 '그럼 지금 오실 거냐' 그랬더니, 자기 남편이 지금 간암인데 2개월 밖에 못 산다고 그랬대. 그래서 2개월 후에 혼자가 되면 여기를 올 건데, 같이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보러 온 거예요. 근데 그 분 남편이 아직도 (안 죽고) 살고 계신대. 어떡하면 좋아. (웃음)

남성 노인분들이랑 같이 사는 일도 생각해 보셨어요?

혜옥: 우리가 마을에서 노인 공동생활 토론회 할 때, '성남 이로운 재단' 이사장님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여자들은 밥 잘 해 먹고 어울려서 살지만, 남자들이 더 걱정이다. 여자들은 걱정할 게 못 된다.' 남자 노인들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거야.

재식: 남자가 있으면 지금 분위기도 깨질 거고, 부인이 따라오게 되면 그 부인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남편한테만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신대요. 여자들은 어딜 가도 혼자 살 수 있는데, 남자들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가 고민 아닌 고민입니다.

성남 이로운 재단: 경기도 성남시의 비영리 법인으로, 주로 성남시 지역공동체 및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을 목적으로 운영한다.

남성 노인분들이 밥하고, 청소하는 것들을 어려워해서요?

재식: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10년을 더 산대요. 근데 남편은 부인이 죽으면 몇 개월 못 산대요.

남자들이 살면서 알게 모르게 여자들한테 의지하고 살았고, 나이 먹을수록 여자가 더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여자분들은 노인정에 와도 남자 어르신 귀찮아해요. 가서 밥 차려줘야 되지, 또 뭐 해야 되니까 싫어해. 남자 어르신 안 계시면 여자들은 룰루랄라, 화투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누구 흉이라도 보면서 시간 잘 보내는데.

그 남자 어르신들은 자기 무게를 잡아야 하니까. 그래서 노인정에서도 적응할 수가 없고, 우울증도 빨리 오고. 우리 또래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젊어선 여자들한테 큰소리 빵빵 쳤지만, 나이 들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를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애.

마지막으로 세 분에게 노루목 향기란 무엇일까요.

재식: 저는 앞으로 우리가 10년 정도 더 살 거라고 보고, 노루목 향기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요양원 안 가고 이 두 사람 앞에서 죽으면, 하늘에서 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루목 향기에 의미를 많이 둬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래, 이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좋다. 내가 언젠가 이 사람들과 함께 노루목 향기랑 없어지겠지. 노루목 향기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혜옥: 그건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그렇게 안 되면 어떻게 하려고.

재식: 내가 이 사람들 (죽음을) 볼까 봐 걱정이에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 가야 하는데.

경옥: 아유, (우리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많으슈.

(재식, 혜옥, 경옥은 모두 나이가 같다. 재식과 경옥은 생일이 하루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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