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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약은 왜 없지?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절실한 정책
에디터 리나
에디터 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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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1
2022년 대선 캐비닛

이런 공약은 왜 없지?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절실한 정책

2022 대선 캐비닛, 여성 폭력 공약 살펴보기 [제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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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선 후보는 각자 여성 대상 폭력 정책을 발표했는데요.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과 리셋, 추적단불꽃은 이번 편에서 앞으로 대통령이 될 대선 후보에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수익을 빼앗아 피해자에게 배상하라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는 타인의 디지털 성 착취물을 매개로 돈을 법니다. 온라인에서 성 착취물이 빠르고 널리 유포될수록 가해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겠지요. 반대로 말하면 피해자의 신상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유포된다는 뜻입니다.

피해자가 성 착취물을 삭제하려면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노력을 쏟아도 힘에 부칩니다. 막상 가해자를 잡아도 모두 해결되진 않고요. 그 이유를 추적단불꽃 멤버 불에게 들어봤습니다.

추적단불꽃(불): 어렵게 가해자가 유죄 판결을 받아도, 민사상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려다가 포기하시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 가해자에게 피해자 거주지나 연락처 등 개인 정보가 통보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걸 감수하고 소송을 제기해도 실익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손해 배상 금액으로 겨우 100만 원 정도를 판결받은 분도 있습니다.

피해자를 구제할 가장 좋은 방법은 몰수한 범죄 수익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제도입니다.

지금도 민사 소송 없이 가해자에게 피해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배상 명령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추적단불꽃은 이 제도가 디지털 성폭력 피해 분야에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한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법원에 배상 방법을 문의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법원으로부터 피해 기준을 정하기 애매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형사와 가정 보호 사건 가해자에게 별도의 민사 소송 없이 손해 배상 명령까지 받아낼 수 있는 제도를 뜻한다. 원래 피해자가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따로 민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배상 명령의 신청 범위는 범죄로 발생한 직접적인 피해 금액과 치료비, 위자료이다.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실질적으로 보상받은 부분이 없다고 합니다. 아직 관련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라는데요. 리셋도 이런 배경에서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해자의 범죄 수익을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국가가 범죄나 국가의 불법 행위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먼저 지급한 뒤, 실제 불법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범죄자나 공무원을 상대로 배상금을 청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추적단 불꽃은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의 신상 공개와 관련된 법과 제도가 변경되길 바랐습니다. 신상 공개의 법적 근거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처법)' 제8조 2항인데요. 수사 기관은 범행 증거가 충분한 중범죄자에 한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차원에서 범죄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합니다. 추적단 불꽃은 수사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정책부터 한 걸음씩

추적단불꽃과 리셋은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성 착취물을 생각하면 초조합니다.

대선 후보 공약 가운데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은 굳이 대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지기를 바라는데요.

그건 바로 이재명 후보가 2021년 11월 24일 발표한 '변형 카메라 공약'입니다. 이 공약은 사실 올해 3월과 9월 국회에 제출돼 통과되기를 기다리는 법안 중 일부 내용입니다.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2021년 3월과 9월 두 차례 국회에 상정돼 계류 중이다. 두 법안 모두 변형 카메라 제조 · 수입 · 수출 · 판매 · 구매 대행 및 소지 등을 관리하고, 이력 정보 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하는 방안 등을 규정했다.

이 법안이 계속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리셋과 추적단불꽃은 아래처럼 설명합니다.

리셋: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신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변형 카메라가 기존에 쓰는 각종 소형 카메라와의 구분이 어렵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관련 산업과 기술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업계의 앓는 소리보다 국민 안전을 우선하여 공약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추적단불꽃(단): 불법 촬영 카메라는 숙박업소 화장실이나 스프링클러, IPTV 셋톱박스 등에서 발견되는데요. 최근에는 기술이 더 발전해서 주름진 커튼 사이에 카메라들이 붙어 있답니다. 신기술 저해론 및 표현의 자유는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성별이 안전할 권리와 충돌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과 생명권까지 위협하므로 당장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논의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주목해줘

성폭력과 같은 여성 대상 폭력은 어떤 인간관계에서 발생할까요? 김혜정 소장은 성폭력 상담 통계의 70% 이상이 아는 사람, 특히 연인이나 배우자, 동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수사기관 통계를 보면 조금 다릅니다. 경찰청 범죄 통계를 보면 2020년 기준 성폭력 범죄자(강간, 강제 추행 등)는 총 2만 3,778명인데요.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친밀한 관계로 볼 수 있는 '애인'은 616명으로 2.6%에 불과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김혜정 소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몇 주 전에 통화한 경찰이 '연인 관계에서 수 틀리면 고소한 사건까지 저희가 조사해야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이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경찰과 검찰 문턱을 넘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토킹 범죄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여성 대상 폭력은 대체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이에요.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근절하는 공약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에서 '목적 조항' 개정과 같은 정책은 가장 친밀한 관계인 배우자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목적 조항은 국회나 행정부와 같은 입법자가 정한 법률의 입법 목적을 말하는데요. 보통 해당 법률의 제1조에 적혀 있습니다.

현재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인 제1조는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구는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 가정을 유지하라는 전제를 내포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여성 단체는 위 문구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번 대선에서는 가정 폭력은 물론 성매매 같은 여성 대상의 구조적 폭력에 관심을 둔 대선 후보가 아예 없어요. 김혜정 소장은 "여성 대상 폭력에서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이 개정되어야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은 어떤 후보도 대선 정책으로 발표하지 않았어요. 또 성매매 관련 정책은 전무해서 정책을 평가할 기준조차 없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행법이 정한 형량이라도 실행되길

김혜정 소장과 추적단불꽃은 이미 만들어진 법률과 제도부터 제대로 시행되길 바랐습니다. 현장 활동가들은 성폭력은 형량이 높아지는 데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데요.

우리 사회가 성평등한 관점을 갖추기도 전에 법정형만 높아지면, 수사 기관이나 법원은 피의자(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온정적인 관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폭력 혐의가 불충분하다고 피의자를 풀어주거나, 재판에 넘기지 않고 면죄부를 줄 우려도 커집니다. 설사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져도 실제 법으로 정해진 형량보다 더 가볍게 받을 수 있어요. 반대로 수사 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김혜정: 어떤 사건이 터지면 성폭력 형량만 높일 것이 아니라, 높인 형량대로 가해자를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회는 형량을 높였다고 할 일 다 했다고 하고, 법원은 형량이 너무 높다며 유죄를 선고하지 않고 몸을 사립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얼마나 벌을 받게 될지 예측할 수 있도록 법원이 일관되게 판결하면 좋겠습니다.

법이 디지털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성폭력 관련 법률의 형량이 대폭 강화되었거든요. 이제 아동 · 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은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습니다. 법원은 성 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에게 최소 징역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 배포 등) ①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 ·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가해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추적단불꽃(불)은 디지털 성범죄 형량이 강화된 이후로도 실질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가해자에게 올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겠죠.

김혜정 소장은 피해자의 권리 보장, 일상에서 가해자가 가하는 보복, 만연한 2차 가해 등에 대한 대책 없이 '일부 흉악범 강력 처벌'만 주장하는 일부 대선 후보의 정책 방향을 지적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여성 대상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세부 정책을 고민하지 않고, 법정형만 더 높이는 건 좋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네 줄 요약

  •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처벌하면서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려면, 범죄 수익을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
  • 변형 카메라 규제처럼 당장 만들 수 있는 정책부터 도입하길 바란다.
  • 이번 대선 후보는 성매매나 가정 폭력과 같은 여성 대상 폭력 정책을 등한시한다.
  • 여성 대상 폭력 가해자가 현행법에 규정된 형량이라도 제대로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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