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무시하는 사회와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게 제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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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정주리 씨 이야기

2021년 08월 11일
에디터 한슬

에디터의 말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 닷페이스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이렇게 정의했어요. 장애인도 한 곳에 수용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라고요.

닷페이스 <탈시설 :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는 탈시설 이슈에 관심을 갖고,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 경험과 의견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현재까지 총 2,228분이 함께 하고 있는데요. 시설을 나온 장애인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주택에서 일했던 정주리 님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고민과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대구에 있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7년간 활동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어요.

자립생활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함께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에요.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요. 장애를 이유로 겪는 차별에 대한 상담도 하고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해요.

저는 그중에서도 자립생활주택에서 활동했는데요. 시설이나 집에서만 지내다가 나오신 분들이 당장 집을 구하기가 어렵잖아요. 자립생활주택은 그런 분들이 임시로 거주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집을 찾는 공간이에요.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까지 생활해요. 실제로 6년을 다 채우고 나가시는 분은 많지 않았어요. 1년 안에 집을 구하시는 분도 있고, 2~4년 계시는 분도 있고요.

항상 자립생활주택이 없어지는 날을 꿈꿔요. 완전한 자신의 집이 아니고, 중간이용시설이니까요.

대구에는 탈시설 정착금 제도도 있고, 자립생활센터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자립생활주택도 많이 늘었어요. 지역에서 많은 분이 투쟁하셨기 때문이에요. 저는 정말 그분들을 존경해요.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고요. 물론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겠지만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한 가지로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워요. 자립생활의 전반적인 과정을 함께했다고 해야 할까요. 주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자립생활주택에서 같이 사는 분들끼리도 갈등하고, 활동지원사분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한 집에 보통 2분이 사시는데요. 그러면 활동지원사분들까지 거의 4명이서 생활하시거든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게 되니까 당연히 마찰이 생기기도 해요. 부부여도 싸우고, 룸메이트나 친구여도 싸우잖아요. 맞춰 살아가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탈시설한 장애인분들이 사회의 벽 때문에 겪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했어요.

예를 들면, 시설에서 나오는 순간 신청해야 하는 각종 사회복지 제도가 되게 많아요. 그런데 시설에서만 오래 생활한 장애인분들은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정보를 알 수 없을뿐더러, 신청하는 방법도 어려워요. 그런 것부터 함께 시작하는 거죠.

가장 기본적인 건 ‘장애 정도’를 받는 거예요. 예전에는 ‘장애등급제도’였는데, 지금은 이전의 장애 1~3급을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4~6급을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나누고 있어요. 이것이 결정되어야 다른 다양한 복지제도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시설에 있는 분들은 등록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장애 정도가 결정되기까지만 6개월이 걸려요.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야 하고, 국민연금공단에서 심사를 받아야 하고… 한번 결정되면 웬만해서는 변경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든 복지제도가 그렇듯이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거든요. 그 과정마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장애를 증명해야 해요. 얼마나 심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계속 설명해야 해요. 그게 사람을 되게 비참하게 만들거든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지 몰라요.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은행에서 당사자는 본체만체하고 보호자인 저를 보면서 얘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휠체어가 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서 여러 번 보내는 건 일상다반사고요.

장애가 있고,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더더욱 사회가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정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신청하기도 너무 어렵고. 아무도 그걸 설명해 주지 않고.

비장애인들에겐 어렵지 않은 집 구하기, 이사하기, 은행 가서 돈 뽑기, 통장 사용하기 같은 일도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아요. 요즘은 모바일로도 많이 하잖아요. 주문도 앱으로 하고, 기계로 하고.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자주 생각해요. 점점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함께하다 보면 “잘 살겠다고 시설을 나왔는데, 이런 심사나 받고, 내가 왜 나왔을까.” 이런 말씀도 하시고. 화를 내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인생에 어떤 결정이든 후회할 때가 있잖아요. 지지고 볶고 싸우고, 그런 일이 제가 했던 일 같아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잘 지내시는 분들도 정말 많은데요. 저는 갈등하고 고민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자립'이란 뭘까, 얼마나 개입해야 할까, 그 선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분은 2년 넘게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고, 밤낮이 바뀌고, 게임을 많이 하셨어요. 그렇다고 그분에게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을 강요하면 안 되잖아요. 물론 꼭 먹어야 하는 약은 잘 드시는지,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 그런 건 들여다보고 했지만요.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그분만의 세계를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많이 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비장애인이고 ‘지원’하는 사람으로서, 장애인 당사자분과의 권력 관계가 있거든요. 동등하게 이야기하는 게 정말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당사자분께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계속 집에 있어도 괜찮으세요?”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왜요?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혼날까 봐. 아무래도 시설에서 평생 계셨으니까 그런 관계에 익숙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초반에 저도 시설 선생님 같다는 말도 들었거든요. 나의 태도, 자세, 말투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말 한마디, 한마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탈시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설에 있을 때는 "이렇게 나가서 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시설이라는 게 고립된 공간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가 봐요.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면 10년 일찍 나올 걸 그랬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고 나서야 나왔다." 이런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저는 시설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그 의문 자체에 이미 어렵지 않느냐는 마음이 깔린 것 같아요. 누구나 다 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켜본 사례를 들어 볼게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이 터지고 나서 4개 시설 중 하나를 폐쇄했어요. 그중에서 대구시가 중증 발달장애인이라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고, 가족이 없다고 규정한 아홉 분을 다른 시설로 전원하겠다고 발표했었어요. 시설을 떠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많은 분이 투쟁한 끝에, 지금은 아홉 분 모두 자립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분들도 취미를 가지고, 자기 집을 꾸미면서 사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현실적으로 예산을 많이 써야 해요. 너무 돈을 아끼잖아요. 장애인 복지 관련 예산 자체가 너무 적어요.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지출 규모는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0.6%다. OECD 평균은 1.9%다. OECD 회원국 중 뒤에서 세 번째다.

두 번째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착한 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좋은 일 한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속상해요. 장애인을 아래로 바라보는 시선이잖아요.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일도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냥 ‘옆에 장애인이 있구나.’ 생각해주면 좋겠고요. 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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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 인터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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