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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결혼식, 적극적으로 나선 웨딩 플래너를 만나다
에디터 민
에디터
·
2022-04-06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퀴어 결혼식, 적극적으로 나선 웨딩 플래너를 만나다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전 하던 일을 했어요. 결혼식의 지름길을 안내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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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말

결혼식을 결심한 예비 부부보다 더 결혼식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웨딩플래너다. 고객과 함께 결혼식을 둘러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약속된 날짜에 식장까지 안내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이 일은 퀴어 결혼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앞서 수영과 지한(둘 다 가명) 커플이 결혼에 이른 과정을 살펴봤다. 여기에는 그들 이상으로 이 이벤트를 원하고 책임진 사람이 있었다. 1년간 결혼 준비를 함께한 김해니 웨딩플래너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동성결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동성혼 법제화 찬성'에 대해 여성은 52.2%, 남성은 18.8%로 답했다. 이 조사를 결혼정보회사인 듀오가 했다는 게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의외로 시장이 앞당길 수 있을지 모른다.

웨딩플래너는 결혼 시장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입장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시장의 요구를 당사자들보다 더 빨리 알고 따라가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변화에 동참한 김해니 웨딩플래너에게 퀴어 결혼식의 준비 과정을 물었다. 그간 진행해왔던 결혼식과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를.

이 결혼, 내가 베스트로 만들어줄 수 있어

1년 전 한 웨딩플래너가 고민했다. "이 결혼, 내가 맡아도 되는 걸까? 이런 커플은 처음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웨딩박람회에서 만난 한 예비 부부와 랜덤으로 매칭된 뒤였다. 그들은 동성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다. 신랑은 없고 신부만 둘 있는 예식을.

동료의 고민을 듣자마자 김해니 웨딩플래너가 나섰다. "이 결혼,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베스트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렇게 김해니 웨딩플래너가 수영과 지한 커플의 결혼식 진행을 맡았다.

그가 속한 회사에서도 퀴어 결혼식은 처음이라 해니씨에게 자꾸 물었다. "이거, 할 수 있겠어?" 해니씨는 수영과 지한 커플이 반드시 결혼식을 할 거라고 확신했지만, 회사에도 확실한 답을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더 나서야 했다. 해니씨는 커플을 붙잡고 "협박에 가깝게" 거듭 졸랐다. "몇 커플 더 계약하면 바빠서 못 해요. 저만 한 웨딩플래너 아마 못 찾을걸요? 빨리 결정하셔야 돼요."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분들 스스로 결혼식 생각이 확고하긴 했지만, 제가 엄청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랑 해준 것 같아요.

김해니 웨딩플래너가 수영과 지한 커플의 결혼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흰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머리 길이는 가슴 높이다. 회색 스웨터를 입었다.

의지를 보여준 끝에 이들은 계약을 맺었지만, 모든 계약 당사자들에게 퀴어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수영과 지한 커플은 계속해서 물었다. "이거 해도 돼요?" "저렇게 해도 돼요?" 그런데 이런 질문은 4년 차 웨딩플래너인 해니씨에게 그리 새로울 것이 없었다. '특이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은 많고, 다른 길을 선택한 순간 누구든 궁금한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요샌 일반적인 웨딩홀을 벗어나 작은 공간을 빌려 작게 식을 올리고 싶어하는 커플이 많다. 이른바 '공장식 웨딩'이 아니라 '스몰 웨딩'을 꿈꾼다. 공간이 좀 더 아기자기했으면 좋겠고, 신랑신부가 행진할 때 흔한 웨딩마치가 아닌 다른 곡을 틀고 싶고, 사회자도 없었으면 좋겠고, 예복도 전형에서 벗어난 걸 입고 싶고…. 해니씨가 수영과 지한 커플과 상담한 내용도 비슷했다.

남들이 하는 결혼식이랑 다를 것이 없었어요. 파티처럼 하는 작은 결혼식, 이미 많이 진행해봤거든요.

이것은 해니씨의 아이디어였다. 그들 커플은 결혼식을 하겠다고만 했지 명확한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해니씨의 직업적 본능이 발동한다. 그간 쌓은 경력과 감각을 바탕으로, 결혼 당사자의 캐릭터에 딱 맞는 결혼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예식을 따르는 것보다 경쾌한 파티 분위기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렇게 제안했더니 두 분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죠. 다만 스냅 사진은 색다르게 찍고 싶었어요. 커플 사진도 찍되 두 분 각각의 개성이 살아 있는 단독 사진도 많이 남기고 싶었어요. 옷도 서로의 분위기에 맞게 다른 걸 골랐고, 스튜디오도 단출한 곳으로 정했어요. 인물이 부각되는 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수영과 지한 커플이 해니씨를 만나 실제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1년이 걸렸다. 이 커플은 그간 해니씨와 소통하면서 "셋이서 결혼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해니씨가 결혼 당사자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해니씨는 그게 웨딩플래너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특별한 요구도 물론 있었다. 수영과 지한 커플은 부케가 두 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니씨는 웨딩홀에 부케 두 개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두 명의 신부는 각각 부케를 던졌다.

"주변에 퀴어 친구들이 좀 있어요. 제가 웨딩플래너니까 '너네 결혼하면 내가 이렇게 해줄게' '호텔 빌려서 파티처럼 만들어줄게' 하고 농담 삼아서 말하곤 했는데, 진짜로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퀴어 결혼식, 처음인 사람이 아직 더 많지만

웨딩플래너의 핵심 업무는 관련 업체와의 소통이다. 결혼식은 복장부터 식장 대관까지 큰돈이 오가는 일이고, 서비스가 중요한 분야인 만큼 업계 종사자 대다수가 주문과 요청을 철저하게 확인한다. 중개자인 해니씨의 주요 업무 또한 이런 거래 과정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다만 수영과 지한 커플의 결혼에는 더 많은 '더블체크'가 필요했다.

해니씨가 설명한 업계 문화에 따르면 결혼 시장은 대부분 신부 위주로 돌아간다. 신부용 상품 단위만 봐도 그렇다. 복장을 예로 들면, 일반적으로 스냅 촬영용 드레스 세 벌과 본식할 때 입는 웨딩드레스 한 벌이 한 단위로 묶인다. 네 벌을 다 고르면 거래처 서버에 한 개의 코드를 입력해야 주문이 완료된다. 드레스뿐 아니라 메이크업도 이런 방식으로 요청해야 처리된다.

수영과 지한 커플에겐 두 개의 코드가 필요했다. 둘 다 신부니까. 해니씨가 코드 두 개를 넣어 발주했더니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플래너님, 코드를 잘못 입력하신 것 같은데요? 하나는 취소해야 하지 않아요?" 어떤 업체에서는 해니씨가 실수한 줄 알고 덮어주려고 코드 하나를 지웠다.

스튜디오에서도 확인 전화가 왔다. "신부님 두 분이 맞으세요? 친구들끼리 하는 우정 촬영이 아니라 웨딩 촬영 맞는 거죠?" 웨딩플래너가 있으면 이런 질문을 결혼 당사자에게 하지 않는다. 촬영이든 본식이든 약속한 날짜에 맞춰 일이 유연하게 진행되도록 업체와 사전에 소통하면서 올바른 요청을 하는 것이 웨딩플래너의 일이다.

그때마다 제가 난처해하면 업체 분들이 더 당황할 것 같아서 '이렇게 결혼하니까 이렇게 해주세요' 하고 요청했죠. 제 고객이 당당하게 결혼하는데 제가 수그릴 필요는 없잖아요.

김해니 웨딩플래너가 수영과 지한 커플의 결혼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흰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머리 길이는 가슴 높이다. 회색 스웨터를 입었다.

웨딩홀부터 스튜디오까지, 거절 또한 염두에 두고 늘 문의했다. 그러나 거절한 업체는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잠깐 놀라는 업체도 있었지만, 이미 비슷한 결혼을 경험해본 적 있다고 답한 업체도 있었다. 퀴어 결혼식이 많아졌다는 뜻일까?

"그렇지는 않아요. 제 친구들만 해도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그때 해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데 업계 사람들은 덤덤해요. 평소에 들어오던 주문이랑 다르니까 조금 당황하긴 하지만 결국 다 처리되거든요."

동료 웨딩플래너들의 의식도 그와 비슷하다. 해니씨가 수영와 지한 커플의 '플래닝' 과정을 궁금해하는 동료가 많은데, 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어떻게 진행했어?"다. "그런 결혼식도 해?"라고 묻는 동료는 없었다. 퀴어 커플 결혼식을 맡게 되면 결혼 당사자가 아니라 웨딩플래너로서 실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퀴어가 결혼하면, 웨딩플래너는 일이 더 생겨서 좋다. 식까지 가지 않고 웨딩 촬영만 하겠다는 커플 또한 환영한다고 해니씨는 말한다. 그는 직업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고객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다. "한 동료가 저더러 퀴어 결혼을 개척했다고 말했는데, 민망해요. 그냥 저는 하던 일을 했어요. 결혼식의 지름길을 안내하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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