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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
2021-11-24
당신이 알아야 할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나는 한국에서 살 자격이 없는 건가요?

스무 살 달리아의 불안, 좌절, 미래와 꿈

노동
정책
난민
이주민
미등록이주아동

에디터의 말:

여러분은 태어난 지 18개월 때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나요?

달리아(가명)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18개월 아기였을 때 엄마, 아빠, 오빠와 함께 한국에 왔어요. 그 이후로 계속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달리아의 엄마는 우즈베키스탄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활동을 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가족 모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있는 과목은 국어이고, 나태주와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달리아.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 한국 정부는 달리아에게 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리아의 꿈, 좌절, 불안,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2004년, 18개월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온 달리아입니다. 올해 스무 살이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오빠가 한 명 있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인 동생들이 있어요.

부모님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셨나요?

아버지는 원래 한국을 오가면서 일도 하시고, 자주 한국에 오셨어요. 그러다가 엄마를 만나서 결혼을 하셨는데요. 엄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은 위험하니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저를 데리고 한국에 오게 됐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을 기억하나요?

네. 어렸을 때는 제 신분을 알고 있긴 했어요. 나쁘게 말하면 '불법 체류자'라는 거. 부모님이 그 단어를 처음으로 알려 주셨어요. 항상 조심해야 되고, 언제든지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질 수 있다고요.

그런데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이해도 잘 안 됐어요. '그게 가능한가? 사는 게 불법일 수 있나?' 단어를 막 찾아보기도 했죠. 그래서 그냥 친구들이랑 똑같이 잘 지내고 있었어요. 학교도 잘 다녔고요.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 할지라도 학교는 다닐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쫓겨나지 않는다. 그 권리를 얻기까지도 수많은 아이들이 강제 출국당했고,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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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현장 학습을 가야 해서 신청을 했는데요. 전화가 오더라고요. "여기 주민번호가 기입이 안 되어 있어요. 이거 알려주셔야만 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없다고 하면 제 신분이 들통이 날까 봐 얼버무리면서 전화를 껐어요. 막 손에 땀이 나고 긴장되고.

'난 이런 걸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쉽게 해서는 안 되는구나.'

그 경험으로 인해서 확 느끼게 됐죠.

그 이후에 특별히 조심하면서 살게 된 건가요?

크면서 '불법'이라는 게 엄청 큰일인 걸 알게 됐어요. 내가 한 잘못은 없는데, 그냥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늘 약간 긴장한 상태였어요. 그리고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정확히 대답할 수 없는 입장이고요. '이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면 이렇게 말해야겠지? 숨겨야겠지? 어떻게 대답할까?' 이런 걸 늘 생각하면서 다녔던 것 같아요.

뭔가 경찰들만 보면 위축이 됐어요. 그냥 길에서 지나가시는 분인데 심장이 막 떨리는 거예요.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난민 신청을 했어요. 반정부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나라에 돌아가기만 해도 위험하다고요.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난민 신청이 끝나면 잡으러 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가족 전체가 산 속 깊은 곳의 숙소를 구해서 숨어 살았어요.

정치적 박해를 당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은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다. 난민의 개념과 한국의 제도가 궁금하다면 이 글 참조.

그때 하루는 저 혼자 집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가족들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저는 화장실에 피해서 한 시간 동안 그분들이 가기를 기다리면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어요.

병원도 쉽게 못 갔어요. 그냥 감기나 가벼운 거면 참고, 엄청 심해서 힘들지 않은 이상 웬만해서는 약만 먹고 지나가고. 동생이 운동을 되게 좋아했었는데 운동을 하니까 다치는 거예요. 다치면 자꾸 돈이 더 들어가고. 한번은 수술을 하게 됐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것도 다 빚을 받아가지고 내는 거예요.

그 후로 동생이 운동을 거의 그만뒀어요. 좋아하던 건데도 불구하고,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안타까웠어요.

올해 4월에 장기 체류 청소년을 위한 제도가 생겼는데, 달리아는 해당이 안 되네요.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는데.

2021년 4월 법무부가 장기 체류 외국인 청소년에게 한시적 체류 자격을 주겠다고 밝혔다. ① 한국에서 태어나 ② 15년 이상 거주한 ③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1년 비자를 부여한다. 그동안 유학, 취업 등 체류 자격을 마련하라는 취지다. 2025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신청받는다.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에서 알 수 있다.

저랑 오빠도 자아가 생긴 이후에는 여기 쭉 있었고, 온 기억도 없고, 우즈베키스탄에 관한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저희는 신청을 못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걸 보면서 '내가 졸업할 때쯤엔 방법이 생기겠지. 나는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활동도 많이 하고, 현장 학습도 대회 같은 것도 무조건 참여하고, 되게 열정을 갖고 모든 일에 참여하려고 했어요. 졸업할 때가 다가왔을 때 정말로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그런데 점점 뭔가 안 되는 거예요. 1년, 1년,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성인이 될 날이 다가오는데 되는 건 없어서, 점점 희망을 잃었죠.

또 교내외 활동을 신청할 때 주민번호를 물어보기도 하니까 신청하기도 무서운 거예요. 반장을 하고 싶어도, '반장이 되었다고 나한테 뭔가 또 물어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한 번도 못했죠.

국어를 되게 잘했다고 들었어요.

국어를 좋아했어요. 이 언어가 좋았고, 그 안에 있는 역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이야기를 듣는 것 같고. 내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저는 늘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연히 우리말이 좋고. 당연하니까 더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열심히 하다 보니까 좋은 성적도 내고, 선생님들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한국말을 배웠으니까, 남들보다 조금 늦었대요. 그래서 언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생님께서 책을 많이 권해주셨어요. 그래서 책 읽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항상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초등학교 때 처음 본 시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었어요.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엄청 짧잖아요. 엄청 짧은데 와닿는 거예요, 그게.

중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시를 써보면 어때?" 권해주셔서 직접 써보게 됐는데요. 쓰다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저는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고민을 잘 털어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글로 써놓으면 뭔가 털어놓은 느낌. 고민을 좀 보내준 느낌. 글 쓰는 게 저만의 위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시는 되게 짧은 글이어도 되고. 제한이 없잖아요. 시를 쓰다보면 내 마음 속에 있는 내용들, 생각들을 숨겨둘 수 있는 매력이 있던 것 같아요. 되게 짧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은 되게 많잖아요. 저희가 시를 공부할 때도 되게 짧은 시여도 1시간 넘게 배우는 거예요.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 많으니까. 그 점이 정말 좋았어요.

저는 뭔가 만들어내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좋아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너무 멋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는 종이랑 연필만 있어도, 생각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대학도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백석 시집을 읽는 달리아.
좋아하는 백석 시집을 읽는 달리아.

대학에 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건 언제 알았나요?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희망은 있었어요. '그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때는 무슨 길이 있지 않을까.'

근데 고3이 됐는데 아직까지 된 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하나도 없고. 길이 너무 먼 거예요. 그래서 고3 때는 되게 좌절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컸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대학은 약간 당연한 거였고, 로망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가잖아요. 가고 싶은데 못 가니까.

고3 때는 정말 학교가 너무 가기 싫은 거예요. 애들이 만나면 입시 얘기, 대학 얘기. 저한테 "대학 어디 갈 거야?"라고 물어보면 말해줄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은 또 친구들이 거의 대학에 갔으니까 대학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해주는 거예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대학 생활은 많이 없지만, "시간표 어떻게 짰어?" "개강했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낄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서 아무 말 안 하고 있기도 그렇고.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기도 좀 꺼려지고.

다들 스무 살이 됐다고 술집에서 만나는데, 신분증 검사를 하잖아요. 그러면 전 검사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그냥 다른 일 있는 척하고 안 가고 그랬어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네요.

네. 친구들은 서로 관심도 많으니까. 많은 질문을 하면, 그 속에 혹시라도 내가 대답 못 하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늘 약간 긴장이 되는 거예요. 너무 친한 친구들인데도 그걸 털어놓을 수 없는 게 너무 속상해요.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또 나를 설명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친구는 아예 만나려고도 안 하고 만나지도 못해요.

친한 친구들에게도 달리아의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나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못 얘기하겠어요. 혹시라도 나쁘게 생각할까 봐. 괜히 무서운 거예요.

물론 친구들을 너무 믿고 좋아하지만. 그 친구들은 저를 "100% 이제 넌 한국인이야" 이렇게 대해주는데 거기서 "난 사실 달랐어" 이렇게 말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더라고요.

늘 인권에 대해서 배우면,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자라고 살아온 이 땅에서 나는 그 권리를 찾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느껴졌어요. '그 권리는 당연한 건데, 난 찾을 자격이 없구나.'

뭔가 부당한 일이 있어도 얘기를 못 하겠는 거예요. '난 말할 자격이 없겠지?' 자꾸 위축이 되고. 그냥 걸어서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도 나를 나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자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고. 그래서 자꾸 밖에 나가는 것도 싫고. '혹시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를 누가 잡아가면 어떡하지.'

그래도 학생 때는 교육권이 보장이 돼서 안전했어요. 친구들은 다 졸업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너무 졸업하기 싫었어요. 어른이 되면, 교육 받을 권리마저 뺏겨버리면, 난 이제 어느 순간 잡혀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져도 이상할 게 없겠구나.

그래서 스무 살이 되기가 너무 겁났어요. 뭔가 마지막 같은 느낌.

지금은 어때요. 스무 살이 되고서는 하루하루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전 고등학교 3학년부터 의욕이 막 점점 사라지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다들 스무 살이 됐다고 활기차고,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 같은데, 전 뭔가 끝나버린 느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돈이라도 벌어야지' 하고 알바를 찾아봐도 못하는 거예요. 다 신분이 필요하대요.

그래서 집에 있으면서 계속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 앞으로 살 수 있을까. 앞으로 더.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그래서 계속 안 좋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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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잖아요.

솔직히 저는 출신국에 대해서 잘 몰라요. 언어도 말만 조금 할 수 있고, 쓰는 것도 못하고, 읽는 것도 못하고, 문화는 당연히 아예 모르고.

저는 한국에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자라 왔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이 되게 보수적이에요. 거의 독재 국가 같아요. 한 번 해외에 오래 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한테는 출국 권한을 잘 안 줘요. 먼 훗날에 다른 나라로 여행이나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계속 감시하는 거예요. "얘네는 위험한 사람이다. 외국에 오래 있었다."

한국에서 신분 없이 살아서 물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저희 부모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대요. 그래도 저희가 여기서 자라면서 많은 걸 보고, 질 높은 교육을 받았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요. 만약에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미래를 알더라도, 다시 여기로 와서 저희를 키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만약 체류 자격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가장 기본적인 건데요. 체크 카드를 만들고 싶어요. 또 인터넷에서 그동안 가입하지 못했던 넷플릭스, 왓챠, 이런 것들 가입하고 싶고요. 영화도 VOD로 구입해서 보고 싶고. 그동안은 영화관에 가야만 볼 수 있었거든요. 유료 웹툰도 당연히 못 봤는데 그런 것도 보고 싶고요.

지금까지는 증명사진 찍을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항상 새로 찍은 증명사진을 나눠주는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 가장 기본적인 거 해보고 싶어요. 신분증을 당당하게 내밀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그래도 나중에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부모님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아예 외국인도 적었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많아졌고, 저는 해당이 안 되지만 올해 4월에 법도 생겼잖아요.

일상 생활에서도 예전에는 저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잘 모르시는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어, 히잡이네?" 이렇게 잘 알아봐주시기도 해요.

뭔가 과거부터 세상은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사람들이 발전시켜 나갔잖아요. 누가 해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직 우리에겐 미래가 많으니까, 미래에는 분명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해요.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으면 하나요?

뭔가 저희의 존재를 지우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법으로도 인정을 안 해주고, 사회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 같은 느낌.

그래서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주고, 살 수 있는 권리, 기본적인 권리는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은 어떤 곳이든 누구든 간에 가져야 하는 권리인데,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부모님이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고, 여기서는 권리를 찾지 말라는 그런 시선이나 법 제도는 조금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부모님도, 저도, 수많은 이주민들이 행복을 찾아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더 행복을 원하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뭔가 살면서 늘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난 행복해서도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사람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마디만 해도 되나요.

그럼요.

제가 사춘기를 겪고 나서 고등학교 때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쫓기는 꿈을 꿔요. 항상 뭔가 나를 쫓아오는 느낌. 그런 느낌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이 글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이주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한 결정문이 궁금하시다면 이곳(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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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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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 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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