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대부분이 병원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몸을 바꾸는 위험한 수술을 했던 곳이다. 어떤 트랜스젠더에겐 몸 어딘가가 아파도 한참을 망설이는 곳이다. 평소에 내가 원하는 성별로 살다가도, 병원은 접수대에서부터 나의 현실이 드러나는 현장이니까.
병원 말고도 성별 정보를 내놓으라 하는 곳이 많다. 취업을 하거나 이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웹툰을 결제할 때조차도. 이런 일상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돌파하고 있을까.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이승현에게 이를 물었다. 여기에 더해 트랜스젠더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들어보기로 했다.
이제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성별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트랜스젠더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안다면 좋을 것 같다. 이미 다 적어놨다.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성별 편]'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승현: 그 현실을 바꾸려면 법적으로 '성별 정정' 과정을 밟아야 해요.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성별을 법적으로 바꾸는 거예요.
이걸 하려면 서류를 잔뜩 들고 관할 구역의 법원으로 가야 해요. 거기서 판사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모든 공문서상의 신분이 바뀌게 돼요. 예를 들면, 이성혼만 허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든 여성으로든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지난 10여 년간 이루어진 법적 성별 정정 사례를 보면, 구비해야 할 서류로 간주되는 것은 대략 10여 종이다.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외에 정신과 진단서, 수술 확인서, 성장 환경 진술서, 인우 보증서(친분 있는 사람들이 써주는 확인서), 인우 보증인의 주민등록등본 등이다.
이승현: 쉽지는 않죠. 일단 관련 법률이 없어요.
이승현: 없어도 가능하긴 해요.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힌 사항을 정정하는 근거법(민법)은 있거든요. 이 법을 근거로 2006년 대법원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했어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행복 추구권,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 판례 이후 대법원에서 관련 사무 처리 지침을 만들었어요. 앞으로 일선 법원들이 사건을 접수받았을 때 처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준 거죠. 판사들은 대개 대법원 판례나 사무 처리 지침에 따라 성별 정정을 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사실 지침은 법률같이 꼭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참고이기 때문에 결국 판사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어요.
이승현: 그렇죠. 다만 대부분은 사무 처리 지침의 내용을 기준으로 해요. 그런데 그 지침에 대한 해석이 판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판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이건 트랜스젠더의 현실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달라서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문제는 당사자로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에요. 성별 정정 허가를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판사를 얼마나 잘 설득하는가에 따라 긍정적인 결정을 이끌어낼 수도 있어요.
이승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러니까 내 성별 정체성에 따른 삶을 회복하는 것이니까요.
누구든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나요. 누군가에게는 그게 '나로 사는 것'이에요. 성별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법적으로 싸우고, 누군가는 세상은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고 설득하는 것이고요.
이승현: 힘들고 지치죠. 일단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이기도 한데, 그 용기를 내기까지 노력해야 하죠. 또 그러한 용기를 낸 것 자체를 비난하거나, 귀를 막고 안 들으려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애초에 내가 나인 걸 설명하고 증명하라는 요구와 의심은 다수나 주류가 아닌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종종 가해지는 것이에요. 관점을 바꾸고 편견의 장막을 걷어보면, 사실 증명을 해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고 현 사회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트랜스젠더라는 걸 커밍아웃할 때는 종종 ‘간’을 봐요. 이 사람이 트랜스젠더나 소수자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는지, 혹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보는 거죠.
자칫하면 욕이나 혐오 발언을 들어요. 관계가 끊어지거나 주변에 퍼뜨릴 위험도 있고요. 어떨 때는 성폭력이나 폭행이 돌아올 수도 있어요.
우리가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이런 리스크를 안고 하는 일이에요. 어떤 반응을 돌려주든, 이렇게 어렵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이승현: 사촌 동생한테 커밍아웃한 게 생각나네요. 법적 성별 정정을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주변인 진술서를 참고로 제출하려고 사촌 동생을 찾아갔어요. 일단 밥 먹고 2차로 술자리로 가서 분위기를 잡고 겨우 말을 꺼냈죠.
"할 얘기가 있는데…. 나 사실 트랜스젠더야."
그렇게 말했을 때 사촌 동생이 "응, 알고 있어, 오빠"라고 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고생 많았어"라고 했어요.
나를 증명하는 긴 설득도, 그래서 앞으로 호칭을 바꾸고 어떻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모든 설명을 또 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거친 어려움도 알아줬어요. 저한텐 이게 가장 이상적인 커밍아웃이었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바라는 바가 다를 거예요.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질문을 안 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죠. 말하자마자 "언제부터 그랬어?" "언제 수술했어?" 같은 직접적인 질문이 쏟아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그렇게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 내가 용기를 내서 밝힌 것을 무시하지 않는 반응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커밍아웃을 했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해요. 그 용기와 믿음을 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고민을 해서 응답해주면 돼요.
이 글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반대하는 국제앰네스티의 콘텐츠 제작 협찬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해방전선과 함께 트랜스 앨라이 되기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앨라이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캠페인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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