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랑 뭐가 다르냐고 묻고 싶어요

한국인이랑 뭐가 다르냐고 묻고 싶어요

신분증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고달픈 여정

2021년 11월 24일
에디터 한슬

에디터의 말:

스무살 마리나(가명)의 부모님은 몽골인입니다. 한국에서 만나 결혼했고, 서울에서 마리나를 낳았어요.

마리나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징기스칸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도쿄 올림픽을 보면서도 당연히 한국 대표팀을 응원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몽골에서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법적으로는 '몽골 국적의 외국인'입니다. 부모님은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마리나를 낳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미등록 외국인'이었던 것입니다.

마리나는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상태, 언제든지 몽골로 쫓겨날 수 있는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마리나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내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2021년 4월, 1년 간의 임시 체류 자격을 얻었습니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난생 처음 갖게 된 신분증. 이 작은 신분증을 얻기까지, 마리나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2002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 마리나라고 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모두 몽골인입니다.

부모님은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는지 들어보셨나요?

큰 이모가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자매들을 모두 한국으로 데려왔어요. 그때 엄마도 같이 한국에 온 거죠. 일을 하려고 한국에 와 있던 아빠와 만나서 결혼하셨고요.

처음에는 엄마도 아빠도 제대로 된 비자로 입국했어요. 그런데 비자 갱신을 못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었죠. 결국 저까지 미등록이 된 경우입니다.

스스로 '몽골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니요. 그냥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희 엄마를 빼고 다른 이모들은 다 한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셨거든요. 그래서 외갓집에서는 저희 가족만 특이할 뿐, 다른 친척들은 평범한 다문화 가정이에요.

설날이나 추석에는 다 같이 큰 이모 집에서 윷놀이도 하고, 음식 만들어 먹고, 세배해서 돈도 받고. 다른 친구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어요. 명절 가까워지면 "너도 큰집 가?" "응, 나는 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평범한 삶을 보냈죠.

그렇지만 엄마, 아빠가 미등록 외국인이면 그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도 부모의 국적으로 분류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냥 태어난 곳에서 자란 건데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그런 현실이었죠.

내 상황이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처음 인지한 것은 언제였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요. 제가 중학교에 갈 수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정보가 정확히 없어서,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막 알아보러 다니시고. 조금 소란이었어요. 그 때 '아, 이게 문제가 되네' 싶었어요.

그전부터 엄마, 아빠께 얘기는 들었지만 딱히 실감은 못했어요. "너는 미등록이다. 그런데 미등록이라는 걸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그렇게 얘기해주셨죠. 그런데 뭐가 특별한 건지 잘 실감이 안 났어요.

일상에서 점차 실감이 났던 순간들이 있었나요?

중학생 때, 학교에서 방학 때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안내문을 나눠줬어요. '내가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갈 수 있나?' 잘 모르겠더라고요. 선생님께 여쭤봐도 잘 모르겠다고, 일단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갔어요.

개학하고 나니까 다들 책상에 건강 검진 결과물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만 없었어요. 친구들이 왜 없냐고 물어보는데 설명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좀 상처였어요.

나중에 고등학교 때 보니까 사실 받아도 되는 거였더라고요. 그냥 중학교 때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못 받았던 거예요.

고등학생 때는 아버지가 핸드폰을 잃어버리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안 받다가 한 번 딱 누가 전화를 받은 거예요. "이 핸드폰 원래 주인인데요." "여기 지금 경찰서입니다. 핸드폰 맡겨져 있으니까 신분증 들고 찾아오세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죠. 신분증 없는데. 그나마 저는 학생증이라도 있으니까 일단 그걸 가지고 경찰서로 가봤어요. 그런데 신분증 받고 조회하시던 경찰분이 "너 정말 여기 고등학교에 다니는 마리나 맞냐" 자꾸 여쭤보시는 거예요.

조회가 안 된대요. 주민등록번호가 안 나온다고.

그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횡설수설, 대충 둘러댔어요. 진짜 심장이 쿵쿵쿵쿵 뛰고.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다가, 핸드폰 원래 주인이 아버지라고 하니까, 그럼 아버지가 신분증을 가져와서 조회해서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네, 알겠어요" 하고 경찰서를 나왔어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고, 저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한 아빠가 너무 미워서 엄청 뭐라고 했죠. 결국 그 핸드폰은 그냥 버리는 걸로 하고 아빠는 싼 핸드폰을 새로 사서 쓰고 있어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나는 왜 다른 상황과 환경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잘 납득할 수가 없었어요. 되게 많이 우울했어요. 그래서 상담도 받아 보고 그랬는데. 이게 원인이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나아지지 않아서. 그런 식으로 학창 시절을 쭉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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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학교를 졸업하면 사실 단속이나 추방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사실 고3이 되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학교 다닐 때, 자기가 성인이 되면 다 통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약간 그런 느낌처럼. '아, 그때쯤 되면 다 해결되어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마음이 달라졌나요?

고3 딱 올라가면 대학 지원에 대해서 담임 선생님하고 면담을 하잖아요. 처음에는 외국인 전형을 알아봤는데, 저는 외국인 등록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것도 못 넣고. 어떻게 해야 되나. 첫 면담부터 서로 잘 모르는 채로, 아예 아무 정보 없이 끝났어요.

내가 대학엔 갈 수 있을까 싶고. 나중에 알아보니 일반 전형으로 넣는 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합격을 한다 해도 비자가 없으면 대학을 못 다닐 텐데, 공부해서 뭐하나 싶은 심정이 들었어요. 그리고 고3 때 코로나였잖아요. 계속 집에 있다 보니까 전혀 공부에 의욕이 안 들고. 동기를 많이 잃어버렸어요. 집에서 허무한 시간을 계속 보냈죠.

고등학교 졸업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도 주변에 고등학교 졸업하기 싫어하는 친구가 또 있어서, 같이 "사회에 내쳐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 고3이 돼서 이렇게 포기하고, 상황을 체감하고, 그런 시기에 핸드폰 사건이 터져서 아빠한테 더 크게 뭐라고 했던 거 같아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자기혐오도 심했고. 사실 '스무 살이 되면 죽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다 보니까 뭔가 좀 더 삶에 대해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죽어야 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히려 좀 딛고 일어서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이 상황을 마리나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 많이 했죠.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우리 부모님한테 태어난 것만으로 내가 범죄자가 되었고. 이게 너무 말이 안 되는데.

처음에는 부모님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저를 낳아서 제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어요. 좀 크면서 '사회도 좀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인권을 생각해주지 않고, 여기서 살 수 있는 법을 만들어주지 않는, 부당한 사회에 대한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2019년에 마리나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잖아요. 그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중학교 때 알게 된 인권 단체에서 제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셔서, '이런 사례라면 혹시 법무부가 인정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한국인이랑 뭐가 다르냐고. 외가 친척도 다 한국에 살고, 몽골로 보내면 전혀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전까지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 자격을 인정해준 사례가 한 번도 없는데, 저한테 한번 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법무부 면담을 하게 됐어요.

엄청 떨렸을 거 같아요.

맞아요. 너무 막 떨려가지고. 주무관 세 분께서 나오셨었거든요. 최대한 생글생글 웃으면서 면담을 했는데, 말을 잘한 건지도 모르겠고. 끝나고도 내가 잘한 건지. 되게 불안했었어요.

그 뒤에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법무부에서는 계속 기다리라고 해서.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을 계속 기다리면서 보냈죠. 2학년 말에 다른 한 분과 함께 재진정을 넣고. 또 면담하고. 그런데 계속 기다리라고 하고 결과가 안 나오니까. '안 되겠다. 이제 언론에 알려야겠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많이 긴장됐는데. 결국 2020년에 진정이 받아들여졌고, 올해 4월에 비자를 받게 됐습니다. 그 때 저 같은 장기 체류 청소년들을 위한 구제 대책이 함께 나왔어요.

2021년 4월 법무부가 장기 체류 외국인 청소년에게 한시적 체류 자격을 주겠다고 밝혔다. ① 한국에서 태어나 ② 15년 이상 거주한 ③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1년 비자를 부여한다. 그 동안 유학, 취업 등 체류 자격을 마련하라는 취지다. 2025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신청받는다.
어릴 때 한국에 왔다는 이유로 이 자격을 신청할 수 없는 달리아, 호준의 이야기도 읽어보길 추천.

비자 받고 나서 어땠어요?

딱히 특별한 감상은 없었어요. 그냥 내가 받아야 될 걸 받는 데 참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게 있어요. 지갑에 딱 외국인 등록증을 끼워놓고, '이제 나의 신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게 생겼구나. 다행이다' 생각했죠.

뭐가 제일 달라졌어요?

원래 친척 명의였던 핸드폰 명의를 제 명의로 바꿨어요. 이제 본인 인증도 할 수 있고, 제 이름으로 아이핀도 만들고, 여기저기서 제 이름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외가 친척들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신세를 지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조금 많이 눈치 보이고. 그런 것 때문에 힘들기는 했어요.

저희 집이 좀 가난하니까 핸드폰 요금을 밀릴 때가 많았는데, 예전에 너무 밀려서 이모부 신용 등급이 내려갈 뻔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빨리 내야 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막 얘기한 적도 있고. 부동산 계약할 때도 큰 이모가 같이 와서 자기 명의로 해주고. 항상 저희 가족을 도와주셔서 그때마다 감사하기도 하고, 되게 죄송하죠.

지갑에서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는 마리나.
지갑에서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는 마리나.

사실 '외국인' 등록증이 나온 거잖아요.

맞아요. 사실 엄마, 아빠는 어릴 때부터 "넌 한국애"라고 말하면서 키웠거든요.

저도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딱히 남들과 다를 바도 없이 자랐는데. 사실 진정을 넣을 때도 잘되면 한국인이라고 인정받지 않을까 하고 조금은 꿈을 꿨어요.

결과적으로는 외국인이라고 인정을 받게 돼서, '외국인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의아했습니다.

지금도 저를 설명해야 될 때가 어려워요. 핸드폰을 제 명의로 바꿀 때도 신분증 보여달라고 하잖아요. 외국인 등록증을 딱 보여주는데. 저는 한국인으로 보이니까. 직원이 당황하는 거죠.

"제가 사실은 외국인이어가지고.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인데…" 이렇게 막 설명하게 되는데 속으로는 '난 한국인인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부딪히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외국인이라고 설명하는 쪽이 빨리 끝나니까요.

그럴 때마다 '나 이렇게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대학에 가려고 준비 중이시라고요.

4월에 비자가 나오고, 9월에 외국인 전형으로 서울 소재 사립 대학교에 합격을 했는데. 학교 측에서 한국어 시험 자격증을 요구하는 거예요. 아니면 꼭 어학당에 가야 한다고. 그런데 어학당은 엄청 비싸거든요. 올해 시험은 이미 놓쳐서 "첫 학기 중에 자격증 따 오면 안 되나요?"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한국어로 쭉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저의 한국어 능력을 측정하려면 면접을 봐도 되고, 대학교 차원에서 따로 시험을 봐도 되는데. 그런 방법이 하나도 없고 어학당을 다닐 수밖에 없다고 하니까. 그 학교는 입학을 포기하고 다시 전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 가면 어떤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 가면요. 딱히 공부가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대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학교 다니면서 유학 비자로 바꿔서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임시적으로 발급된 '기타' 비자라서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려면 재학 증명서나 재직 증명서나 그런 게 있어야 개설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나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체류 자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유학 비자로 바꾼 뒤에, 5년 이상 살면 귀화 신청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귀화 신청까지 하고 나면…

그냥 신분증 쳐다볼 거 같은데요?

그렇죠. 그 다음에 뭐 취업하고. 그제서야 남들과 평범한 삶을 똑같이 가는 거죠.

이 글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이주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한 결정문이 궁금하시다면 이곳(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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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 작성
  • 선욱 | 인터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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