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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
2021-11-23
당신이 알아야 할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핸드폰도, QR코드도 만들 수 없는 아이들

당신이 알아야 할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기초 편]

정책
난민
이주민
미등록이주아동

시작하며:

나는 여기 있는데, 내가 나라는 걸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차원 이동을 한 웹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모두 이런 처지다.

한국에서 살면서 신분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없고, 휴대폰도 내 이름으로 개통할 수 없고, 어떤 온라인 사이트에도 가입할 수 없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QR코드를 내 이름으로 만들 수도 없다. 대학에 갈 수도, 취업을 할 수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미등록 이주 아동'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활동가에게 물었다.

Q1.
'미등록 이주 아동'은 어떤 사람?

김사강: '미등록'이라는 말부터 설명할게요.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90일 이상 체류하려면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해요. 그러면 외국인 등록번호가 나오는데요. 한국인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신분 증명'입니다.

외국인 등록증은 이렇게 생겼다.
외국인 등록증은 이렇게 생겼다.

하지만 주민등록과는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어요. 첫째, 외국인 등록을 하려면 90일 이상 장기 체류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이 있어야 해요. 흔히 비자라고 부릅니다.

둘째, 한 번 등록하면 쭉 가는 게 아니고, 유효 기간이 있어요. 유효 기간이 끝나기 전에 비자를 갱신하거나, 좀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다른 비자로 바꿔야 해요.

체류자격을 받지 못해 외국인 등록을 못했거나, 외국인 등록의 유효 기간이 끝났지만 갱신하지 못해 초과 체류하고 있는 사람을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독립적인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요. 부모가 먼저 비자를 받고, 그 아래 딸린 '동거', '동반'이라는 비자를 받게 됩니다.

그다보니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거나 만료된 채,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는 상태라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되는 거지요.

사실 '이주'라는 표현이 안 맞는 경우도 있어요. 미등록 이주민인 부모가 한국에서 낳은 아이들은 본인이 이주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경우까지 포함시키기 위해서 국제기구에서는 '국제 이주의 맥락 속에 있는 아동'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아동'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아동, 청소년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된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미등록 이주민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등록 상태로 아동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아동'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지요.

어쨌든, 실제로 이주한 경험이 없거나 핸져는 더 이상 아동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기 때문에 본인도 미등록 상태로 한국에서 아동기를 보낸 사람들을 편의상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이었다가, 지금은 어른이 된 달리아, 마리나, 호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Q2.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김사강:

부모 세대는 어쨌든 본인의 선택으로 이주를 했잖아요. 그런데 아동들은 아니에요. 아무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잖아요.

한 살 짜리 아이가 "엄마, 저는 한국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해서 부모가 데려온 건 아니겠죠.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더더욱 마찬가지고요. 그저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또는 어렸을 때 여기 와서 살게 됐으니까 사는 거죠. 아무 잘못이 없는데, 위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대부분의 미등록 이주 아동은 스스로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니까요.

초등학교 1학년, 아니,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배우잖아요.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고, '우리' 역사를 배우며 한국인으로 자라는 거예요. 당연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주 아동들에게 국적이 있는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완전히 낯선 나라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한국에 살게 됐고,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배우며 살아온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거죠.

한국에서 성장한 아동들, 청소년들, 청년들에게는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라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Q3.
미등록 이주 아동이 한국에 지금 얼마나 많지?

김사강: 사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몰라요.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는 건 아주 힘들죠.

국경을 넘어서 한국에 입국한 기록이 있으면 '출입국 기록'을 통해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아도 숫자가 잡혀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외국인 등록을 한 적이 있다면 역시 숫자를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추산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평균적으로 성인인 외국인이 몇 명 정도 체류할 때, 아동은 이 정도 체류한다는 비율이 있어요. 이 비율을 통해 한국에서 미등록으로 체류하는 성인들의 숫자가 이 정도니, 아동은 어느 정도라고 추측하는 거죠.

2018년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 아동 실태 조사를 하면서 추산한 숫자는 최소 5295명에서 최대 1만3239명입니다.

Q4.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거지?

김사강: 신분을 밝혀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모든 공적인 절차에서 신분 증명을 요구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거부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해 설명하는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활동가.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해 설명하는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활동가.

특히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은데요. 아이들 같은 경우 학교 홈페이지에 가입해야 할 때 가장 처음 자신이 미등록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하다못해 게임 사이트도 가입할 수 없고요. 휴대폰도, 은행 계좌도 자기 명의로 만들 수 없어요.

또,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어요. 아플 때도 병원에 잘 가지 못하게 되죠.

더 심각한 문제는 만일 아동이 학대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구제가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아예 기록상 존재하지 않으니 피해를 당하고 있더라도 파악하기 힘들죠. 지원 제도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요.

Q5.
그럼 미등록 이주 아동을 '등록'하게 되면, 한국의 입장에서 손해인가?

김사강: 손해도 이득도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체류 자격이 있다는 건 말 그대로 한국에서 지내도 된다는 뜻일 뿐이거든요.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 등록을 한다는 건 그냥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거고요. '여기 이 사람이 살고 있다'고요.

이 자체로 국적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처럼 아무런 공식 기록이 없는 사람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최소한 출생 등록, 외국인 등록은 할 수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Q6.
학교는 다닐 수 있는 건가?

김사강: 네, 학교는 다닐 수 있어요. 2001년부터 교육부 방침에 의해 가능해졌고요. 법적으로는 2008년에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고, 2010년 중학교로 확대됐습니다.

그런데 학교 입학이 허용된 이후에 초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를 데리러 간 미등록 이주민 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단속을 당하는 사건들이 여러 차례 발생했어요.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면서, 이를 이용해 부모를 단속해서 추방하면 의미가 없잖아요.

당연히 많은 인권단체들이 항의했죠. 그래서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당사자나 부모에 대한 단속을 자제하고 강제로 출국시키지 않겠다는 '불법 체류 아동 학습권 지원방안'이라는 지침을 2010년 9월에 발표했습니다.

2012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몽골 출신 미등록 이주 아동이 길에서 일어난 다툼의 목격자로 경찰에 임의 동행을 했어요.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받으려고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고, 이 친구는 없다고 했죠. 외국인 등록번호조차 없으니까 경찰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를 했어요. 4일 만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인천공항으로 호송되어 강제 출국을 당했습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도중인 10월이었어요.

이 사건을 접한 이주 아동 관련 인권 단체와 공익 변호사 등이 대책위를 만들어, 이 학생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끈질기게 활동했어요. 나아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미등록 아동들도 강제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2013년, 법무부에서 '불법 체류 아동 학습권 지원 방안'을 고등학생까지 연장했어요. 그리고 강제 출국당했던 학생은 2년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강제 출국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미등록 이주 아동'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감이 오기 시작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쫓겨나지 않을 수 있게 된 미등록 이주아동들. 그러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지금까지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들과 함께 살아 온 미등록 이주 아동이 졸업하는 순간 맞닥뜨리는 현실. 졸업 이후 편에서 계속 읽을 수 있다.

이 글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이주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한 결정문이 궁금하시다면 이곳(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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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한슬
    한슬
    작성
  • 선욱
    선욱
    인터뷰, 촬영
  • 은선
    은선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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