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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시장, 의외로 편견 없어요
에디터 민
에디터
·
2022-04-06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웨딩 시장, 의외로 편견 없어요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K-웨딩의 정석, 퀴어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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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말

청첩장을 받아야 결혼식에 갈 명분이 생긴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지만, 용기를 내서 초대를 요청해보기로 했다. 꼭 가고 싶은 결혼식이 생겨서 그랬다. 수영과 지한 커플(둘 다 가명)의 결혼식이다. 이 결혼에 신랑은 없다. 결혼 당사자 둘 다 신부다.

트위터에서 이 결혼 소식을 접한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커플에게 쪽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환영받았지만, 사실 그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우리 결혼식에 닷페이스가 카메라 들고 온다고요…? 우리 연예인 아닌데…?"

예식이 끝나고 나서 수영과 지한 커플을 만나 이 결혼식의 준비 과정을 물었다. 그간 우리가 흔하게 봐온 결혼식과 무엇이 다르고 같을까.

이미 그들 커플이 보내준 청첩장에 답이 있었다. 꽤 단출했다. "사랑해서 결혼합니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결혼에 이 이상의 이유가 필요할까? 그 간결한 문장이 이 시리즈의 제목이 되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전달하려 한다.

수영의 이야기: 결혼식, 친구들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영(가명)이에요. 몇 년 전, 고등학교 친구가 남자친구랑 혼인신고를 했다면서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어요. 축하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울컥하고 화가 났어요. 나는 퀴어라서 못 하는 거니까. 그때 내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실감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먹었죠.

난 혼인신고 못 하니까 결혼식이라도 해야지.

지한(가명)을 만나서 그게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2022년 3월 19일에 결혼식을 했어요. 저는 30대 초반인데,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식을 올렸어요. 몇 년 전 혼인신고를 한 그 친구도 결혼식은 안 했거든요.

지한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살게 됐어요. 같이 사는 건 좋았지만, 월세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둘 다 커리어 전환 시기라서 수입이 불안정했거든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작년 이맘때쯤 제가 전세자금대출을 받았어요. 같이 살아서 누리는 행복은 전과 같지만, 전셋집에 같이 들어가니까 진짜 살림을 합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세를 '반띵'하는 관계를 넘어서요.

전에도 사실혼 관계였지만, 이사를 하면서 우리의 관계를 실감했어요. 이런 말이 오갔으니까요. "우리, 결혼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식을 한 번 하자." 우리끼리만 말하면 흐지부지될까봐 제가 먼저 트위터에 선언하듯이 썼어요. 결혼하겠다고. 혼자서 결심하는 다이어트랑 여러 사람 앞에서 "나 다이어트 할 거야"라고 말하는 건 다르죠. 결혼도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트윗을 남겼더니 한 웨딩플래너가 쪽지를 보내더라고요.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플래너가 나타났어요. 최종적으로는 세 번째로 나선 플래너와 하게 되었고요. 그 플래너들도 퀴어 결혼이 처음이라 서로 물어보고 상의하다가 가장 의지가 강한 사람이 맡게 된 건데요. 세 번째 플래너는 우리 얘길 듣더니 그랬대요.

이 결혼, 내가 할 거야. 내가 베스트로 만들어줄 거야.

그렇게 해서 세 번째 플래너, 김해니 팀장과 계약을 맺었죠. 그분도 퀴어 결혼식은 처음이라는데, 멱살 잡듯이 우릴 결혼까지 끌고 가길래 셋이서 결혼하는 줄 알았습니다(웃음). 우리 둘보다 훨씬 적극적인 사람이었어요. 플래너는 바쁜 현대인한테 정말 필요한 존재예요. 식장 예약부터 드레스 선별까지 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다 안 해 본 것이라 막막하죠. 플래너는 갈등의 순간마다 선택의 범위를 좁혀줘요.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저는 되물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뭘 해요?" 가급적 많이들 하는 걸로 하려고 그랬죠. 'K-웨딩'의 정석을 밟고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하는 거, 우리라고 왜 못 하겠어요? 시작은 그랬는데, 준비하면서 결혼은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죠. 돈이 많이 들어요. 결국엔 '남들 하는 거'보다 '덜 비싼 거'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웨딩 화보 촬영을 한 지한과 수영 커플. 두 사람 모두 흰색 슈트를 입고, <결혼의 정석>이라고 쓰여 있는 책을 들고 있다.
수영과 지한 커플이 결혼식 전에 촬영한 웨딩 화보 사진. 사진제공 수영과 지한 커플.

청첩장도 돌렸어요. 대부분 중・고등・대학교 동창들이었어요. 제가 퀴어라는 걸 몰랐던 친구들도 좀 있었는데 청첩장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 제 정체성을 알았죠. 제 결혼 상대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서요. 잘한 일이었어요. 초대한 친구들 열 명 모두가 왔으니까요.

초대한 친구들이 다 여자라서 하객석이 또래 여자로만 가득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떤 친구는 남자친구랑 왔고, 제 아내의 친구는 아이를 데려왔어요. 그런 하객석을 보면서 이게 바로 결혼식이지 싶더라고요.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내 친구들이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을 불러와서 함께 축하해주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지한의 이야기: 결혼식, 저는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게 해요

안녕하세요, 지한(가명)이에요. 저는 쭉 지방에 살았어요. 연애할 때마다 늘 '롱디'(Long-distance relationship, 장거리 연애를 하는 관계)여서 원래 그거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보고 싶어도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았죠.

그런데 수영(가명)을 만나고 나서야 제가 롱디를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한순간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됐죠. 같이 살면 뭐가 좋냐고들 묻는데, 매 순간이 다 좋아요. 싫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결혼 준비를 하게 된 거고요.

결혼식이 삶으로 들어오니까 그간 몰랐던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웨딩박람회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웨딩플래너가 권하길래 가봤어요. 가면 한복집이 있는데, 대부분 할머니가 운영해요. 저희 둘이 돌아다니니까 한 한복집 할머니가 영업을 하더라고요. "신랑들은 어디 갔어?" 근데 편견 없는 분이었어요. 우리 둘이 결혼한다니까 이러셨거든요.

그래도 부모들은 한복 입어야 할 거 아니야?

예복 보러 다닐 때도 그랬어요. 둘 다 슈트를 입기로 해서 우리 계획을 말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더라고요.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들로 알았던 거죠. 상담사가 존재하지도 않는 신랑 이야기를 계속 하기에 우리 둘이 결혼할 거고, 슈트를 똑같이 맞추겠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이러시더라고요.

아, 쏘리쏘리. 다시 상담합시다.

진짜 웃겼어요. 불필요한 질문 없이 대화가 원점으로 급전환되는 걸 보면서 결혼 시장, 의외로 담백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신부용 드레스가 아닌 정장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어요. 신부가 결혼식 날 드레스를 입으면 잘 걷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잘 못 먹거든요. 예쁜 옷 입고 인형처럼 앉아 있어야만 해요. 거동을 도와주는 '이모님'도 필요하고요. 그러는 동안 슈트를 입은 신랑은 담배 피우러 나가죠.

우린 둘 다 하얀색 슈트를 입고 하객들과 인사하러 다니기로 했어요. 신발은 운동화로 정했어요. 흰 슈트엔 흰 구두가 어울릴 텐데, 결혼식 끝나면 신을 일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가성비'를 염두에 두고 커플 운동화를 신었어요. 덕분에 둘 다 움직임도 훨씬 자유로웠고요.

결혼식 당일의 모습이다. 수영과 지한 커플이 흰색 슈트를 입고, 각각 연보라색과 분홍색 위주로 구성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결혼식 당일, 수영과 지한 커플.

부케도 두 개 준비했어요. 결혼 당사자 둘이서 부케를 동시에 던지는 결혼식을 처음 봤다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특별하게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에요. 우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신부가 둘인 결혼식이니까.

하객 이야기도 해야겠죠. 저는 30대 중반으로, 또래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좀 늦었어요. 동창들을 다 부르진 못 했어요. 저는 '벽장'이 길었거든요(커밍아웃하지 않은 퀴어를 '벽장 속에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냥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축하해줬어요. 트위터 사람들이요.

친구 한 명이 축가를 불렀어요. 노래가 이어지는데, 내 삶에서 가장 힘이 넘치던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그려지더라고요. 우리가 결말을 함께 만드는 느낌이었어요. 결혼식이란 게 그런 거더라고요.

수영과 지한의 이야기: 실은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한국에서 퀴어로 산다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싸울 수도 있죠. 필요한 노력이라는 걸 알지만, 우린 바깥에서 답을 찾아보려 했어요. 한 외국인 동성 커플이 난민으로 인정되어 캐나다에서 거주 허가를 받은 기록을 봤거든요. 난민의 얼굴은 이렇게 다양하지요.

목적지를 캐나다로 정하고,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한 명이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비자를 받고, 다른 한 명은 배우자로 비자를 받아 같이 출국하려고 했어요. 한국이 아직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사회라 우리가 사실혼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우리가 사는 집 등본을 떼면 수영이 세대주고 지한이 동거인으로 나와요. 연애 편지도 많이 써놨어요. 그게 다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루어진 건 없어요. 이 모든 계획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세운 것이니까요. 우린 결국 떠나지 못하고 한국에서 전셋집을 얻었고, 결혼도 여기서 하게 됐죠.

한국에서 결혼식은 가족의 일이잖아요? 수영의 부모는 축하한다고,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결혼식 당일에 오지 않았어요. 여전히 못 받아들이세요.

지한의 부모는 아무것도 몰라요. 수영을 딸이랑 같이 사는 친구로만 알아요. 이만큼 나이 먹고 친구랑 10년 넘게 같이 사는 경우가 흔치는 않을 텐데, 우리가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부모가 눈치채지 않을까요?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그게 더 쉬운 방법으로 느껴져요.

웨딩 화보 촬영을 한 지한과 수영 커플. 두 사람 모두 하얀색 웨딩 드레스를 입고,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수영과 지한 커플이 결혼식 전에 촬영한 웨딩 화보 사진. 사진제공 수영과 지한 커플.

그런데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생각지 못한 하객이 나타났어요. 닷페이스가 결혼을 축하한다면서 우리의 결혼식을 취재해도 되느냐고 묻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우리를?" 한국에서는 결혼식에 취재진이 온다면 결혼 당사자가 연예인일 때잖아요?

하지만 좋았어요. 비장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남들이 결혼하는 걸 보고 우리가 결혼하게 되었듯 우리의 결혼식도 민들레 홀씨가 되어 다른 이들도 꿈을 꿀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 언젠가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닷페이스에서 영상과 글로 담은 우리의 결혼식이 사료가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결혼은 당사자가 좋아서 하는 개인적인 이벤트여야지, 운동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혼은 인간적인 사건이지 사회적인 사건이 아니에요. 그냥 변화의 한복판에 우리가 있는 것뿐이죠.

결혼식을 마친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어요. 그냥 친구들 모아놓고 재미있게 잘 놀았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하루는 결혼식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같이 살고, 같이 눕고, 같이 일어나 같이 먹는 일과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다만 누군가 "혹시 결혼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더는 망설일 것 없이 "예"라고 하겠죠.

이제 우린 기혼자인 거예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애인이 아니라 배우자라고 소개하는 관계가 된 거죠. 결혼은 이렇게 개인의 삶이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바뀌는 게 아니라요. 물론 이 사회는 좀 바뀔 필요가 있지만요.


닷페이스는 앞으로도 다양한 결혼 이야기를 전달하려 합니다. 올해 4~5월 결혼식이 예정된 퀴어 커플이 있다면 닷페이스를 초대해주세요. we@dotface.kr로 제보 메일을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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