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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곧 새로운 주민등록증이 생길 거야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일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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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인권

에디터의 말:

2021년 10월 13일, 법원이 만 21세 트랜스 남성 아멜(가명)의 법적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이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아멜은 유방 절제 수술만 하고 자궁과 난소 적출술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식 능력 제거' 수술 없이 트랜스 남성의 성별 정정이 허가된 사례는 여태 한국에 없었다.

말 그대로 트랜스젠더가 법원에 가서 성별을 바꾸는 것. 이 절차에 관한 내용은 여기에서 다뤘다. 판례를 보면 트랜스 남성의 경우 2021년 10월 13일 이전까지 자궁 적출 수술, 난소 적출 수술 확인서를 요구해왔다. 상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자.

그날 이후 아멜의 곁에는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가족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다.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도 늘었다. 이렇게 들떠 있는 와중에 아멜은 '본업'도 해야 한다. 그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험생이다.

매일의 일정을 스케줄 앱에 깨알같이 적어둔 아멜을 만나 지난 2주일간의 일과를 들었다. 요란한 파티와 친밀한 사람이 있었고, 때로는 별일 없는 시간이 있었으며, 어떤 날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아멜의 며칠간을 일기로 재구성해봤다.


10월 12일 화요일

수능이 약 한 달 남았다. 늘 그렇듯 공부가 잘 안 된다. 내가 열아홉 살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한국 나이 스물두 살에 수능을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수월하지가 않다. 국어 과목이 가장 힘들다. 그래도 수학은 누가 물어보면 답해줄 정도로는 한다.

책상 앞에 다시 앉기까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자퇴를 했고, 엄마랑 싸워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왔고, 친구 집으로 갔다. 일을 했고, 병원도 계속 다녔고, 거기에 더해 성별 정정까지 신청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때만큼 상황이 나쁘진 않다. 엄마랑 엄청 잘 지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연락은 한다. 그동안 일한 게 있으니까 돈도 조금은 있다. 이렇게 안정이 되니까 남들보다 늦었어도 대학은 가야지 싶었다. 어쨌든 여긴 한국이니까.

어떤 대학교에는 출석부에 성별이 기재되어 있다고 들었다. 요샌 화상으로 수업을 많이 하니까 출석부를 화면에 띄울 때도 있다고 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내가 원하지 않는 성별이 모두에게 드러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경쟁이 덜 치열하고, 학생들과 직접 접촉할 일이 많지 않은 학교를 고르게 됐다. 방통대나 사이버대를 가려고 한다. 선택권이 좁으니 사기가 떨어진다. 솔직히 난 공부 열심히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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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HOOTS.COM, Unsplash / CC BY

10월 13일 수요일

매일 대한민국 법원 어플을 연다. 성별 정정 신청 결과가 업데이트됐는지 보려고 그런다. 작년에 했던 1심이 기각돼서 올해 5월에 2심을 신청했는데, 언제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알람이 울리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습관적으로 매일 어플을 열고 '나의 사건 관리'를 클릭한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몇 달째 그렇듯 별 것 없었다.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한울이랑 같이 살 건데, 둘 다 좀 예민한 편이라 같이 살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서 대처 방법을 적어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에 대한 의견도 나눈다. 우린 일주일에 세 번쯤 만난다. 오늘도 그렇게 만나 헤어지고 버스 타러 정류장에 갔는데 그때 변호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침내 성별 정정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성별 정정을 하려면 생식 능력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해 수술 없이 신청했다. 가슴 수술은 했지만 자궁과 난소 제거 수술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신청하는 트랜스젠더가 얼마나 될까. 처음부터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고 1심도 실패했지만 놀랍게도 2심에선 법원이 내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성별 정정이 허가된 사람은 한국에서 내가 최초다.

곧바로 친구들한테 전화를 돌렸다. 엄마한테도, 할머니한테도 전화했다. 그러고 단톡방으로 갔더니 바로 약속이 잡혔다. 친구1, 친구2, 친구3, 친구3의 애인까지 총 다섯 명이 신촌에 모였다. 케이크를 잘랐고, 술을 좀 마셨다. 참 많은 얘길 했는데 돌아보니 친구들의 환한 표정밖에 기억이 안 난다.

10월 14일 목요일

오늘도 할머니와 통화했다. 또래들 사이에서 나만큼 할머니랑 자주 통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늘 할머니가 먼저 거는데, 일이 있어서 통화하는 건 아니다. 근처에 살지만 자주는 안 본다. 챙겨줄 반찬이 있을 때가 아니고서야.

한동안 연락이 끊긴 적이 있긴 하다. 엄마가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할머니한테 아우팅을 해버렸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긴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할머니 스스로 마음의 정리가 된 것 같다. 그때부터 다시 매일 통화가 시작됐다.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말한다.

성별 정정 허가를 받고 나니까 할머니는 잘됐다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좀 섭섭하다고 했다. 난 이런 표현이 더 낫다고 본다. 속마음이랑 다르게 그냥 축하한다고 기계적으로 말하는 것에 비하면. 할머니는 솔직한 사람이다.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성별 정정 과정을 설명하는 아멜.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성별 정정 과정을 설명하는 아멜.

10월 15일 금요일

별 일 없는 하루였다. 공부했고, 할머니랑 또 통화했다.

10월 16일 토요일

친구랑 싸웠다. 내 잘못이다. 약속을 했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많이 늦었다. 내 사정을 설명하는 데 급급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제때 안 나왔다. 내 잘못이 맞는데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건 왜 늘 그렇게 어려울까.

10월 19일 화요일

오늘은 상담이 있는 날이다. 혼자 가는 날도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엄마랑 간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30분쯤 상담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뒤에 엄마가 들어온다. 오늘은 "부모를 믿어도 될까요?" 하고 내가 말문을 열었다. 나랑 엄마 사이가 딱히 좋지는 않다. 최근엔 좀 잘해주기 시작했는데 내가 어디까지 기대를 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엄마는 이제 상담에 좀 무던해진 것 같다. 꽤 오랜 기간 엄마는 '내 아이한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남자라는 것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도 엄마는 다 부정하고 싶어 했다. 내가 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이랬다. "그 친구도 너 같은 애니?"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차마 못 했다. 이제는 그래도 그 말을 쓴다.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았을 때, 엄마는 이제 어디 가서 이상한 말 안 듣고 뭐든 잘 처리되겠네, 다행이네 했다. 축하한다는 말도 해줬다. 그치만 완전하게 지지한다는 느낌은 아니다.

10월 21일 목요일

이번 주에 계속 병원 투어를 하고 있다. 친구 스카이를 돕고 있는 중인데, 스카이는 한국에서 트랜지션을 하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다. 유방 절제술을 알아보고 있다. 말 통하는 프랑스에서 하는 게 더 편하겠지만 스카이는 앞으로 몇 년간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 수술도 위험한 데다 사후 관리가 중요하니 가까운 데서 하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체성에 맞게 자신을, 나아가 주변을 바꿔나가는 일. 호르몬 치료나 성 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가 될 수도 있고, 주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자.

지난주부터 스카이를 만났다. 한국에서 동네 병원은 이렇고 대학 병원은 이렇다고 알려주고, 병원마다 전화해서 견적 문의를 했다. 근데 막상 병원에 가서 상담을 시작하니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의사 대부분이 영어를 잘했다.

10월 22일 금요일

인터뷰를 했다. MBC에서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다. 방송용 카메라를 처음 봤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해서 신나게 찍었다. 살면서 그런 카메라를 볼 일이 얼마나 될까. 그런 카메라 앞에서 성별 정정 이야기를 했다.

저녁에 뉴스가 나왔고 기사도 떴다. 내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고,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적혀 있는 글을 보니까 또 신기했다. 초등학교 동창 까망이가 기사 링크를 카톡으로 보냈다. 까망이는 내 변천사를 다 알고 있고 가족도 서로 다 아는 절친인데, 기사 아래에 다양한 의견이 달려 있어서 이 링크를 보내는 게 맞을지 한참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얘길 하다가 약속을 잡았다. 다음주에 만나서 맛있는 파이를 먹으러 가기로.

방송 말고도 여러 매체에 내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댓글보다 어떤 기사에 좀 화가 난다. 제목에서부터 자궁과 난소를 너무 부각하는 기사가 너무 많다. 내가 얻어낸 판결의 요지는 그게 아니다. 성별 재전환 의사가 전혀 없는 트랜스젠더에게 생식 능력 제거 수술을 요구한다는 건 자기 결정권을 제약하는 행위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멜이 받은 판결문의 일부:

"... 자궁적출술과 같이 생식능력의 비가역적인 제거를 요구함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신체의 온전성을 손성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서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

10월 23일 토요일

친구를 만나서 밥을 샀다. 내가 받은 성별 정정 결정문을 영어로 번역해준 친구다.

올해 10월 13일 전까지, 한국에서 트랜스 남성이 법원에 가서 성별 정정을 신청하려면 가슴 절제 수술과 생식 능력 제거 수술을 해야 했다. 나는 가슴 수술만 하고 성별 정정을 신청했고, 그때 여러 해외 인권 단체에서 낸 의견서를 번역해서 추가 서류로 제출했다. 이런 수술을 안 하고도 성별 정정이 허가된 해외 사례를 모은 것이다.

난 정말 수술을 또 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 수술 끝나고 진짜 다시 못 할 짓이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해외 성별 정정 허가 사례를 찾아보니까 한국 상황이 너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싸워보기로 했다. 난 아직 나이가 많지 않고, 그런 만큼 기회도 많고 시간도 많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게임이라는 걸 알지만, 해서 되면 나한테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해보기로 한 것이다.

성별 정정에 있어 국가와 지역마다 트랜스젠더에게 요구하는 수술의 범위가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국제 기준을 2016년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제시했다. 리우 올림픽을 앞둔 시점, IOC는 "트랜스젠더 선수는 성 확정 수술 없이 올림픽과 기타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 그런 수술 없이 신청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크진 않았던 것 같다. 일단 혼자 서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러 인권 활동가들을 만났고, 변호사님들과 연결됐다. 결국 정정 허가를 받아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해외 기관의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그쪽에 결과를 전달해줘야 했다. 이런 소통 과정에서 영어 잘하는 친구의 도움이 꽤 컸다. 당연히 밥을 사야 했다.

자신의 성별 정정 과정을 설명하는 아멜의 뒷모습.
자신의 성별 정정 과정을 설명하는 아멜의 뒷모습.

10월 24일 일요일

전시를 보러 갔다가 입구에 선 줄을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

10월 25일 월요일

다시 전시를 보러 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 너무 공부 안 하고 있다.

10월 26일 화요일

우체국에 다녀왔다. 성별 정정이 허가된 지 2주일이 됐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제 관할 구청에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신청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하려니까 내가 받은 성별 정정 결정문을 파일로 첨부해야 한다는데, 웹상에서는 결정문 열람이 안 된다. 구청에 문의했더니 우편으로 보내라고 해서 막 보내고 왔다.

결정문을 열어봤을 땐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지 싶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단 가족관계등록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서류도 바뀐다. 곧 신분증 재발급을 받아야 하고, 은행에 가서 계좌도 새로 열어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헤아리면서 생각한다. 정말 다 바뀌었구나.

이 글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반대하는 국제앰네스티의 콘텐츠 제작 협찬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해방전선과 함께 트랜스 앨라이 되기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앨라이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캠페인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 클릭해서 캠페인 동참하러 가기

랜스야, 생일축하해 문구가 적혀있고 아래로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상으로 디자인된 케이크 일러스트가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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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민
    인터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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