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도 퀴어가 있다

우리 회사에도 퀴어가 있다

게이 이사님, 레즈비언 팀장님, 현실입니다

2021년 06월 24일
에디터 우리

에디터의 말

레즈비언 김규진님은 회사에 청첩장을 제출하고, 신혼여행 휴가와 경조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니까, 결혼할 거니까, 당연히.

그렇지만 이성애자에게 '당연한' 것처럼 성소수자에게도 모든 회사가 '당연하게' 결혼을 위한 사내 복지를 제공할까요? 이를 받기 위해 커밍아웃을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많을까요?

사회가 이성애중심적인 만큼, 회사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 직장인이 많은 만큼, 퀴어 직장인도 많을 텐데. 여러분의 회사에서는 어떤가요? 성소수자의 존재가 자연스러운 환경인가요? 퀴어들은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당신 곁에서 일하고 있을, 퀴어(Queer) 직장인 다섯 명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간단 퀴어 용어 사전

  • 부치(Butch): 중성적인 스타일이나 성향이 있는 레즈비언.
  • 젠더퀴어(Gender Queer): 젠더를 남녀로만 분류하는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에 벗어난 성 정체성.
  •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여성 혹은 남성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성정체성을 갖는 트랜스젠더. 한편, MTF(트랜스 여성)와 FTM(트랜스 남성)은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다.
  • 진섹슈얼(Gynesexual): 여성 및 여성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인물소개

제이 프로필 이미지
제이
레즈비언, 2년 차 직장인. 심리상담센터 홍보 담당
정민 프로필 이미지
정민
게이, 3년 차 직장인. 건축 설계 디자이너
세진 프로필 이미지
세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2년 차 성교육 기관 강사
메타 프로필 이미지
메타
바이섹슈얼, 7년 차 반도체 엔지니어.
긍정 프로필 이미지
긍정
부치・ 젠더퀴어, 진섹슈얼. 11년 차 마케터

퀴어로서, 직장을 선택할 때 기준이 있었나요?

긍정: 취업을 준비할 때는 꿈이 다양했어요. 그런데 여자들에게 유니폼을 요구하는 회사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스타일이 지금처럼 중성적이었고, 유니폼으로 치마는 절대 입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리 좋은 조건의 회사여도 유니폼 착용이 의무인 곳은 거르게 되더라고요.

선택의 폭을 좁혀야 했네요.

긍정: 네. '내 남성적인 모습을 받아 주는 데가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스스로 작아지게 되더라고요.

첫 직장도 자율 복장이 규정이어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직장에서 저보고 "야, 너는 왜 여성 정장을 안 입고 캐주얼하게 입어?"라고 지적하더라고요. 이상했어요.

'남자 직원들처럼 정장 바지를 입었는데 왜 저렇게 말하지?' 남자, 여자 구별짓는 문화가 심해서 그만뒀어요.

정민: 저도 비슷했어요. 직종은 건축 설계로 정해뒀어요. 제 정체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곳이나,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 직장으로 가고 싶었어요. 건축 업계가 남초여서 그런 곳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 회사만 달랐어요.

회사 소개 중에, 한 퀴어 행사에 소장이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는 내용 한 줄이 있는 거예요.

그 설명을 보고 '번뜩' 했어요. 회사 포트폴리오를 찾아보니, 성평등 도서관의 인테리어도 맡았더라고요. 또 건축 회사의 소장은 남자가 대부분인데, 이 회사의 소장은 세 명 중 두 명이 여자였어요. 이런 조건을 보고 지금 회사에 지원서를 넣게 된 거죠.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 퀴어를 존중하는, 퀴어에게 안전한 문화.

세진: 저도 골라 왔어요. 지인에게 제가 사는 지역의 교육 기관 중에 이곳이 가장 퀴어 프렌들리하다는 말을 듣고 왔어요.

메타: 저는 회사에 지원할 때에는 별 고민이 없었어요. 회사 생활을 하던 중에 바이섹슈얼로 정체화 했어요. 물론 정체화 전에도 회사에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체화를 하고 난 뒤에,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거예요. 그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것들을 말하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그래서 긍정님과 정민님 이야기가 조금 부럽기도 해요. 직장을 미리 고른 덕에, 그나마 좀더 나로서 살 수 있는 곳으로 간 거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요.

너무 늦게 정체화해서 미리 회사를 고르지 못하고, 이렇게 보수적인 회사에서 일하게 됐나?

정체화: 자신이 원하는 성 정체성, 성적 지향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일.

정체화 이후에 세계가 달라졌다고 했는데, 좀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메타: 자기 검열을 많이 하고, 거짓말을 할 때가 많아졌어요.

하루는 만나던 친구가 저를 데리러 차를 끌고 회사 앞으로 왔어요. 퇴근해서 그쪽으로 가는데 팀장님들이 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친구를 지나쳐 갔어요.

물론 이성 애인이었어도 지나쳐 갔을 수 있어요. 그냥 들키기 싫으니까요. 그런데 그 마음이랑 이 마음이 다른 거죠. 직장 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절박함이 달라요. 직장 생활이 끝나지 않더라도, 직장 내에서 제 정체성이 입방아에 오르내릴 테니까요. 또 괜찮다고 한들 '받아들여 줘야 하는 존재'로 치부되는 게 굉장히 싫고 무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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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기를 할 때가 많으신가요?

메타: 아마 다들 있으실 거예요.

제이: 홍보 대행사에서 인턴을 했을 때에요. 여초 회사였는데,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남편이 뭐라고 했다." "우리 애가 무슨 일을 했다." "남자친구랑 뭐 했다."

거기에서 "애인이랑 놀러 갔어요."라고 하면 이상할 것 같은 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쟤는 남자친구라고 안 하고 애인이라고 하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했어요. 애인이 아니라 남자친구라고 표현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제 스타일이 중성적이다 보니 "네가 남자친구가 있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때 진땀을 흘리면서 세상을 살았네요.

긍정: "요즘엔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묻는 거 꼰대다." 이렇게 말해도 회사 사람들이 꼭 물어봐요. 다른 재밋거리가 없어서인 것 같아요. 특히 월요일 티타임 때 물어보잖아요.

저는 제이 님과 반대 사례인데, 같은 문제인 거 같아요. 동료들이 가끔 저보고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요. 너무 신기해요. (웃음)

내가? 이 스타일로 남자를 만날 거라고?

긍정: 항상 자연스럽게 물어봐서, 가끔 '이 사람들이 연기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애인이랑 주말에 뭐 했어."라고 해도, "아 그래? 그럼 네 남자친구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튕겨 나올 때 정신이 바짝바짝 차려져요. '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여자라면 당연히 남자를 만나는 게 입력돼 있구나.'

아우팅(Outing)이 생계와 직결되니까, 연기를 하게 돼요.

예를 들면, 회사에 애인이 놀러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평소에도 회사에 여자인 친구들을 자주 불러서 밥을 먹어요. 여자 친구들이 다양하게 많은 캐릭터로 만들어 놨어요.

아우팅(Outing):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행위

정민: 그게 더 퀴어한 거 아니에요?

긍정: 그런가? (웃음) 세 분은 직장 내에서 정체성을 오픈하신 거 아니에요?

정민: 아니요.

긍정: 아니에요?

정민: 그러니까 "나는 게이야."라고 한 적은 없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퀴어를 주제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는 회사에 했어요. 뭐, 알겠죠?

긍정: 인터뷰 영상 나가면 알게 되겠네요.

정민: 닷페이스를 구독하면 알겠죠? 모르겠어요. (웃음)

긍정: 정체성을 오픈하지 않은 저와 메타님과는 좀 다를 것 같아요. 저희는 직장에서 100% 연기를 하니까요.

정민: 그런 건 있어요. 제 정체성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으니까, 제 행동들이 게이를 대표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해요.

종종 고민돼요. '어떻게 내 행동이 게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처럼 보이지 않도록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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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저는 지금 직장이 되게 퀴어 프렌들리한 곳이거든요. 퀴어 이슈로 상처받는 일은 없었어요.

애인과 동거를 시작했을 때, 회사에 알렸어요. 회사 측에서 먼저 묻더라고요. "제이 씨한테 이 동거는 결혼과 같은 의미인가요? 아니면 결혼식을 따로 치룰 예정인가요?" 경조금 등 결혼에 준하는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해줬어요.

세진: 지금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분위기를 열심히 탐색했어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냐? 누가 트랜스젠더 이슈에 어떻게 반응하나?' 또 슬쩍슬쩍 제 생각을 흘리기도 했어요. 저를 여자로 분류하는 말을 하면, "네, 여자로 해 두죠."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나서야 커밍아웃을 했어요.

커밍아웃(Coming Out):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

세 분이 다니는 직장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진: 저에게 커밍아웃은 "당신들과 더 온전한 나로 관계를 맺고 싶다."라는 초대였어요. 트랜스젠더로서 겪는 일에 동참해달라는 의미요.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입니다."가 아니라, "트랜지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중성적인 이름으로 개명했는데, 이것만 해도 번거로운 일이 많아요. 회계 서류도 일일이 수정하고, 명함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요. 동료들은 그런 일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묵묵히 그 일을 처리해 줬어요. 또 트랜지션으로 생기는 신체 변화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 혐오 세력에게 공격을 받는 일을 같이 고민하고 맞서자고 이야기해 줬어요.

대신 업무 내용 자체에서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성교육 교안들 자체가 남녀 구별을 당연하게 여기거든요. 학교에서 강의할 때 누군가를 계속 배제하면서 교육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대낄 때가 많아요.

트랜지션(Transition):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적 수술을 통해 자신의 몸을 성별 정체성과 일치하도록 바꾸는 일.

긍정: 퀴어 프렌들리한 단체인데도 그래요?

세진: 이게 저희만 고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성별 이분법적인 과학 체계부터 바뀌어야 해요. 또 학교에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다루면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을 수 있고, 혐오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거든요.

정민: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한 고등학교의 도서관 인테리어를 맡았어요. 학교 측에서 화장실을 층별로 나눠 달라고 했어요. 성별을 두 개로 구별짓는 걸 최대한 피하고 싶었어요. 파란색과 빨간색을 쓰지 않는 식으로요. 그런데 픽토그램(pictogram)을 고르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색깔은 쓰지 않되 한글로 성별을 표기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어요.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하기 위해, '다목적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설계했어요. 공공 건물은 배리어프리 인증(BF)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구별하지 않게 하면서, 성별은 남녀로 나눠야 인증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성별을 나눈 화장실로 짓게 됐어요.

픽토그램(pictogram): 중요한 사항을 알리기 위해, 그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도록 한 그림. 대표적으로 건물 계단의 비상구 표시가 있다.
성중립 화장실(All gender restroom): 모든 성 정체성・성별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
배리어프리 인증(BF):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제도. 공공 건물은 의무 사항이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점자 블록을 설계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진: 다들 화장실에서 쫓겨나 본 적 있으세요?

긍정: (긍정과 제이 함께 말한다) 있어요.

세진: 호르몬 치료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최대한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으려 해요. 공공기관에 있는 화장실은 반드시 남자, 여자로 구분을 해야 되는 거군요?

정민: 네.

직장 내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나요?

메타: 이태원 퀴어 클럽에서 코로나가 확산됐었잖아요. 그 뉴스가 나온 다음 날, 오후 미팅 시작 전에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동료들이 그 일에 퀴어 비하하는 용어를 쓰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그냥 그 비하하는 말이 재밌으니까 쏟아내는 것 같았어요. 제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아는 동료도요. 저보고는 "여자들은 괜찮은데, 게이들이 불편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제이: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에 입사하면 밥을 사주는 문화가 있었어요. 한 유부남 과장님과 밥을 먹었는데, 그분이 "제이 씨, 카페에서 조금 더 얘기하다가 갈까요?"라고 하더라고요.

카페에 가니 그분이 "만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어봤어요. 성소수자라고 말하도록 유도하는 듯한 질문들을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혔어요. "나는 성소수자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괜찮다. 그리고 말해줘서 고맙다." 되게 찝찝했어요. 제가 원해서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라, 커밍아웃하도록 만든 거잖아요.

메타: 아우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민: "(말해줘서) 고마워." 이건 자기 퀘스트 하나 깬 느낌이잖아요. "나 퀴어 지인 한 명 생겼다!" (웃음)

긍정: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해요. '성소수자는 하리수나 홍석천처럼 독특한 직업일 거야.' 하지만 성소수자는 내 팀장이거나, 부하 직원인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성소수자여도 괜찮다." 이 말이 더 무겁지 않나? 우리를 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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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비슷한 경험이 학교에 근무할 때 있었어요. 교사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강해요. 저는 그 틀에서 벗어난 모습이라 튀는 존재였어요. 한 교사분과 급식 시간에 우연히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게 됐어요.

저한테 뜬금없이 "지금 퀴어 퍼레이드가 논란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분은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계속 설명하더라고요. 저를 배려한 게 아닌 거예요. '본인이 성소수자 친화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다.'라는 인정이 필요했던 거죠.

메타: 친한 동료들한테 커밍아웃해보고,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같은 맥락이에요. 커밍아웃한 순간에는 속이 시원하고, 제 정체성을 받아들여 준 느낌이라 고마웠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저를 일방적으로 배려해주는 태도로 대하더라고요. 그럴 때 상처를 받았어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퀴어들끼리도 서로 이해 못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지?" 이러는 순간 그게 차별이고 폭력이에요.

정민: 저는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던 게, 서로 먼저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제가 '애인'이라고 말하면, 솔직히 "나 퀴어야."라고 말하는 것 같긴 하잖아요. 일반인들이 애인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동료들은 그냥 '애인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더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은 거예요. 서로 친하지 않은 건 아닌데, 저녁 6시 이후에는 절대 카톡 안 해요.

긍정: 공과 사가 확실한 것 같네요.

정민: 네. 적당한 무관심이 편해요. 회사에서 서로 "주말에 뭐 했어?" 물어봐도, "여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 있어요?" "애인 있어요?"라고 한 적은 없어요.

제이: 제 친구가 편견이 없는데, 너무 웃겨서 얘기 잠깐 할게요. 그 친구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얘기인데요. "나 여자친구 있고, 애인 이름은 누구누구야."

"둘 다 최 씨네. 혹시 동성동본끼리 만나는 거야?" "그렇긴 한데… 법적으론 괜찮아."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보다 동성동본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얘기한 거잖아요. "네 정체성을 존중해."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주는 게 더 고마웠어요.

최 씨: 인터뷰이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적었다.
동성동본(同姓同本): 동성동본이란 성씨와 본관(시조의 고향)이 모두 같은 관계. 동성동본끼리 결혼을 금지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2005년 폐지됐다.

퀴어 동료가 있을 때, 일의 경험이 다르다고 느끼나요?

정민: 남성 퀴어분이 있는데, 서로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그분 핸드폰 배경화면이 애인이랑 찍은 사진이에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도 참 애쓴다.' (웃음)

동료가 10명도 안 되는 사무실에서 퀴어가 1명 더 있으니 좋더라고요. 사회적으로 퀴어 이슈가 생기면, 다음 날 출근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안 좋은 일 생겼네." "이건 너무 좋은 일이다. 신나지 않냐." 떠들면서 말하지는 않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서 따로 얘기해요.

메타: 든든하고 좋지 않나요.

정민: 네. 되게 많이 의지하고, 친해지고 있어요.

긍정: 회사에서 일 얘기만 하지 않잖아요. "어제 뉴스 봤어? 이런 사고가 있었대." "부동산 가격이 올랐대." 그러면서 공감대도 형성하고, 같이 짜증도 내고, 울기도 하고요.

변희수 하사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이 사건에 대해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고, 비아냥거리는 말도 들었거든요.

하루 중 제일 오래 머무르는 회사에서, 슬픔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서 되게 외롭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정민 님은 되게 든든하실 것 같아요. 친하든, 친하지 않든.

정민: 심지어 나에게는 어제와 오늘 가장 큰 이슈여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말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그나마 낫죠. 나만 기뻐하면 되니까.

그런데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혼란스럽고 일에 집중도 안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때 느끼는 괴리감도 큰 것 같아요.

퀴어 동료뿐 아니라, 롤모델이 되어줄 선배도 있나요?

긍정: 제가 아는 성소수자 직장인 중에 가장 높은 직급이 대리나 과장 정도예요.

이사님 퀴어, 상무님 퀴어, 팀장님 퀴어는 거의 없는 거예요.

퀴어 퍼레이드 때 만난 청소년분이 "제빵사 퀴어 선배도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때 직장인 성소수자 롤모델(role model)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가 퀴어 프렌들리해."라면서 이끌어주고, "이 직종에서 실제 업무 환경은 이렇다."라고 정보를 공유 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퀴어 직장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월퀴모에 갔었어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더라고요.

퀴어는 어디에나 있는데 점조직처럼 떨어져 있으니까 각자 고립되어 사는구나.

50대 퀴어 선배 중에 직장인은 거의 없어요. 일찍 회사를 나와서 개인사업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난 할 줄 아는 게 지금 하는 일밖에 없는데, 나중에 개인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남자 선배들처럼 정년도 보장받고 연금도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월퀴모: '월급쟁이 퀴어 모임'의 준말. 직장인 성소수자들의 모임.

세진: 이다음 경력이 그려지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저를 교사로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 주민등록번호에 적힌 성별과 제 모습이 달라 보일 테니까요. 학교 측이나, 학부모나, 혹은 혐오 세력에서 민원이 들어올 수 있고요. 고민이 되죠. '그럼 나는 지금 직장에 뼈를 묻어야 하나?'

제이: 지금 회사가 퀴어들에게 이상적이에요. 하지만 저는 지금 직군과 다른 전공을 나왔고, 벌고 싶은 연봉도 따로 있어요.

다양하게 진로를 꿈꾸고 싶거든요. 그런데 현재는 이곳만 바라보는 상황이에요.

앞으로 바라는 일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할말많은 퀴어일꾼들.
할말많은 퀴어일꾼들.

긍정: 마케터로서, 겉모습에서부터 차별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 마케터의 이미지는 하이힐 신고,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에 재킷을 휘날리는 모습이에요. 실제로 마케팅 업계에 그런 이미지인 분들이 많아요. '화려하고, 기죽지 않고, 특별함을 보여 줘야 한다'라는 분위기도 있고요. 저는 그 속에서 중성적인 스타일이라 너무 튀는 존재였어요. 외모 때문에 경력 초반에는 무시도 많이 받았어요.

아우팅이 됐을 때, "쟤는 역시 동성애자라서 저래." 이런 얘기를 들을까 봐 더 노력하고 발악한다고 해야 할까요. 퀴어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검열하지 않아도 되는 일터여야 해요.

지정 성별 여성으로서, 그리고 퀴어로서 차별을 동시에 받아요. 사회 초년생 때, 면접장에서 저를 신기하게 보고 부르는 일을 많이 당해봤어요. 면접관과 대화는 제가 가장 많이 해도, "제 꿈이 현모양처예요."라고 말하는 분을 뽑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업에서 사무직 여성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정해져 있어서예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일반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해요. 구조가 모두 바뀌어야 성소수자에 대한 처우도 바뀔 수 있어요.

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인터뷰가 온라인에 남잖아요. 두렵지만 계속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가, 직장인 중에 퀴어가 당신 주위에 많다는 걸 말하고 싶고,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거든요. 궁극적으로는 이런 인터뷰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지정 성별(Assigned Sex): 출생 시 성기의 형태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출생증명서에 기록한 성별. 인터섹스나 트랜스젠더 등은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제이: 우리 회사가 메리트(merit)가 아닌 디폴트(default)가 되면 좋겠어요.

세진:

성소수자가 일하기 좋은 직장은 비(非)성소수자들한테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을 고유한 개인으로 존중해 주는 곳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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