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니까, 죄인이 되었다

어른이 되니까, 죄인이 되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어머니의 나라에서

2021년 11월 24일
에디터 한슬

에디터의 말: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만큼 보상을 얻는 사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한 그 사람이 소위 말하는 '불법 체류자'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회사에서 8~9년을 일해도 최저 임금만 받아도 되는 걸까요?

호준(가명)은 여섯 살 때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한국인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지금 호준 씨가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대학 입시를 통과해 유학 비자를 얻는 방법뿐입니다.

그 준비조차도 한국에서 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호준은 잠시 '국적국'인 몽골에 가 있다고 하는데요. 치킨, 짜장면을 그리워하면서 몽골 음식과 말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공부에 매진하는 호준을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여섯 살 때 몽골에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호준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서른 살이고요. 한국에서 학교 다니고 일하면서 살다가, 잠시 몽골에 와 있어요.

호준은 스스로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만은. 축구 같은 거 볼 때도 항상 한국 응원하고. 몽골이랑 한국이랑 축구하는 거 봐도 그렇고요. BTS나 손흥민, <기생충> 같은 영화가 외국에서 잘 됐다고 하면 제 일처럼 기쁘고. 한국이 우리나라예요.

그렇군요. 지금은 잠시 몽골에 계신 건가요?

네. 2021년 7월 15일에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몽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왔어요. 지금 외국인 전형으로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만약에 합격하면 유학 비자를 받을 수 있어요.

어떤 계기로 몽골에 가게 되신 건가요?

한국에서 미등록인 상태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면서 살고 있었는데요. 아는 인권 단체 활동가 분이 여태까지 모은 돈으로 대학교에 가 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비자도 받고 나면, 좀 더 대우받으면서,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요.

사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좀 들었어요. 서른 살이나 먹고 대학교에 간다는 게… 그런데 계속 생각해보니까 진짜 이제 더 늦으면 할 수 있는 게 없겠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몽골에 와서 비자를 받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건 힘들지 않나요?

아유, 그동안 10년 가까이 공부 같은 건 안 하고 일하면서 살았으니까. 갑자기 다시 공부하려니까 적응하기가 힘드네요. 잘 외워지지도 않고, 학생 때처럼 오래 하기도 힘들고. 30분만 해도 막 집중력 없어지고. 어제 했던 것도 바로바로 까먹고.

미등록 상태로 성인이 되어 출국하려면, 미등록으로 살았던 기간 동안의 벌금을 내야 한다던데요.

맞아요. 저는 한시적으로 벌금을 아예 면제해주는 정책이 실행될 때 운 좋게 나왔어요. 그래서 지금 대학 입시 준비라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정책이 없었으면 도전해볼 생각도 안 했을 것 같아요.

미등록 이주 아동 모두가 호준씨처럼 '본국'으로 한 번 돌아가 유학 비자나 취업 비자를 통해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방법을 택할 수는 없다. 한시적 벌금 면제 기간이 끝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국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한편 '본국'의 정치적 사정 때문에 돌아가면 신변에 위험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부모님의 반정부 활동 때문에 아예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달리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 보자.

출국하실 때 기분이 이상했겠어요.

잠도 못 자고, 진짜 막 떨리고. 출국 하루, 이틀 전에 가면 제가 좋아했던 음식들 없을까 봐 다 시켜 먹고. 배부른데도 욱여넣었어요. 몇 kg 쪘던 거 같아요.

공항에 도착해서도 너무 긴장해서 수속 밟다가 물건 잃어버리고 그랬어요.

여섯 살 이후로 몽골에 처음 가본 건데, 어때요?

오기 전에 제일 걱정한 게 먹을 거였어요. 일단 와보니까 한국 음식도 많이 있고, 이마트도 있고, CU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한국 제품들이 엄청 비싸요. 그래서 자주 먹진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어요.

몽골 고기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올라오더라고요. 하루 종일 입에서 냄새가 맴돌고. 많이 힘들어요.

언어도 문제예요. 할머니하고는 그래도 자주 쓰는 말 정도는 통해요. "밥 먹었어요. 배고프세요? 예. 아니요" 이 정도만 해도 크게 문제는 없더라고요.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면서.

하지만 밖에는 거의 안 돌아다녀요. 무서운 사람이 있을까 봐. 누가 시비를 걸거나 하면 어떻게 대응할 수도 없으니까. 진짜 급한 일 아니면 거의 할머니 집에만 있어요.

여기는 저한테 다른 나라니까. 너무 불편하고, 말도 안 통하고, 힘들죠. 문화도 다르고. 집 같지 않아요. 저한테 고향은 경기도 군포시니까.

뭐가 가장 그리우세요?

아무래도 먹고 싶은 게 제일 많이 떠오르죠. 치킨, 짜장면.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느낌이에요.

혹시 어렸을 때 몽골에 살던 기억이 나세요?

거의 안 나요. 그냥 엄마랑 누나랑 싸웠던 기억이나, 친구들과 눈이 온 날 뛰어놀았던 기억이 조금씩 있어요. 디테일하게 기억은 안 나네요.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으러 한국에 오신 건가요?

네. 몽골에 마땅히 일이 없어가지고.

누군가가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구해주겠다고 해서 돈을 주고 왔는데, 그 사람이 사기를 쳤던 거죠.

애초에 비자가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여기 체류하면서 저를 먹여 살린 거죠.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말을 못했을 텐데, 힘들지 않았나요?

엄마가 일하러 나가신 동안, 방에서 혼자 TV로 만화 같은 거 보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행동을 하면서 말을 하니까, 저 말이 저런 의미구나 연결이 되잖아요. 여섯 살 때라서 그런가, 쉽게 쉽게 습득했나 봐요.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그렇게 크게 신경을 안 썼던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이랑 생긴 것도 똑같고, 말투도 똑같고. 제가 얘기 안 하면 애들도 다 몽골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모두가 한국 사람처럼 대하니까.

처음으로 일자리를 구했을 때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원래 저희 집 보증금을 교회에서 내주셨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고, 제 사정을 설명하면서, 최대한 불쌍한 척하면서 일을 구했어요. 그렇게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됐죠.

처음에는 일을 구해서 엄청 기뻤고, 일하게 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까 다른 아저씨들은 이사 한 건에 9만 원, 경력이 많으면 15만 원씩 받는데 저는 하루에 두세 건씩 하고도 5만 원을 주더라고요.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만둘 수도 없고, 어디 신고할 수도 없고. 제가 미등록이니까.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다녔죠. 아무래도 제가 스무 살 이상 나이가 떨어져 있으니까,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이 스트레스 받으면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래도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일해서 보증금을 모았는데, 6개월이 꼭 6년 같았어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제가 술 먹고 엄마한테 울면서 이 일 못 하겠다고 막 그랬다더라고요. 엄마도 같이 옆에서 울었다고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냥 일반적인 가난한 한국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생활했는데, 딱 그런 대우를 받고 나니까 '진짜 한국 사람처럼 살 수는 없겠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삿짐 일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스물한 살 때 전자 제품의 부품을 조립하는 회사에서 두세 달 알바를 하게 됐어요.

같이 일하는 형들도 잘해주고, 친구처럼 대해주고. 그래서 '여기 괜찮다. 알바로만 끝내지 말고, 여기서 진짜 열심히 해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막 열심히 하니까 계속 써주시더라고요.

그래서 2~3년 정도는 진짜 엄청 열심히 했어요. '언젠가는 진짜 인정받고 대우해주겠지.' 다른 사람들 다 퇴근해도 밤 12시, 1시까지 불량난 것들 수리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데 나아지는 게 없더라고요. 알바들이 두세 시간씩 잔업하면 저보다 돈 많이 가져가고. 3년 차, 4년 차 되어도 최저 임금만 주고.

'열심히 해도 바뀌는 건 없구나.'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그냥 하루하루 목표도 없이 되는 대로 살게 되더라고요.

우울증이라고 해야 하나. 주말에는 어디 놀러 가고 사람이 그래야 되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서 허송세월하다가 출근할 때 되면 출근하고. 뭐든지 다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잤어요. 시간만 나면 자고.

그래도 8년 동안 그 회사를 다녔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저를 써주는 회사를 찾아야 되니까. 무슨 일이든 상관이 없고 써주면 감사하게 느끼면서 다녀야 되는 거니까. 그래도 월급 밀린 적은 없으니까 그거라도 어디냐 하면서.

엄마는 더 고생 많이 하셨다는 걸 알거든요. 월급 안 주는 건 다반사고. 저는 그래도 여기서 초중고 다 나왔으니까 친구도 있고 문화가 어떤지도 아는데, 어머니는 그런 부분에서도 적응하기 힘드셨다고 하고요.

8년 일하고 마지막에 그만두실 때 월급이 어느 정도였나요?

210만 원이요. 당시 최저 임금에서 크게 안 벗어났어요. 친구들이 제 월급을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몇 년 됐는데 아직도 그거 받냐고 했었어요. 그래서 얘기하기도 좀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우울해졌던 것 같아요.

친한 친구들은 호준의 처지에 대해 다 알고 계시나요?

친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죠.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도 저한테 크게 티내지 않아요. 몽골 사람이라고 불쌍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게임 얘기 하고 그런 친구들이에요. 저도 한국 사람처럼 대해주는 게 좋아요.

학교 다니면서는 한 번도 나쁜 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혀 아무렇지 않다가, 인터넷 같은 데 보면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막 댓글 같은 거 읽어보면.

그럴 때는 좀 겁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많이 무서워요. 학교 친구들 아니면 회사 사람들, 친했던 사람들만 만나요. 더 활동 같은 건 안 하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미등록 이주민이 되어 언제든지 단속, 출국을 당할 수 있잖아요. 10년 동안 하루하루 불안했을 것 같아요.

항상 눈치를 보면서 살았죠. 경찰이 지나가면 얼굴을 숙이게 되고. 범죄자 된 것마냥. 누가 시비 걸어도 싸우면 안 되니까, 바로 몽골로 쫓겨나버리니까, 항상 눈 깔고. 사람 눈을 안 쳐다보고 땅을 보면서 다녔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도 항상 반복하신 말씀이 "싸우면 큰일 난다"였어요. 최대한 트러블 없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도 지금 몽골에 계신 것보다는 집이 나았나요?

몽골에서도 밖에 나가면 불안한 건 똑같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문화랑 모르는 말을 쓰니까. 뭘 잘 모르니까 더 힘들죠.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그냥 전자 쪽 일을 8~9년 해왔으니까. 그 속담 있잖아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냥 여태까지 익숙한 일 하면서 살아야죠.

그저 열심히 하면 그만큼 인정해주는, 그런 걸 바라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거죠.

지금까지 너무 하고 싶었는데 미등록이라는 신분 때문에 못 해본 게 있다면?

차 면허를 따고 운전하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느낌을 항상 상상해왔어요. 어른이 된 거 같고.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거 같고.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은 없나요?

스무 살 때 많이 했죠. 졸업하고 힘들 때.

'왜 난 한국 사람이 아닌 거야. 왜 이렇게 힘들어야 돼? 엄마 때문인가?' 어릴 땐 엄마 탓도 했어요.

지금은 엄마한테 고마워요. 이런 대우를 받으시면서, 일을 해가면서 저를 키우셨다는 게. 저는 일한 돈 모아서 저한테 쓰기도 바쁘거든요. 일하면서 힘들면 힘들수록 엄마에게 고마웠던 것 같아요. 예전에 엄마가 해주셨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어떻게 이걸 버텼을까. 나는 나 혼자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나를 키워냈을까' 해요.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호준은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살 권리가 없어서 지금 몽골에 가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계시는 상황이에요.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인간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사는 사회인데, 사람을 위한 정책일 텐데, 너무 인간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한국에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 그냥 엄마 따라오니까 한국에 와 있었고. 근데 살다 보니까 내가 잘못한 것같이 되더라고요. 어른이 되니까.

어쩔 수 없죠. 제가 다른 사람 배 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투표권이 없어서 우리를 위한 정책이 하나도 없는 건가.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 글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이주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한 결정문이 궁금하시다면 이곳(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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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 작성
  • 선욱 | 인터뷰, 촬영
  • 은선 |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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