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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지혜
에디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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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7
남초 현장을 뚫는 여자들

건설 현장에서 여성이 일하는 거 어때?

[남초 현장을 뚫는 여자들] “힘세다고 일머리가 좋은 건 아니죠”

여성
건설
노동자
일자리

에디터의 말

"여성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공정에서 일하기 때문에, 남성 노동자들과 동일임금을 받는 것이 차별적이다."

여성 노동자가 극소수인 A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 사이에 굳게 자리 잡은 논리다. 시민단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실린 인터뷰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에서 질문이 시작됐다. 남성이 집중된 노동 현장에서 여성으로서 일하는 건 어떨까? 여성 노동자는 어떤 환경에서 일할까? 무엇을 감내하고, 무엇을 얻고 있을까?

답을 얻기 위해 남성 노동자가 대다수인 일터를 찾았다. 가장 먼저 건설 현장이 떠올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6월 기준 건설업 전체 취업자 중 여성 비중은 11%에 불과했다. 콘크리트와 남성 작업자들로 둘러싸인 여성 노동자에게 공사장 가림막, 그 안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일

2월 16일, 영하 11도인 건설 현장에는 칼바람이 일었다. 산을 깎고 암석을 쪼갠 자리에는 흙과 모래가 굴러다녔다. 거세고 시린 바람이 흙먼지를 안고 다녔다.

두꺼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빼꼼이 내보인 서은지씨(36)가 나에게 노란색 안전모를 건넸다. '공사장 모자'를 직접 만져본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커다랗고 무거웠다. 어색하게 눌러쓰고 턱 끈을 조였다. 바람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은지씨는 동료 작업자들과 함께 아파트를 짓고 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지하 4층에서 지상 29층에 이르는 31동짜리 거대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세 건설 업체가 몇 동씩 나눠 건물을 올리는데, 은지씨는 13개동 주차장 지하 4층~1층을 맡았다. 지난 3월에 투입되어 1년 동안 13개동 주차장을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아파트가 될 콘크리트 구조물이 우뚝 서 있다.
아파트 건설 현장 전경.
한 여성이 건물 천장이 될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서은지씨가 천장이 될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건물을 올리는 데는 튼튼한 바닥과 기둥이 가장 중요하다. 그 위로 새 층을 지지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에 형틀목수라 불리는 베테랑 기능공이 투입된다. 콘크리트가 마르고 강도 측정이 끝나면, 은지씨가 속한 정리해체팀이 후공정을 이어나간다.

정리해체팀은 정리와 해체팀으로 나뉜다. 남성 작업자로 이뤄진 해체팀이 콘크리트를 받치고 있던 20~30kg 유로폼(콘크리트 구조물 형태를 짜기 위해 사용되는 철재로 만든 형틀)을 빼내면 정리팀의 여성 작업자가 자재를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한다.

이날 은지씨는 목재에 꽂힌 못을 빼고 다시 쓸 수 있도록 정돈한 다음, 쪼그려 앉아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못과 핀을 크기에 맞게 분류했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건설 현장 내부는 미로 같았다. 미래의 주차장이 될 넓디넓은 콘크리트 운동장에서 자칫 길을 잃을 뻔했다. 저 멀리에서는 불꽃을 튀기며 용접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선 사다리에 올라서서 콘크리트 벽면이 매끈해지도록 대패질했다. 창문 없는 주차장에 분진 가루가 펄펄 날렸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실내 현장에 공사 자재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쇠로 된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이 지어지고 있는 실내 현장.
건설 현장에서 한 여성 작업자가 자재를 옮기고 있다.
건축 현장에서 여성 작업자로 일하는 서은지씨가 목재를 옮기고 있다.

은지씨가 건설업을 시작한 건 지난해 3월이다. 이 아파트는 그의 손길이 닿은 첫 건물이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요?" 나의 질문에 은지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임금 때문이에요. 제가 일한 만큼 벌어가는 거잖아요. 만족도가 엄청 높아요."

지인에게 "건설 현장에 여자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뒤, 잠시 고민했다. "할 만할까?" 40, 50대 여성도 있더라는 얘기에 "나도 해볼래"로 바뀌었다. 대략 월급이 얼마인지 계산한 다음이었다.

그가 진입할 당시 정리팀에 책정된 일당은 14만5000원. 정부가 건설 부문 직종별로 '적정임금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1년 사이 일급 단가가 16만5000원으로 올랐다. 주 6일, 한 달 26~27일 만근하면 400만 원이 넘는 돈이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태어나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액수의 돈을 번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갱신하고 있어요. 생애 처음이에요."

건설 현장 작업복을 입은 한 여성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은지씨는 1년 전 건설 현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여러 일터를 옮겨 다녔다. 사무직 경리, 백화점 판매원, 제조업 노동자 등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곳에 그가 있었다. 공사일보다 몸이 편해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고, 정규직이어도 한 달에 200만 원을 채 받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퇴근 후에는 부업을 했다.

'노가다'라고 낮춰보는 시선이 없지 않았지만 임금 앞에선 별 것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건설 현장 일을 관두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한 일 중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유일한 일이 바로 건설 현장 노동이다. 아주 가까운 여자 친지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할 정도다.

힘이 세다고 일을 잘하는 건 아냐

여성이 건설 현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약 4~5년 전이다. 해마다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여성 인력이 2만7895명이었다가 2018년에는 6만5638명으로 4년 만에 235% 늘었다. (여성 건설근로자 취업현황과 정책방안,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은지씨가 속한 정리해체팀 32명 중 네 명이 여성이다. 12.5%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여자가 많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 작업자의 고용 규모는 작업반장이 결정한다. 전체 일감의 규모를 보고 팀을 꾸리는데, 그중 '각종 핀을 줍고 잡다한 고철을 골라내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정리팀에 여성 작업자를 몇 명 고용할지 판단한다.

작업반장은 이번 작업에 여성 작업자 두 명과 함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다른 팀에 있던 여성 작업자가 이곳으로 합류했고, 안전을 위해 두 명씩 짝을 지어 일해야 하므로 여성 한 명을 더 고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예외적이고 특별하게 여성 작업자 네 명이 구성됐다.

한 여성 작업자가 목재에 박힌 못을 빼고 있다.
한 여성 작업자가 목재에 박힌 못을 빼고 있다.
한 여성 작업자가 목재를 철사로 한군데로 모아 묶고 있다.
서은지씨가 못을 뺀 뒤 깨끗해진 목재를 정돈해 철사로 한데 묶고 있다.

은지씨가 보기에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지는 않다. 맡은 일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남녀 힘의 차이가 나긴 해도 힘이 센 여자나 힘이 약한 남자가 서로 바꿔 일할 수 있고, 하다보면 남녀 상관없이 똑같이 일해야 하는 때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서로 하는 일이 다른 것뿐"이다.

일부 남성 작업자들은 '누구는 일을 못하네' '핀 주우면서 돈 받네' 식의 뒷말을 한다. "핀 줍는데 돈 받는다, 이게 부당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잖아요"라고 은지씨가 말했다.

"신체구조상 할 수 없거나, 아직 해보지 않아서 못 하는 일도 많아요." 남자들은 쪼그려 앉기가 어려워서 하루 종일 핀을 주울 수 없고, 수십 가지나 되는 핀 종류도 새로 익혀야 한다. 정리팀은 자재를 한데 모으려고 매번 나무 받침대를 짜는데, 안 해본 사람들은 만드는 법을 모른다.

"힘이 세지 않다고 일을 못한다는 건 잘못됐다는 거죠."

무거운 걸 들어본 적 없던 은지씨는 처음에는 자재를 한 개밖에 못 들다가, 어느 날 두 개를 들 수 있게 되고, 세 개, 네 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능숙해지고 어떤 부분이 특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더욱이 남자가 힘이 세다고 다 '일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군소리를 '말'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은지씨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기로라도 콘크리트가 붙어 무거워진 유로폼 25kg를 나르고 공정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옮겼다. 한번에 번쩍 들어 올리지 못해도 보란듯이 몸을 움직였다.

은지씨는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 달 만근을 채웠다. 그를 비롯해 40, 50대 '언니'들도 악착같이 버틴다. 이들은 전문직 아닌 중장년 여성들이 다른 어디서도 이만한 임금을 받기 어려운 현실을 잘 안다. 지난해 여름, 콘크리트에 갇힌 더위가 온몸을 훑어 "몸 안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는 줄 모를 만큼" 땀을 닦아내던 때에도 은지씨와 언니들은 매일 일하러 나왔다.

오히려 금방 관두는 쪽은 사회 경험이 적은 20대 초반 남자들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젊은 남성들이 대거 건설 현장에 들어왔지만 비전이 없어서, 힘이 들어서, 반나절 또는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조금만 참으면 그 나이대에 이보다 더 나은 벌이가 없다는 걸 알 텐데, 조금 힘들면 포기해버려요." 은지씨는 여자들이 더 독하다고 생각한다.

"못한다는 뒷말 듣기 싫어서 빼먹지 않고 출근하고, 남들 쉴 때도 잘 안 쉬어요."

건설 현장 여성 작업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은지씨가 여성 작업자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불을 쬐며 쉬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잠시 쉬고 있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건설 현장은 여성에게 친화적인 환경이 아니다. 물을 쓸 수 없어 간이로 만들어진 거품식 화장실은 더럽고 냄새나고 그마저도 부족하다. 층마다 여성 화장실이 있는 건 아니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한다. 화장실을 가는 일도 눈치가 보여서 가급적이면 소변을 참는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일부 남성 작업자들은 공사가 마무리되면 드나드는 사람이 적은 어두운 구석에서 소변을 보거나 똥을 눈다. 정리팀은 이들이 싸놓은 굳은 똥까지 처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 장비다. 여성의 건설 현장 진입이 늘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그 수가 적은 까닭에 여성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장비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은지씨의 발 사이즈는 220mm다. 회사에서 6개월에 한 번씩 새 안전화로 교체해주지만 지금까지 딱 맞는 사이즈는 없었다. 구해주지 않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공장에서 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가 지급하는 가장 작은 안전화는 235mm다. 헐렁한 신발 안에 깔창을 깔고 수면양말을 신고 그 위에 양말을 덧신으며 신발끈을 꽉 조인다. 매일 신발끈을 동여매고 안전한 하루를 기원한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이들은 "250mm 이상만 지급하거나 남성 손에만 맞는 장비만 제공하는 곳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보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장비를 지급하면서 겉으로만 안전을 챙긴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신는 안전화와 바닥에 떨어진 못.
서은지씨의 안전화(왼쪽). 공사장 곳곳에 떨어진 못을 줍고 분류하는 게 그의 일이다. 자칫 신발에 못이 박힐 수 있다.

작업자가 '안전제일'을 말하는 게 유난한 일이 되지 않으려면 책임자가 먼저 나서서 안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은지씨에 따르면 이곳 현장은 다행히 그런 곳이다. 작업반장이 아침 조회 때마다 주요 건설현장 사고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왜, 어떤 사고가 났는지 공유하고 이에 대해 주의를 준다.

아쉬운 건 여성 작업자를 대하는 태도다. "여자라서 일 못한다"는 장난 섞인 군말은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만이었고, 먼지에 둘러싸인 환경이나 불편한 화장실은 감내할 수 있었다. 가장 힘든 건 근거없는 소문을 견디는 일이었다.

이따금 일부 남성 작업자들은 여성 작업자를 두고 선 넘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은지씨는 "여자가 많은 직장에도 있어봤지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말이 많다"라고 말했다. 남녀 동료가 서로 기분 좋게 인사 나누는 것만 보아도 몇몇 남자들은 확대 해석을 하는데, 정도가 지나칠 때는 "여자가 눈웃음쳤다"는 괴소문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해명하자니 이상하고 귀찮은, 그러나 찝찝한 일이다.

은지씨는 "여성 작업자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려면 뒷말에 민감하지 않은 무던한 성격이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좀더 거리낌 없이 말하자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태도다.

중장년 남성 작업자의 부실한 성인지 감수성은 건설 현장 전체 분위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지난해 초, 부산의 한 건설 현장에는 이런 표어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사고 나면 당신 부인 옆엔 다른 남자가 누워 있고, 당신의 보상금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눈만 내민 채 이불을 덮고 있는 여성과 5만 원권 뭉칫돈 그림이 함께였다. 현장 소장과 실무진이 '안전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결정한 문구였다.

똑같은 표어를 은지씨도 아파트 건설 현장 어디에선가 보았다. 분명히 남녀 차별적 발언이지만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눈앞에 일거리가 널린 상황에서 매번 잔다르크처럼 싸울 수 없고, 여성 작업자 비율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한다.

건설 현장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못과 핀, 고철과 쓰레기.
건설 현장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못과 핀, 고철과 쓰레기.
건설 현장 작업자들의 걸어가는 뒷모습.
공사 일을 마친 현장 작업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은지씨는 못과 핀, 고철과 쓰레기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콘크리트 바닥을 정리하고 깨끗해진 주위를 둘러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건설 현장이 아니면 어디서도 갖기 힘든 자부심이다. 3m에 달하는 긴 목재를 각잡아 쌓으면서 이전에 없던 정리벽도 생겼다. 이렇게 일하다보면 영하 11도, 네 장씩 껴입은 웃옷 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흐른다.

그가 속한 팀의 계약은 지하주차장 건설 완료까지다. 아파트 세대는 다른 팀이 쌓아올린다. 앞으로 남은 작업 기간은 한 달여. 은지씨는 이번 현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건설 현장을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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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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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작성
  • 조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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