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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소: 트랜스젠더의 (믿음직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에디터 민
에디터
·
2021-11-16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트친소: 트랜스젠더의 (믿음직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트랜스젠더와 동행하기 [앨라이 편]

퀴어
젠더리스
차별금지법
평등법
트랜스젠더
인권

에디터의 말:

'내 편'은 누구고 어디에 있을까. 가족이나 친구가 항상 내 편이기만 할까? 비관하고 싶지는 않지만, 항상 낙관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까운 트랜스젠더 친구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가끔은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답으로 돌아왔다. 절실하게 편이 필요했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멜, 이드, 세아, 에디가 참여했다.

인물소개

아멜
아멜

최근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 남성. 초등학교 동창 까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이드
이드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다. 트랜스 여성 예린과 연애 중이다. 둘의 이야기는 여기에 또 있다.

세아
세아

대학원에서 '열공' 중인 트랜스 여성. 학교 바깥에선 '트랜스해방전선' 활동가로 활약한다.

에디
에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 지원 센터 '띵동' 소속 트랜스 여성. 친구들의 모금을 통해 성 확정 수술 비용을 모았다. 에디와 친구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여기서 확인하자.


'그런' 친구가 곁에 있나요?

"근데 나, 너한테 '커밍'했었나?" 아멜이 물었다.
"한 것 같은데?" 까망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제?"
"몰라. 기억 안 나."

커밍아웃을 말한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벽장 밖으로 나오다'(coming out the closet)라는 표현에서 나왔다.

스물두 살 아멜은 최근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 남성이다. 그런 아멜에게 '초딩 동창' 까망은 "내 변천사를 다 알고 있는 친구"다. 둘은 서로의 부모를 알고, 그 부모들도 그들을 안다. 그렇게 서로를 잘 알면서도 둘 사이에 언제 어떻게 '커밍'이라는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긴 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서로한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트랜스젠더가 관할 구역 지방 법원을 통해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는 일을 말한다. 성별 정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아멜의 실제 경험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곁에는 늘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고 싶다. 혹은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를 알고, 나의 가족을 알고, 크게든 작게든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알고 존중하는 사람. 평소엔 그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도, 이로 인해 화가 나거나 슬퍼질 때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통 친구라고 부른다. 가족과 동료도 항상 그런 역할을 한다면 참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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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Busing, Unsplash / CC BY

성소수자 사회에서는 이런 친구를 '앨라이'(ally)라고 부른다. 동맹 혹은 동맹군을 뜻하는 이 단어가 비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와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앨라이는 개인을 넘어 단체가 될 수도 있다.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린 '성소수자 부모 모임'(PFLAG)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기념비적인 게이 해방 운동 '스톤월 항쟁'(1969)에 같은 뜻을 가지고 동참한 비성소수자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 인권운동조직 국제앰네스티는 종종 '앨라이 되기' 캠페인을 연다. 그 목소리는 북미와 유럽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다.

"앨라이란 원래 협력자라는 의미로 성소수자의 편에 서서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 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진행한 캠페인 '웰컴 투 앨라이 월드 For Queer Youth' 중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서, 비성소수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성소수자와 함께하세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지지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인권을 위해 함께 일어서세요."
- 앰네스티 미국 지부가 만든 'LGBT 앨라이 툴키트'(LGBT Ally Toolkit) 중에서

"트랜스 인권을 위해 당신의 소중한 목소리를 크게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곁에 있고, 함께하면 더 강하니까."
- 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진행한 2021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 중에서

"트랜스젠더의 이름과 성별을 존중하세요. 그들의 '진짜' 이름과 성별이 무엇인지 묻지 말아요. 이건 무례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 앰네스티 영국 지부가 발행한 '훌륭한 트랜스 앨라이가 되는 법' 중에서

앨라이는 모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때때로 범위를 좁혀서 '트랜스 앨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말은 여러 성소수자 가운데 트랜스젠더가 처한 더 차별적인 현실을 가리킨다. 따라서 트랜스 앨라이가 된다는 건 트랜스젠더가 의료, 교육, 고용 등에 있어 겪는 실제적 차별, 외형적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알고 공감한다는 뜻이다. 그런 트랜스 앨라이의 목소리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곁에 있기도, 멀리 있기도 하다.

트랜스젠더가 생각하는 앨라이란?

앨라이라는 개념은 현실과 얼마나 가까울까. 가까운 트랜스젠더 친구들에게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목소리가 왜 그렇게 굵어요?" "남자인 줄 알았어"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에디는 앨라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친구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 차별하면 안 된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앨라이라고 느끼거든요. 자기 자리에서 모두를 위해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요."

이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앨라이는 좁게는 "퀴어를 퀴어문화축제를 포함해 어느 시공간에서든지 함께 지내고 있는 동료 시민임을 인지한 사람"이다. 넓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복잡한 이야기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으며 사회적인 문제로 보고, "차별금지법 만들어져야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 이드에게 새로운 앨라이와의 교감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내 존재를 드러내면 안 될 것 같고, 이걸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단정해왔던 자신을 바꾸는 순간.

한편 트랜스젠더에게 앨라이는 삶을 무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학계에 있는 세아는 주변의 앨라이로 교수를 꼽는다. 일이 중요한 연구자 세아에게 앨라이란 커리어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동료다. 업계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을 정체성으로 차별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저에 대해 말씀드렸거든요. 상관없대요. 그냥 연구만 잘하면 된대요. 그 말이 힘이 됐어요. 나중에 동료가 될 수도,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이런 말로 미루어 앨라이는 '좋은' 존재 같다. 친구와 동료를 깊숙하게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대신 필요한 말을 하거나 싸워주는 이타적인 사람, 때에 따라 주변의 성소수자에게 적절한 무관심으로 대하는 눈치 있는 사람.

그렇다면 현실 사회에서 앨라이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앞서 커밍아웃 후일담을 돌아보며 동창 까망을 소개한 아멜은 앨라이를 "앨라이로서의 자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지. 나는 다 알아.' 이건 시혜적인 태도 같아요.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조금 더 배우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앨라이 아닐까요."

함께 일하는 상사이자 동료를 앨라이로 꼽은 세아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해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단계가 되면 앨라이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해가 아니라 그게 어떤 건지 몸으로 아는 거요. 섣불리 '트랜스젠더를 안다' '내가 도와준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겪는 일을 알고 함께한다는 거."

미국 뉴스 웹사이트 복스는 앨라이의 태도를 소재로 한 글을 발행했다. 첫 문장이 이렇다.

"앨라이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성소수자 공동체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한테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

여기서 후자는 "퀴어들에게 불필요한 것을 팔아 이익을 얻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서 퀴어 이미지를 마케팅 요소로만 활용하는 월드 스타를 예로 든다. 그것이 크든 작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많다.

최근 몇 년간 서구권에서 여러 학교와 언론, 단체와 기관이 각각의 앨라이 지침서를 내놨다. 그중 워싱턴포스트가 발행한 '스스로를 앨라이라고 불러? 실제로 하나가 되는 법'을 참고해보자. 성소수자로서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해온 카를로스 마자가 썼다. 그가 조언하는 앨라이의 네 가지 자질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너희가 얼마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해
너희가 클럽이나 바 같은 성소수자 전용 공간에 가고 싶어 할 때 정말 좋아. 우리 대다수가 버림받은 사람처럼 느끼며 자랐으니까. 그런 곳에 가면 모두가 얼마나 귀엽고 이 공간이 흥미진진한지 감탄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성애자만 있는 클럽에 가서 '너희들은 너무 사랑스러워'를 연발하는 퀴어 본 적 있어?

상대의 퀴어함을 너무 축소하지 마
우린 이런 말을 흔하게 들어. "나는 네가 게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해." 선의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게 과하면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고작 각주처럼 보이게 해.

너무 실망할 것 없어
미디어 속 성소수자는 비현실적인 경향이 있어. 잘 차려입고, 재치 있고, 호감 가는 캐릭터로 그려져. 긍정적인 캐릭터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실의 성소수자는 별로 안 그럴지도 몰라. 우리는 결점이 있고, 상처를 입고, 비열하고, 생각이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야. 성소수자 친구가 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실망스럽다면 그런 기대가 어디서 왔는지 자문해봐.

앨라이는 정책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성소수자(특히 트랜스젠더)가 미국 법에 따라 동등하게 대우받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정책이 차차 변하고는 있지만, 실망스럽게도 동성혼 법제화 같은 거대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그렇게 나아지진 않아.

앨라이가 된다는 건 그 싸움에 기여한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앨라이한테 치료사나 상담사 역할까지 기대하진 않아. 그냥 성소수자의 안부를 묻고, 일어난 부당한 일이 있을 때 경청해주는 게 좋겠어. 그러다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 나서주면 돼. 퀴어퍼레이드가 끝나고 법정 카메라가 꺼진 후에도 성소수자 친구들을 주시한다면, 투표나 축제의 포스터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거야.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올해 진행한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 또한 비슷한 지침서를 공유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트랜스 앨라이의 요건은 일곱 가지다.

① 상대의 호칭과 이름을 존중합니다
트랜스젠더 본인이 원하는 호칭과 이름으로만 부릅니다.

② 상대의 성별 정체성을 추측하지 않습니다
옷차림, 신체적 외모, 목소리 등에 따른 성별 정체성 추측은 하지 말아요.

③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경험을 듣고 믿습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성별 확정 치료 등의 의료적 조치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있습니다.

④ 아우팅(outing)을 조심합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성별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⑤ 트랜스젠더 혐오에 반대합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농담을 들으면 비판해주세요.

⑥ 모두를 위한 시설 접근을 요구합니다
성중립 화장실과 같이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직장, 공공장소 등 어디에나 설치하도록 요구합니다. 이 요구는 여성, 장애인 등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요구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⑦ 스스로 배웁니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앨라이(라는 단어)는 언젠가 사라질 거야

우리 사회에 앨라이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성소수자를 향한 인정과 환대가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는 성소수자에게 안전하게 머물 공간도 제한된다는 뜻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한 인류학자의 말대로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것은 사람, 장소, 환대니까.

아멜도 사람과 장소를 동일시한다. "다들 그런 적 있을걸요. '나 저번에 누구한테 이 만큼을 드러냈는데 그때 완전 망했으니까 이번에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말아야지.'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아무나'랑 지낼 수는 없으니까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죠."

"그런 의미에서 앨라이는 사람을 넘어 공간 같아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내가 바깥에서 상처를 받고 돌아왔을 때 금방 회복하게 만들어주는."

에디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한 번만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 싸워서 끝날 일도 아니다. 매번 지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공간"이다.

"공간의 크기는 상관없어요. 거긴 그냥 내 정체성, 성별, 호칭, 이런 걱정 하나도 없이 나로만 있을 쉼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달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안온한 공간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힘을 얻겠죠. 혐오와 싸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그런 공간을 실제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런 공간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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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 Smith, Unsplash / CC BY

그런 안전함을 확보하려면 관계 사이에 거리가 필요하다고 세아는 말한다. "우리가 침해해서는 안 되는 서로의 영역이 있잖아요. 그런 거리가 잘 지켜져야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우리가 존재를 드러냈을 때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걸 생각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엔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결국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다. 적당히 거리 유지를 하면서도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 사회에서는 그런 존재가 앨라이로 통한다고 정리될 수 있겠지만, "부모가 앨라이가 아니라면 성별 정정이 더 힘들다"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아멜조차도 이 단어의 사용 범위가 아직 좁다는 걸 안다.

"그냥 내 주변에 있는 친밀한 사람들인데 내가 하필이면 퀴어라서 저 사람을 앨라이라고 부르게 되는 거죠."

마침 에디도 똑같은 얘길 했다. "내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앨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아요. 퀴어가 아니라면 그 말을 안 쓰잖아요."

결국 앨라이라는 표현이 사라지려면, 더 많은 앨라이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앨라이보다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말이 이미 있다. 친구다. 그런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멜이 답을 준다.

"처음부터 다 친구가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이 글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반대하는 국제앰네스티의 콘텐츠 제작 협찬을 받아 닷페이스가 취재, 기획, 작성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해방전선과 함께 트랜스 앨라이 되기 캠페인 <랜스야, 생일 축하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앨라이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캠페인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 클릭해서 캠페인 동참하러 가기

랜스야, 생일축하해 문구가 적혀있고 아래로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상으로 디자인된 케이크 일러스트가 그려져있다.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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