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참모총장이 변희수에 대하여 한 2020. 1. 23.자 전역처분을 취소한다."
2021년 10월 7일, 법원은 변희수 하사를 전역 처분한 군대가 잘못했다고 판결했다.
의외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사법부가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법부 뿐만 아니다. 변 하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군을 믿고 신뢰했다.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는 변 하사의 전우와 군 간부가 그의 군 복무를 돕기 위해 애썼다는 정황이 발견된다.
대전지방법원 1심 판결문(2020구합104810)을 포함해 관련 문서를 근거로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보자.
대전지방법원은 변 하사의 2020년 1월 23일 자 전역 처분을 취소하고 육군에 책임을 물었다. 다시 말해,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이 원치 않았음에도 강제로 전역시킨 군대가 잘못했다는 판결이다.
트랜스젠더(Transgender):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여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스스로 남성으로 인식(Female to Male, FTM)하거나 남성으로 지정되었음에도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Male to Female, MTF), 또는 남성∙여성 어느 쪽도 인식하지 않는 사람(Nonbinary Transgender) 등.
변 하사는 태어나서 남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스스로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지닌 사람(MTF)이었다. 그런데 군대는 '여성'으로 성 확정 수술을 받은 변 하사를 '심신 장애 남성'으로 취급하고 군대 밖으로 내몰았다.
성 확정 수술(성별 재지정 수술): 신체 특징을 지정 성별과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는 외과 수술을 뜻한다. '성 확정 수술' 또는 '성별 재지정 수술'은 트랜스젠더가 타고난 성별을 전환하는 게 아닌, 젠더 정체성에 맞게 신체 특징을 변형한다는 의미에서 '성 전환 수술' 대안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평생 군인으로 일하고 싶었던 변 하사는 부당한 군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곧바로 육군 본부에 강제 전역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육군 본부는 이를 거절했다. 변 하사는 2020년 8월 11일 군대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전역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정확히는 육군 내 상급 결정기관인 육군본부가 내린 결정이다. 육군본부는 '남성' 현역 군인이 성 확정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변 하사가 성 확정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른 전우에게 숨길 수 없다는 점도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육군본부가 변 하사의 복무를 반대한 세부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젠더 위화감(Gender Dysphoria):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가 트랜스젠더를 정신 질환이나 장애가 아닌,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정의하기 위해 도입한 용어이다.
그런데 육군본부의 주장은 사실상 모순이다.
첫째, 변 하사가 어떤 종류의 수술을 받았느냐와 관계없이, 직장인은 수술을 받으면 직장에 병가를 낼 권리를 갖는다. 회복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회사에서 자르면 부당 해고이다.
군이 복무 중인 변 하사의 성 확정 수술을 반대한 적도 없다. 오히려 변 하사는 주변 전우의 응원에 힘입어 2019년 10월 8일 부대에 사적 국외 여행을 신청했다. 이때 여행 기간과 목적, 수술명과 회복을 위한 숙박 장소 등이 기재된 국외 여행 계획서를 제출하였다. 이 계획은 당연히 결재권자(여단장)의 허락 아래 진행되었다.
2020년 기자 회견 당시 변 하사는 "응원해주셨던 소속부대장님, 군단장님, 소속부대원, 그리고 안팎으로 도와주신 모든 전우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적어도 군이 자신을 배척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보인 발언이었다.
둘째, 변 하사는 여성으로 살기 원했으므로, 주변 전우와 군 간부에게 젠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변 하사의 소속 부대는 수술 결정에 내부에서 응원하고 격려했다. 여군으로 재배치해 군 복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성 확정 수술 이후에도 변 하사를 계속 복무하게 해줄 것을 상급 부대에 권유하였고, 상급 부대인 군단에서도 육군 본부에 같은 의견을 제출했다.
소속 부대는 변 하사를 계속 복무하도록 돕겠다고 했을 뿐, 내보내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셋째, 과거 정신과적 병력은 오히려 성 확정 수술로 인해 치유되었다고 봐야 한다. 변 하사는 수술 이후에 별다른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육군 전역심사위원회가 변 하사와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군이 전역 결정을 내렸을 때 문제 삼은 정신과 약물은 바로 '호르몬 주사'이다. 그런데 호르몬 주사는 변 하사가 여성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보조제이지 정신과 약물이 아니다. 의료인이 포함된 군 내부 의무조사위원회도 "여성 복무자의 기준에 합당"하다고 판단했지만, 군 인사운영부서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무조사위원회: '심신장애자전역규정 제6조'에 따라 구성되는 군 내부 조직으로 전역시킬 대상자를 조사한다. 군 병원장이 지정한 내부인 3인 이상 5인 이내(군의관 포함)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신 장애자로 분류된 군인을 심사해 전역 여부를 판단한다.
법원은 군과 달리 변희수 하사의 성별을 '여성'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군대가 애초에 변 하사를 '남성'으로 전제하고 전역시킨 조치는 이유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위법하다. 세부 근거는 아래와 같다.
변 하사는 항상 사회가 지정한 성별이 아닌 여성에 속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수술로 트랜지션하진 않는다. 하지만 젠더 위화감을 해결하고 군인으로 남고 싶었던 변 하사는 수술을 택했다.
트랜지션(Transition): 트랜스젠더가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의 외모, 신체 특징, 성 역할 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추어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외모, 복장 등의 변화부터 개명, 법적 성별 정정, 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모두 포함하며, 어느 정도의 과정을 어떤 형태로 이행할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가장 시급한 부분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군은 군인을 선발할 때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준수한다. 그런데 그 규칙 중에서 질병 및 심신 장애 평가 기준 항목에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가 존재한다.
즉, 현행법상 군대는 트랜스젠더를 질병이나 심신 장애로 취급한다.
이런 법이 유지된다면, 성 확정 수술을 받은 사람은 현역병 선발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 실제로 변 하사 이전에는 트랜스젠더 군인이 없었다. 현역 군인도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심신 장애로 판명 나면 비슷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법이 이렇게 뒤처져 있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젠더 위화감으로 고통받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법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출생 성별에서 반대 성별로 성 확정 수술을 받고, 호르몬 투입 등을 받는 사람이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에까지 법이 관여할 방법은 없다고 판결했다. 10월 7일 법원도 이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활동인 군 복무를 강제로 중단시킨 군대는 이와 한참 동떨어진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장을 주축으로 대법관까지 총 13명이 한 사건을 심리(판단)하는 단위이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해서 판결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의미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제로 사건을 심리한다.
국가는 앞으로 군 입대를 원하는 트랜스젠더의 복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군의 특수성과 병력 운용, 국방 및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 소수자의 인권과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변 하사는 "사랑하는 군은 계속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유효해야만 트랜스젠더 군인은 자유롭게 복무할 수 있다.
군번: 17-500589
2017년 3월 1일 입대
2020년 1월 23일 강제 전역
2021년 10월 7일 전역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