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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민
에디터
·
2021-11-16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친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미래 편]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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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인권

에디터의 말:

우리는 친구에게 무엇까지 해줄 수 있을까. 밥이나 술? 선물? 돈 빌려주기? 아니면 공감과 위로? 그도 아니면 막 웃겨주기?

살면서 이 이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정하려 노력했지만, 돌이켜 보니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한 친구의 삶을 바꿀 만큼 의미 있는 도움을 주려면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는 참 뒤늦게 하게 됐다. 이는 에디와 히지, 그리고 곁에서 함께하는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이다.

서른다섯 살의 트랜스 여성 에디는 성 확정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에디가 마흔 전에 이루고 싶어 했던 미래이자 다정하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친구들이 만들어준 미래다. 그런 미래를 혼자서가 아니라 다 같이 준비하는 이 이야기는 가까운 친구에게 우리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작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인물소개

에디
에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 지원 센터 '띵동'의 활동가. 늘 마흔 살을 걱정하면서 살아온 트랜스 여성. 내년 초 성 확정 수술을 앞두고 있다.

히지
히지

드래그 아티스트. 에디와 함께한 무대 활동 경력이 있다. 자신의 서른한 살 생일을 앞두고, 친구 에디를 위해 성 확정 수술 기금 모금함을 열었다. 에디의 이웃사촌이다.

연지
연지

띵동의 자원 활동가이자 예술가. 에디의 커피 메이트로, 바리스타 경험이 있는 에디만큼 커피를 깊게 판다. 에디와 같이 뉴질랜드를 갔다온 사이다.

현주
현주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소속. 에디에게는 차 있는 친구로 통한다. 에디에게 곧 수영장 회원권을 끊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수달
수달

에디와 사는 반려동물에게 책임감을 갖는 공동 양육자. 둘이 같이 살지는 않지만, 개를 같이 키운다. 에디와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생일을 핑계로 친구를 돕겠어

올 여름, 서른한 번째 생일을 앞둔 예술가 히지는 페이스북 그룹 '퀴어 포럼'을 통해 온라인 모금함을 열었다. 자신이 아니라 친구를 위한 이벤트였다. 그가 도우려는 친구는 에디다.

에디는 성소수자 청소년 위기 지원 센터 '띵동'에서 일하는 서른다섯 살 트랜스 여성이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그동안 에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지 히지는 잘 안다. 에디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훌륭한 사람으로 통했지만, 개인의 사정에 대해선 많이들 몰라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랜 기간 성 확정 수술을 고민해온 여성이라는 것을. 에디는 늘 "직업이 트랜스젠더"라고 웃으며 말해왔던 사람이니까.

올해 성소수자 친구들 몇을 잃었다. 에디에게는 "너무 일찍 떠나버리는" 시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금함을 열었다.

변화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디는 띵동 말고도 이런저런 인권 단체에서 꽤 많은 활동을 했어요. 쉬지 않고 계속 일해왔는데 돈이 모이지가 않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로 사는 삶이 어떨까요. 혼자서 먹고살기도 힘들지, 저축을 하고 여유 있게 수술비를 모으는 게 쉬울 수가 없어요."

에디의 친구, 현주와 히지. 히지는 에디를 위해 성 확정 수술 모금함을 열었다. 현주는 에디가 차가 필요할 때마다 흔쾌히 달려와주는 다정한 친구.
에디의 친구, 현주와 히지. 히지는 에디를 위해 성 확정 수술 모금함을 열었다. 현주는 에디가 차가 필요할 때마다 흔쾌히 달려와주는 다정한 친구.

히지는 예술가로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다고 말한다. 안 해본 게 없어서 무엇에도 미련이 없지만, 가까이에 있는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히지는 그 친구를 돕기 위해 "생일을 핑계로" 모금함을 열었다.

"성 확정 수술을 하려면 2천만 원 정도가 필요해요. 내 친구가 트랜스젠더라서 겪는 불편이나 오해, 긴장감 없이 그냥 자기 자신으로만 살면 좋겠는데, 그걸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 거예요. 그 짐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게 좀 불공평하지 않나요. 여태 다른 사람들만 도와주던 사람인데."

에디의 삶을 생각하면 도움을 받을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후원 문의를 해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마음부터 모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모두에게 더 뜻깊은 일이 될 테니까.

7월 1일 후원 고지를 한 이래 지금까지 수술비의 1/3 정도가 모였다. 모두가 함께 만든 이 기금은 모금함을 개설한 히지의 개인 통장으로 입금됐다. 통장을 에디에게 보여주면서 히지는 말했다.

"그만한 돈이 내 통장에 있어본 적이 없었어. 기분이 좋았어. 이런 의미 있는 금액이 내 통장을 거쳐간다는 게."

나 벌써 수술 다 한 것 같아

에디는 지금도 걱정스럽다. '주변만 살펴도 힘들게 트랜지션 비용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이렇게 돈을 받아도 되는 걸까?' 너무 고마워서 너무 미안해지는 마음은 여전히 가시지 않지만, 히지가 연 따뜻한 이벤트, 점차 공유되는 글, 이어진 모금을 지켜보면서 "이미 수술 다 한 느낌"이 들었다.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체성에 맞게 자신을, 나아가 주변을 바꿔나가는 일. 호르몬 치료나 성 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가 될 수도 있고, 주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다뤘다.

"얘(히지)가 이만큼 돈이 모였다고 했을 때 믿기지가 않았어요. 수술하려면 태국까지 가야 하니까 막연하게 비행기 값이라도 도움을 받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했죠. 사실 대출 받으려고 했어요. 이제는 저도 4대 보험 적용을 받는 곳에서 일하거든요."

에디와 친구들. 에디의 성 확정 수술을 위한 모금을 계기로 가까운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에디와 친구들. 에디의 성 확정 수술을 위한 모금을 계기로 가까운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에디 생각에 2천만 원이 부담스럽긴 해도 평생 못 모을 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수입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고, 최근까지 가족이 많이 아팠다. 그 밖에도 자잘하게 돈이 나갈 일은 계속 생겼다. 목돈을 만드는 건 누구한테나 어렵다.

'물론 나한테 급한 수술이지. 근데 이게 당장 겪는 생명의 위기는 아니잖아?'

정체화 이후 7~8년간 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술을 숙제처럼 미뤄왔다. 근무 조건이 달라지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이른 뒤까지도. 트랜지션뿐만 아니라 활동가로서 에디는 늘 삶에 쫓기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지금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해주는 활동을 하다 보면 목표가 추상적일 때가 많아요. '사람을 돕는다는 것, 그 끝은 뭐지? 사람이 도움이 없어지는 상태는 또 무엇일까?' 이렇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는 거예요."

이제는 새로운 질문이 추가됐다. 떠올릴 때마다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은 질문이다. '어떻게 그런 마음을 흔쾌히 줄 수가 있지?'

모금을 통해 왕복 항공권 이상의 돈이 모였다. 수술비 부담이 확 줄었다. 그 금액을 확인했을 때 에디는 생각했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내 몸의 의미가 변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든 몸이 됐어요. 양심이랄까 신념이랄까, 그런 의식이 더 강해진 느낌이랄까요. 이 몸으로 이건 해선 안 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할 것 같고."

에디는 이렇게 자신의 몸을 바꾼 이 모금 활동이 "넘기 힘든 벽 앞에서 누군가 밧줄을 당겨준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힘을 실어주면 스스로 장벽을 걸어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딱 그런 위치에 있었더라고요. 사람으로 상처받는 삶이었는데, 사람으로 사랑받는 삶이 된 거예요."

수술이 끝나면 수영을 배우고 싶어

에디의 수술 시기는 내년 초로 확정됐다. 떠나 있는 동안 에디의 반려동물은 친구 수달이 잘 돌봐줄 것이다. 수술 이후에는 법적 성별 정정을 밟고, 개명 신청도 하려 한다. 미래의 이름은 박서연으로 정했다.

에디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 온이. 온이 말고도 열이라는 친구가 또 있다. 에디가 수술로 잠시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에디의 친구 수달이 돌볼 것이다.
에디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 온이. 온이 말고도 열이라는 친구가 또 있다. 에디가 수술로 잠시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에디의 친구 수달이 돌볼 것이다.

사실 수술이 끝나면 그보다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수영을 배우는 것이다. 이 또한 준비된 미래다. 친구 현주가 한 달 수강료를 내주기로 했다.

"물가에만 가면 신경이 곤두섰어요. 물에 꼭 들어가지 않아도 내 몸을 적나라하게 마주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남의 시선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을 늘 그렇게 바라봤어요. 옷을 갈아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물에 들어가는 것까지."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던 적이 있긴 하다. 이제는 그때처럼 짐만 지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막 비키니를 입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옷은 싫다. 그냥 휴가철에 사람들이 "어디 안 가요?" 하고 물을 때마다 복잡한 생각 없이 좀 더 자연스러운 대답을 하고 싶다.

"수영은 사실 생존 기술이잖아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배우고 싶어요."

"배영은 어떻게 하는지, 접영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를요. 내 몸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남들처럼 하고 싶은 거예요."

수술 결심 하나로 그동안 자신을 눌러왔던 큰 돌이 사라진 것 같다고 에디는 말한다. 이렇게 몸이 변하고 삶이 변하면 수영이라는 새로운 배움을 넘어서,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이유로' 나를 거절할 것이라는 걱정은 이제 덜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주변의 고맙고 따뜻한 마음 덕분에 이런 미래를 얻었지만, 그렇게 미래를 헤아리다 보면 농담 섞인 한숨도 좀 나온다.

"아니, 이게 뭐 그렇게 좋은 수술이라고."

마흔을 앞둔 트랜스젠더로서

서른다섯 살의 에디는 그간 늘 마흔을 생각해왔다. 그 삶이 우아하기를 꿈꾼 적도 있고, 비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적도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에디의 말마따나 "마흔 살의 트랜스젠더, 그건 나도 처음"이니까.

수술 생각은 늘 하고 있었어도, 막상 수술 날짜를 받아놓으니 걱정이 많다. 친구 현주 말대로 "소독약 한 번 바르고 끝날 치료가 아니고, 평생 쫓아다니면서 사람 피곤하게 할 수술"일 테니까. 그러니 수술이 시작인 건지, 엔딩인 건지 에디는 잘 모르겠다.

'수술하고 부작용에 시달리면 어떡하지. 마흔 살이면 더 힘들 텐데.'

친구 연지는 자신의 수술 경험을 나눠준다. "성 확정 수술은 아니지만, 지난 10년 간 수술을 세 번 했어요. 다쳐서 두 번 하고, 병으로 한 번 하고. 장기도 떼어냈고 시멘트도 박았어. 근데 저 잘 살잖아요." 에디도 끄덕끄덕한다. "맞아, 비슷해. 떼어내야 하는 거니까."

에디의 친구, 수달과 연지. 모두 에디의 성 확정 수술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하는 친구들이다.
에디의 친구, 수달과 연지. 모두 에디의 성 확정 수술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하는 친구들이다.

수술을 앞두고 에디가 해야 할 숙제가 또 있다. 엄마한테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수술할 거라고 말해왔지만 이렇게 코앞에 다가온 것은 모른다. 에디한텐 늘 엄마가 가장 어렵다.

"언니한텐 말했어요. 히지가 도와줘서 이만큼 돈이 모였다고 하니까 설득이 됐거든요. '그래? 어머, 세상에… 진짜 그렇게 모아줬어?' 이러더라고요. 돌이켜 보니 가족한테 내 정체성에 대해 말할 때마다 증거가 필요했어요. 근데 진짜 증거가 뭔지 이제는 알아요. 이렇게 모인 마음이 증거예요."

수술은 쉽지 않다. 안전하지도 않다. 에디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수술 전에 유서도 써놔야지 생각하곤 했는데, 쓰지 않기로 했다.

고마운 마음을 모아서 하는 수술이니까 "진짜 짐승처럼 회복해야지" 생각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인사해야죠. 그리고 또 같이 살아가야죠."

모금부터 수술에 이른 모든 과정도 꼼꼼하게 기록해두려 한다. 다 적어두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필요하다면 영문 번역도 할 생각이다. 이미 이 일은 에디 자신만의 일이 아니다. 받은 만큼 어디에든 돌려주고 싶은 일이다.

"물론 수술한다고 해서 트랜스젠더라는 타이틀이 사라지진 않겠죠. 영원히 달고 살겠지만, 그래도 이제 나를 괴롭히고 나랑 싸울 일은 없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수술이 엔딩일까 시작일까. 알 수 없지만, 에디는 자신과 더는 싸울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수술이 엔딩일까 시작일까. 알 수 없지만, 에디는 자신과 더는 싸울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에디는 20대에 이태원으로 왔다. 늘 삶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하면서 불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해왔던 것들을 차차 이뤄왔다. 에디가 원하는 성별로 인식하는 사람들 곁에서 트랜지션을 시작했고, 다른 성소수자를 도울 기회를 만들어왔다. 나이가 더 들면 체력이 달리니까 못 하는 게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뿌린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젠 내가 갖지 못하고, 얻을 수 없는 기회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래도 이런 게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가 어떤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들면 돼요. 같이 하면 다 돼요."

에디가 이렇게 자부하는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앨라이(ally)다.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에디는 앨라이가 무엇인지를 다룬 이 글에도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친구가 아니더라도 해야 될 자리에서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 그러니까 성소수자 차별하면 안 된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앨라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에디의 '실친'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에디처럼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깊게 탐색해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이다.

여기서 잠깐 에디와 수달이 나눈 말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겠다. 수달이 에디를 두고 "내가 처음 만난 트랜스젠더 친구"라고 말했을 때, 에디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 "정말 처음이었을까?"

이 글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반대하는 국제앰네스티의 콘텐츠 제작 협찬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해방전선과 함께 트랜스 앨라이 되기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앨라이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캠페인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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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야, 생일축하해 문구가 적혀있고 아래로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상으로 디자인된 케이크 일러스트가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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