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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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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탈시설: 당신 곁에 살 권리

아들이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장애인이 살 곳은 시설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장애
탈시설

에디터의 말

"어? 비밀번호가 바뀌었나?"

임현주 씨는 중증발달장애인 서지원 씨의 어머니입니다. 지원 씨는 21살 때부터 9년 간 대전에 있는 한 시설에서 살았어요. 2020년 탈시설한 이후 지금은 서울의 한 지원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서지원 씨가 사는 지원주택 앞에서 임현주 씨를 만났는데요. 임현주씨가 공동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3주 만에 찾은 아들의 집이니, 비밀번호가 바뀌어도 모를 수 있겠죠. 그 모습을 보면서 ‘지원 씨는 정말 ‘독립’해서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현주 씨는 왜 지원 씨를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었을까요? 9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시설을 나온 것일까요? 지금 지원주택에서의 생활은 무엇이 다를까요? 한 때는 아들이 시설에서 살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는 임현주 씨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지원주택: 서울시에서 노인, 장애인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주거 생활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주거취약자를 위해 공공주택과 의료, 활동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복지 제도. 2019년부터 도입됐다. 신청 관련 정보(링크)

아들인 서지원 씨가 사는 지원주택을 방문한 임현주 씨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일단 시설로 간 얘기부터 할게요. 지원이는 일산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이혼을 했어요. 경제활동을 해야겠죠. 아이가 학교 다닐 때는 조그마한 공방 같은 걸 운영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도저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돌볼 수가 없더라고요.

예전부터 공방 직원들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지원이가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이야!

아이가 졸업을 해서 집에 있게 되면 저는 아이를 돌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하니까요. 그나마 일산에는 특수학교들이 모여 있어서 여러 복지관이며 주간 보호 프로그램이 있어요. 하지만 가려는 아이들은 너무 많고 자리는 부족하죠.

그러다가 전 남편의 지인을 통해 대전에 갓 오픈한 시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보통 장애인시설은 산 밑에 있거나, 찾아가기 힘든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 시설은 대전역 근처, 도심 한 가운데에 있더라고요. 새로 지은 곳이라 건물도 훌륭하고요. 늘 맡길 곳이 없어서 애를 태우다가 그런 곳을 보니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죠.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사는 게 하도 각박해서… (웃음) 일산에서 알고 지내던 장애인학교 학부형들 중에 저만 유일하게 아이를 시설에 보냈어요. 처음에는 비난을 많이 받기도 하고, 마음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지원이는 누군가 전적으로 옆에 있어줘야만 하는데, 제가 생계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가 없으니까.

처음 시설에 입소하던 날 기억나세요?

네, 기억나죠. 많이 울었어요. 제 품에서 떨어지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죠.

시설 생활은 어땠나요?

시설에서는 자원봉사자 한 명당 굉장히 많은 인원의 장애인을 돌봐야 해요. 그러다보니까 우리 지원이처럼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물 한 번 먹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성인용 시설이라 식사가 좀 매운 편인데 지원이는 매워, 못 먹겠어, 이런 표현을 못해요. 그래서 먹기 싫어도 꾹 참고 결사적으로 흡수하듯이 빨리 먹었어요. 어느 날은 더 먹고 싶으면 숟가락을 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 걸 뺏어 먹고, 그러니까 격리를 시켜서 따로 먹고. 체중이 28kg까지 빠졌어요.

시설 안에서는 많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활동량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폐적인 성향이 생기더라고요. 누군가 아이 눈을 마주치고 “지원아”하고 불러주지 않으니까, 자극이 없으니까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어요. 8년 만에 아이 허리가 90º로 휘었어요.

자폐적인 행동의 일종으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자, 시설에서는 무릎에 보조기를 채워서 다리를 못 구부리게 했어요. 자꾸 손을 입에 넣고 빨아서 냄새가 나면, 닦아 주는 게 아니라 팔꿈치에 보조기를 채워서 구부릴 수 없게 하고요. 낮에는 약을 먹여서 재우고, 밤에도 아이가 수면장애가 있어서 자꾸 혼자 일어나서 불 켜고 그러니까 수면제를 먹이고. 이런 거예요. 시설 생활이란 게.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겠어요.

놀란 게 아니고 화가 나죠. 어이가 없고. 그래도 그 때는 그런 것들을 제가 묵인하고, 용인했어요. 당시에는 제 생활을 위해 아이가 반드시 그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지원이를 20년 키워 봤잖아요. 너무 힘들거든요. 항상 눈이나 귀가 아이를 향해 있어야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요. 그게 어떤 건지 아니까 ‘그래, 선생님 한 분이서 이런 아이들 여러 명 돌보려면 굉장히 힘들지’하면서 넘어간 거죠.

그런데 9년이 지나고, 아이가 바짝바짝 마르는 걸 보니까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대로 항의를 하진 못했죠. 여기를 나가면 갈 곳이 없으니까요.

실제로 시설에서 아이를 내보내라고 하기도 했어요. 지원이가 몸이 약해서 병원에 갈 일이 생겼는데, “우리가 요양원인 줄 아느냐.” “여기가 병원이냐.” “아이가 시끄럽고 다른 아이들의 생활을 방해하니까 다른 시설로 옮겨라. 산골에 있는 조용한 데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 대한 처우를 항의하기는 어렵죠.

지금은 속편하게 얘기하지만, 그 때는 시설에 방문하는 게 되게 두려웠어요. 시설에서 하는 말이, 제가 면회를 왔다 가면 아이가 2주 동안 운대요.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그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까 시설 쪽에서 제가 오지 말았으면 하는 눈치인 거예요. 저도 아이를 만나고 오면 너무 괴롭고요. 어느 순간 방문이 좀 뜸해졌어요.

그러다가 2020년에 아이가 흡인성 폐렴에 걸렸다고 해서 갔더니 해골처럼 말라 있는 거예요. 흡인성 폐렴은 음식물을 급하게 먹다가 기도로 넘어가서 폐렴이 생기는 거예요. 일단 병원에 입원했죠. 그런데 퇴원 후에 시설에서 못 받겠다는 거예요. 집에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아이를 보낼 곳이 있는지 알아봤죠. 그 때 연락이 닿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라는 단체에서 지원주택 제도를 소개해 주고, 탈시설하자고 권했어요.

처음 탈시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지원주택이라는 곳에 가서 활동지원 선생님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평생을 살 수 있다고? 그런 일이 과연 나한테 벌어질 수 있을까?'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또 지원주택 호수는 적고 신청하는 장애인들은 많으니까 ‘애를 데리고 나왔는데, 안 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도 들었고요. 아파트 당첨되는 것도 굉장히 어렵잖아요. 6개월마다 한 번씩 뽑는다고 해도 내가 6개월 이상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직장도 다녀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지원주택이고 뭐고 일단 아이를 그 시설에서 빼와야겠더라고요. 부모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안 되면 닥치는 대로 부딪혀 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시설을 나왔어요.

지원주택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전혀요. 그런 시스템을 처음 들었어요. 지원이가 2기로 들어왔는데요. 홍보도 잘 안 되어 있는 상태였죠.

경제적인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입주 초반에는 부담이 좀 있거든요. 임대료도 내야 하고, 공과금도 내야 하고, 살림도 채워야 하고, 시장도 봐야 하고... 지금 경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시설에 있을 때는 국가가 시설 운영자에게 장애인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부모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만 내면 됐거든요.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나서 3개월 정도 지나고 정착이 되니까 비용 부담이 심하지는 않았어요. 지원이에게 나오는 장애인 연금도 있고, 국가에서 임대료도 지원해 주고, 지원이가 받는 복지 비용으로 거의 다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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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빠는 탈시설을 반대했어요. 다른 시설을 알아보자고 했어요. 저는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저도 그랬거든요.

하지만 우리 지원이는 어떤 시설을 들어가든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마른 모습이 제 잘못 같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둔 것 같아서요.

나쁜 시설이 문제고, 좋은 시설에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아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저도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막상 아이가 시설을 나와서 좋아지는 걸 보니까 시설의 문제점이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경증 장애인도 중증 장애인도, 나름대로 다 문제점이 있어요. 경증 장애인은 의사 표현이 어렵지 않고, 삶에 대한 욕구가 다양한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시설에서 할 일이 없어요. 아무런 자극도 없고요. 그냥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죠. 지원이가 있었던 시설에도 지원이보다 훨씬 장애가 가벼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점점 퇴행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만약 독립해서 교육을 받으면, 단 얼마라도 돈도 벌 수 있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냥 시설 안에 갇혀 있는 거죠. 시설이 ‘너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이것만 해’라고 요구하는 것들만 하는 거예요. '밥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옆에 잘 못하는 사람 도와주고, 이게 너의 인생의 의무야.' 그런 식으로 규정지어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 지원이 같은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는요. 제가 지원이 일로 인터뷰를 하면 가장 많이들 이렇게 물어보세요. "중증 장애인들은 탈시설해서 어떻게 살아요? 시설에 있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런데 시설에서는 중증 장애인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일대일 돌봄을 제공할 수가 없어요. 인력이 부족하니까요. 더 채용하려면 돈이 드는데, 누가 그런 걸 원하겠어요.

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선의의 봉사 단체가 아니고, 어쨌든 운영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영리단체잖아요.

중증 장애인도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회의 자극을 받고, 계속 의사 표현을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게 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는 너무 무기력해져요. 지원이가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는 기저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대소변을 잘 가렸어요. 그런데 9년 만에 유치원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기저귀를 차야 하는 아이가 됐어요. 시설 입장에서는 깔끔하게 대소변을 처리하지 못하는 아이는 기저귀를 채워 놓는 게 더 편하잖아요.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 지원 씨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일단 나온 지 2주만에 굽었던 허리는 펴졌어요. 체중도 지금 36~37kg 정도 되고요. 대소변 처리도, 화장실 가서 기저귀 내리고 스스로 소변을 봐요. 원래 시설 가기 전에는 스스로 다 했던 것들이에요.

흡인성 폐렴도 많이 좋아졌죠. 단순히 폐렴이 낫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시설에서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엄청났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 먹는다고 생각했나봐요. 눈에 보이는 건 다 먹으려고 하고, 빨리 먹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설을 나오고, 지원주택으로 오기 전에 잠깐 있었던 쉼터에서 일대일로 식사지원을 받으면서 좋아졌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미친듯이 먹지 않아요.

계속 소리 지르고, 울고, 땅만 보고 걷는 것도 없어졌어요. 나가고 싶을 때 나가서 밖을 휘휘 둘러 보고 그래요.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더 많이 좋아졌을 텐데. 산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계속 갇혀 있었던 지원이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자유롭게 다니지는 못하니까요.

장애인 시설 중에 ‘00의집’이라는 이름이 많아요. 그런데 말씀을 들어 보면 시설은 집일 수 없네요.

시설은 그냥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그 이외에 아무것도 바랄 수 없어요. 시설을 운영하는 분들이나 자원봉사 하는 분들도 그냥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장애인들은 이런 곳에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지금 살고 있는 지원주택은 조금 더 집 같다고 느끼시나요?

네. 집의 중심이 지원이거든요. 지원이의 상황에 따라서 뭐든지 늦춰지거나 당겨지기도 하고, 방문해 주시는 활동 지원 선생님도 지원이에게 맞춰서 움직여요. 지원이가 스스로 결정하지는 못해도 지원이의 컨디션이나 상태에 맞추죠. 집에서도 그렇잖아요. 아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반찬 내 왔는데 먹기 싫다고 밀쳐 내면 다른 거 갖다주기도 하고. 시설은 안 그렇거든요.

여기는 지원이 위주로 돌아가는 지원이의 집인 거죠. 집인 건 분명해요.

오늘 제가 3주 만에 왔는데 지원이가 저를 보고 울지 않잖아요. 오히려 웃으면서 반가워하죠. 제가 좀 오래 있으면 가라고 해요. 현관으로 데려가서 뽀뽀 쪽 하고 밀어 버려요. 자기 집에 제가 오래 있으면 불편한가 봐요. (웃음)

지금도 시설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이 집에 오고 나서는 제 마음도 한결 편하고, 저하고 지원이 둘 다 얼굴도 너무 좋아졌어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 정도에 따라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수 있는 시급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일정량 지급하면, 이를 통해 고용된 활동보조인들이 집을 방문해 가사, 이동, 사회생활 등을 돕는 복지제도.

지원주택 제도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보완할 점은 없을까요?

제도적으로는 일단 인원이 너무 적은 게 문제예요. 대기자는 너무 많은데 실제 호수는 얼마 안 되니까. 탈시설이라는 취지에 맞도록 하려면 훨씬 더 늘어나야해요.

지원주택 외에 다른 제도적 보완도 절실해요. 예를 들어 우리 지원이가 처음에 시설을 나왔을 때, 활동지원서비스를 한 달에 120시간밖에 못 받는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6일이라고 치면 하루에 4시간 꼴이잖아요.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아이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고, 혼자 앉을 수 있는데 왜 시간을 더 줘야 됩니까?” 그러더라고요. 제가 이 아이를 낮에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까 “그건 엄마 사정인데 왜 나한테 얘기해요?”

이건 아니잖아요. 지원주택 제도 자체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인데, 장애등급제도 폐지된 마당에 획일된 문답으로 활동지원서비스 급여 수준을 결정하고. 그냥 아이 혼자 덩그러니 있으라는 얘기거든요. 지원주택을 지은 만큼 다른 제도가 보완되고 따라와야 하는데, 예산이 없다면서 계속 줄여 버리면 껍데기만 남는 거잖아요.

아직 비장애인들 중에는 장애인들은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성소수자라거나, 장애인이라거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게 ‘너의 걸 뺏어서 이들에게 뭘 해 주겠다’ 이런 개념이 아닌데.

그냥 가장 기본적인 거잖아요. 잘 수 있는 곳,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편하게 화장실 가고, 잠깐 나갔다 오고,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해 주자는 건데요. ‘나와 다른 사람들은, 중증 장애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 시설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돼’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 옛날에 형제복지원도 ‘한 명 당 얼마를 줄게’ 하는 순간 변질이 돼서 무조건 사람을 잡아넣었잖아요.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이 다 없어지고, 그저 돈이 되는 한 명, 아니, 한 명도 아니고 ‘한 개’인 거죠.

중증 장애인들이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미 세상에 태어난 한 명의 인격체거든요.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굉장히 작을지언정, 자신의 작은 공간 안에서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설득력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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