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페이스 홈으로
홈으로 가기
  • 주제별 보기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걸 누가 결정하는데?
에디터 민
에디터
·
2021-11-16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걸 누가 결정하는데?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성별 편]

퀴어
젠더리스
차별금지법
평등법
트랜스젠더
인권

에디터의 말:

"언제부터 남자가 됐어?" "오늘부터 여자라고?" "뭐? 남자 여자 말고 제3의 성이 있다고?"

트랜스젠더들은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당사자라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런 질문을 모아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간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살면서 늘 이런 질문을 접하고 답해왔던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이승현을 찾아갔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많은 독자들에게 최대한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설명을 생략, 축약, 단순화한 부분이 좀 있다"고 말하는 그는 현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장, 그리고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첫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인 '지렁이'의 창단 멤버다. 한편으로 이승현은 2013년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 남성이자 헌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태어났을 때로 가볼게요. 그때 우리의 성별은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병원이?

이승현: 태어났을 때라면 병원이 맞아요. 병원은 우리의 생물학적 성별을 결정해요.

그런데 성별은 생물학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 생물학적 성별: 태어났을 때 병원에 의해 확정되는 성별
  • 법적 성별: 병원의 판단을 토대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히는 성별
  • 사회적 성별: 젠더, 즉 사회가 기대하는 성별

이 세 가지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트랜스젠더고요.

출생했을 때 우리의 성별은 무엇을 통해 결정되는 것인가요?

이승현: 생물학적인 기준으로 사람의 성별을 판단하는 요소는 생각보다 다양해요. 이를테면 성 염색체, 내부 생식기, 외부 생식기, 호르몬 등등. 우리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는 그중에서도 외부 생식기를 보고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요.

때에 따라 막 태어난 아이의 성별 확인 검사를 추가로 할 수도 있다. 의료진의 판단 하에 염색체 검사 등의 의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럼 법적 성별은 무엇인가요?

이승현: 병원에서 판단한 성별이 우리의 출생증명서에 적혀요. 그리고 이걸 가지고 관할 구역 주민 센터에 가서 출생 신고를 하면 가족관계등록부 성별 란에 기재되고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도 이때 결정돼요. 이것이 법적인 성별이에요. 이것을 '지정 성별'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출생 시에 해석되어 양육자에게 전달되고 문서에 기록되는 성별을 말해요.

마지막 성별, 사회적 성별은?

이승현: 흔히 말하는 '젠더'예요. 사회와 문화가 성별에 따라 기대하는 행동 양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여성적' '남성적' 같은 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네요. 우리는 살면서 '이건 여자다운 것' '저건 남자애들이 하는 것' 같은 압력을 받죠. 물론 이런 기준으로 성별을 나누는 게 올바르다거나 정확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렇게 사회적인 인식에서 출발하는 성별 기준이 있다는 것이죠.

성별을 정의하는 요소는 이렇게 다양해요. 우리의 신체가 다양한 것처럼요. 그리고 성별이 꼭 둘로 나뉘는 것만도 아니에요.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도 있어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해요.

스스로가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났다고 정체화한 사람을 말한다. 영국 가수 샘 스미스가 2019년,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가 2021년 논바이너리로 커밍아웃했다. 논바이너리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세분될 수 있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여기를 참고.

[object Object]
Sharon McCutcheon, Unsplash / CC BY

그런데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가지로 딱 나뉠 수 있지 않나요?

이승현: 병원에서 성별을 판단한다고 해도, 사람의 몸은 복잡해서 생물학적으로도 성이 딱 두 개로 구분되진 않아요. 과학적인 사실이 그래요.

잠깐 학창 시절로 가보는 게 좋겠네요. 우린 과학 시간에 염색체를 배웠죠. 교과서를 통해 XY 염색체라 하면 정소가 있고, 페니스가 있고,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을 거예요.

이렇게 모든 요소가 '남성형' '여성형'으로 일치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성염색체가 XY 혹은 XX가 아니거나,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졌거나, 외부 성기가 어느 쪽인지 모호한 몸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이런 경우를 '간성' 혹은 '인터섹스'(intersex)라고 해요.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간성으로 판단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2차 성징 때가 되어야 이러한 신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어요.

염색체, 생식선, 성 호르몬 또는 생식기를 비롯한 성별 특성이 다른 사람을 말한다. UN 인권 고등 판무관 사무소의 정의에 따르면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전형적인 정의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다. 2021년 10월 27일 미국 국무부는 여성과 남성이 아닌 X로 성별을 표시한 여권을 처음으로 발급했다. 콜로라도 출신으로 인터섹스인 전직 군인 데이나 짐이 정부에 이러한 여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미 국무부와 소송을 벌인 끝에 승소한 결과다.

그러니까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것도 여성과 남성으로 늘 엄밀하게 나눠지진 않아요.

그렇다면 병원이 내린 결정을 부정하고, 스스로 성별을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이승현: 병원은 막 태어난 아이의 외부 성기를 보고 성별을 판단할 뿐, 우리가 느끼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찾게 되는 거라고 보면 돼요.

자신의 젠더에 대한 자각, 인식을 말한다. 성 정체성, 성 주체성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성별 정체성은 생물학적 성별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여자, 법적으로도 여자인 사람이 주변을 향해 "나 남자야"라고 말한다면, 왜 그런 말을 할까요. 그런 말은 우리 사회에서 농담으로 통할 때가 더 많죠.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면 그건 굉장히 어렵게 말하는 거예요. 이건 "내일 일곱 시에 일어날 거야" 하는 다짐이랑 달라요.

여자로 태어났는데 "난 남자야"라고 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승현: 출생증명서, 주민등록번호, 주변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 2차 성징으로 변화되는 몸까지, 이 모든 것이 다 여자인데도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성별 정체성을 그와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내가 여자라고 설명하는데 정작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나는 남자라면, 처음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죠. 수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지정 성별, 즉 태어났을 때 주어진 성별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걸 알고, 마침내 "나는 남자야"라고 말할 수 있게 돼요.

[object Object]
Angela Compagnone, Unsplash / CC BY

내 몸이 내 생각과 다를 때, 어떤 부분이 가장 불편할까요?

이승현: 사람마다 달라요. 누군가는 생각과 다른 몸 때문에 고통받아요.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해요.

이런 고통을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이라고 해요. 과거 의학계에서는 성별 위화감을 정신 장애로 보고, 그 치료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수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돼요. 성 확정 수술(성 전환 수술)이 이렇게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성별 불쾌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출생 시에 지정된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뜻한다. 과거 의료계에서는 이를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로 분류했으나 그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의료인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기 위해 용어가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별 위화감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이제는 몸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복장이나 말투, 이런 성별 규범 때문에 느끼는 불쾌감도 성별 위화감이라고 해요.

만약 몸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이승현: 아닌 사람도 있어요. 수술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 '무인도에 혼자 살더라도 꼭 수술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수술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도 있죠. 성 확정 수술 대부분이 외과 수술이기 때문에 감수할 게 많아요. 한 번 하면 돌아갈 수가 없죠. 큰 수술도 있어서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생기기도 하고, 금액도 무시하기 어려워요. 건강이나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못 할 수도 있는 거죠.

'트랜지션'(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알아두면 좋겠네요. 성별 정체성에 맞게 생물학적(신체적), 법적, 사회적 성별을 바꿔나가는 과정을 말해요. 호르몬 요법이나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뿐만 아니라 복장을 바꾸거나 호칭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건 사회적인 트랜지션이 되겠죠.

트랜스젠더인데 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이승현: 어떤 사람들은 수술할 필요를 못 느껴요. 이건 사람에 따라 성별 위화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성별로 구분된 교복이 지옥이었던 사람이라 해도, 대학에 와서 원하는 옷을 입게 되고, 만날 사람을 정할 수 있게 되면 의료적 조치 없이 사회적인 트랜지션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결국 사람에 따라 해결법이 달라요.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상태를 찾는 게 먼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게 누군가에게는 호르몬이나 수술일 수도 있고, 주변에서 '남성' '여성'이나 '오빠' '언니'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신체의 어느 어느 부분까지 수술을 했느냐가 성별 전환의 기준이 아니며, 나에게 가장 필요한 트랜지션의 방법은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꼭 수술이 필요해요. 다만 그 경우가 절대 다수는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한 사람은 모두 수술을 한 사람들이에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이 글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반대하는 국제앰네스티의 콘텐츠 제작 협찬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해방전선과 함께 트랜스 앨라이 되기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앨라이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캠페인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 클릭해서 캠페인 동참하러 가기

랜스야, 생일축하해 문구가 적혀있고 아래로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상으로 디자인된 케이크 일러스트가 그려져있다.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면!

만든 사람들

  • 민
    인터뷰, 작성

1/0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